에어버스 공급망 여는 방사청, 100개 국내 기업 '유럽 항공우주 영토' 개척한다
방위사업청, 대전서 '에어버스 절충교역 설명회' 개최… 민·군 항공기 및 우주 기술 공유
국내 기업의 글로벌 품질인증 확보, 방사청의 정밀한 '역량 기반 매칭 시스템'이 성패 좌우
'T-50 신화' 이끈 절충교역 제도, 단순 반대급부 넘어 K-방산 세계 공급망 진입 마중물로
[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 방산 공급망의 주역인 유망 중소·벤처기업들이 유럽 최대의 항공우주 거두인 에어버스(Airbus)의 글로벌 가치사슬(Value Chain)에 직접 진입할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이 마련된다. 방위사업청이 추진하는 절충교역 제도가 단순한 대형 무기 도입의 반대급부 확보를 넘어, 국내 중소기업의 첨단 기술화와 해외 수출 전진기지 구축의 핵심 정책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번 협력이 글로벌 방산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을 뚫기 위해서는, 참여 기업들의 국제 품질인증 규격 확보와 방사청의 정밀하고 투명한 '역량 기반 기술 매칭(Capability-based Matching)' 시스템 구축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방사청·에어버스 만남, 국내 100여 개 중소기업 유럽 공급망 타진
방위사업청은 29일 대전테크노파크에서 유럽의 대표적인 항공우주기업인 에어버스사와 국내 중소·항공우주기업 간 산업협력을 위한 '절충교역 사업설명회'를 개최한다. 절충교역은 정부가 해외에서 대형 무기나 장비를 도입할 때,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대가성으로 핵심 기술을 이전받거나 국내산 부품을 제작해 역수출하도록 강제하는 고도의 국방 교역 방식이다.
이번 설명회는 에어버스의 글로벌 공급망에 국내 우수 중소기업들을 직접 참여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다지기 위해 마련됐다. 군용 및 민간 항공기, 항공장비 등을 개발·생산하는 에어버스 측은 민간·군용 항공기와 우주시스템 등 자신들이 향후 협력을 희망하는 핵심 첨단 분야의 소요를 국내 기업들과 공유한다. 이날 현장에는 정부가 지정한 방산혁신기업을 포함해 100여 개에 달하는 국내 유망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해 장기적인 기술 협력 및 공급망 진입 방안을 다각도로 논의한다.
이형석 방위사업청 방위산업진흥국장은 "절충교역은 단순한 반대급부 확보의 차원을 넘어 우리 중소기업들이 세계적인 공급망에 진입하고 글로벌 수출 경쟁력을 다질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수단"이라며, "국내 방산 기업들이 해외 거대 방산기업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T-50의 설계 독자화 신화와 대형 위성 도입의 기술 종속 교훈
국방 전문가들은 이번 에어버스 지평 확장을 실리적인 성과로 이끌기 위해서는 우리 군이 과거 절충교역의 역사에서 겪었던 사례를 철저히 복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국산 고등훈련기 T-50(골든이글) 개발 사업이 꼽힌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주력 전투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절충교역 조건을 걸어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초음속 항공기 설계 및 체계종합 기술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이 기술적 토대는 훗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FA-50 경공격기를 필두로 폴란드,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에 국산 완제기를 수출하는 결정적 씨앗이 됐다.
반면 뼈아픈 실패의 그늘도 존재한다. 과거 대형 군사위성이나 육·해·공군의 특수 작전용 대형 플랫폼을 대규모로 수입할 당시, 해외 방산 대기업들은 계약 이행 과정에서 보안과 지식재산권을 이유로 핵심 기술 이전을 철저히 통제했다. 결국 핵심 전력 도입 이후에도 국산화율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부품 정비나 성능 개량 때마다 막대한 예산을 해외 원제작사에 지불해야 하는 기술 종속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했던 전례가 있다.
■글로벌 밸류체인 진입의 조건… '기술 축적'과 '정밀 매칭 인프라'
방산 전문가 및 관계자들은 이번 에어버스 절충교역이 과거의 '단순 조립·가공 위주의 저가치 이행' 관행을 극복하고 고부가가치 산업 협력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국방 당국과 업계의 고도화된 접근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공급망 진입을 노리는 국내 중소·벤처기업들은 글로벌 항공우주 무대에서 통용되는 AS9100(항공우주 품질경영시스템) 등 국제 표준 규격과 독자적인 공정 제어 기술력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 에어버스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Prime Contractor)은 제도적 의무(Offset Credit)를 충족하기 위해 국내 기업을 찾더라도, 최종 공급망 편입 여부는 엄격한 글로벌 품질 승인 기준에 따라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은 단순 수혜적 참여를 넘어, 에어버스의 독점적 가치사슬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특화 기술력을 증명하는 자구적 '기술 축적(Technology Accumulation)'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책 설계자인 방위사업청 역시 행정 편의주의적 매칭을 탈피해 정밀한 '기업 필터링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방사청은 계약 단계부터 해외 원제작사의 유효 기술 수요(Tech-Demand)와 국내 중소기업들의 실제 도달 기술 수준(Tech-Readiness Level)을 다각도로 정밀 실사·대조하는 '역량 기반 매칭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통해 자격 요건을 갖춘 강소기업들이 로비나 특혜 시비 없이 공정하게 선택받는 투명한 연계 플랫폼을 확립해야만, 국방 절충교역 제도가 본연의 목적인 '국내 방산 생태계의 체질 개선'과 '영구적 수출 동력 확보'라는 정책적 실리를 거둘 수 있을 전망이다.
[email protected] 이종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