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만장 투표지 반출된 올림픽공원…5개월 봉쇄 시위도 '해산 수순'
(서울=뉴스1) 소봄이 유채연 이동건 기자 이세화 인턴기자
"투표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져도 여기는 계속 지킬 거예요. 여기서 시작했으니까요."
"맨몸으로 왔는데 짐이 이렇게 많아졌어요. 일단 정리부터 해야죠."
6·3 지방선거 투표지 약 247만 장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모두 반출되면서 5개월 가까이 이어진 봉쇄 시위도 해산 수순에 들어갔다. 투표지를 지키겠다며 현장에 머물던 참가자들이 하나둘 떠나는 가운데 일부는 집회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9일 오전 9시쯤 찾은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는 전날(28일) 수많은 집회 참가자와 경찰 병력으로 북적이던 모습과 달리 한산했다.
선관위 특검팀은 전날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송파구 투표지 약 247만 장에 대한 임의검증을 진행해 이날 오전 0시 38분쯤 마무리했다. 이후 중앙선관위는 오전 6시 30분쯤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 투표지를 별도 지정된 보안 창고로 옮겼다.
특검팀은 검증 과정에서 참관인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투표지는 별도로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정밀 분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투표지가 반출돼 텅빈 경기장 주변에는 일부 경비 인력만 남았다. 투표지 반출이 이뤄진 1-2 게이트 앞도 출입구를 지키는 경찰과 바리케이드만 남아 썰렁한 모습이었다. 밤새 투표지 반출을 막아서던 시위대는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주요 집회 장소였던 1-3 게이트 앞에는 참가자 30명 안팎이 남아 태극기를 흔들며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등 기존 구호를 외쳤다.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고령층이었다.
남아있던 시위자 일부는 "고생 많았다"며 서로를 격려했고, 천막 안에서는 밤새 쌓인 컵라면 용기와 폐박스 등을 정리했다.
곳곳에 설치된 텐트와 천막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내부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경기장 출입구를 둘러싼 경찰 바리케이드는 축소됐고 현장에 배치된 경찰 인력도 크게 줄었다.
경찰은 전날 투표지 검증부터 이날 반출까지 기동대 28개 부대와 송파경찰서 소속 경찰관 등 총 2000여명을 투입해 현장 질서 유지와 투표지 이송을 지원했다.
2-3 게이트 앞에서 캠핑 의자를 접고 짐을 정리하던 60대 중반 남성 A 씨는 그동안 현장에서 침묵 1인 시위를 이어왔다. 그는 "처음에는 한두 시간 구호나 외치려고 왔다가 147일 동안 밤낮으로 있게 됐다"며 "맨몸으로 왔는데 짐이 너무 많아져 일단 정리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3 게이트 인근에 텐트를 치고 지내던 또 다른 60대 남성은 "투표지가 모두 빠져나가면서 더 이상 이곳을 지킬 명분이 없다고 판단해 많은 사람이 떠난 상태"라며 "앞으로는 선관위나 특검 앞으로 장소를 옮길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막에서 서명을 받던 60대 여성은 "여기 계속 있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다"며 "이제 특검을 통해 검증했으니 대법원이나 특검 앞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철수 공지가 나오면 거기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현장에서 텐트 3개를 설치하고 농성을 이어온 여성 유튜버 B 씨는 "투표지가 반출되더라도 올림픽공원은 상징적인 장소"라며 "여기서 시작했으니까 계속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재선거'에서 '부정선거'로…청년층 이탈에 집회 규모 축소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 당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등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올림픽공원 시위의 발단이 됐다.
투표 중단과 지연에 반발한 시민들이 투표함 반출을 막아섰고 같은 달 5일 경찰과 선관위가 투표함을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옮기자 시위도 개표소 앞으로 번졌다.
초기에는 20·30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참정권 침해에 대한 항의와 재선거 요구가 이어졌다. 일부 참가자들은 부정선거 주장이나 정치적 구호를 자제하자며 강경 보수 세력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 첫 주말인 같은 달 6일 밤 경기장 일대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한때 3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집회가 장기화하면서 '부정선거' '한미공조' 등 구호가 주를 이루고 성조기가 등장하는 등 극우 성향이 짙어졌다.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 등 부정선거 주장을 펴온 인사들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방문도 잇따랐다. 아울러 시위 방향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고소·고발로 번기지도 했다.
이 과정에서 초기 참여했던 청년층 일부가 이탈하면서 규모도 점차 축소됐다. 한때 대규모 인파가 몰렸던 현장에는 일부 고령층과 유튜버 등을 중심으로 천막을 설치하고 숙식하는 농성이 이어졌다. 당초 참정권 침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시작된 집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부정선거 의혹 규명과 정치적 주장을 앞세우는 성격으로 변했다.
투표지 반출로 현장을 지켜야 할 직접적인 명분이 사라지면서 5개월 가까이 이어진 올림픽공원 봉쇄 시위는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모습이다. 참가자들이 대거 떠난 데다 남아 있는 인원도 줄어들면서 집회 동력은 더욱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장 검증 방식과 결과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검증은 재검표가 아닌 수사 활동의 일환으로 이상 투표지가 발견되더라도 지방선거 당선인 결정이나 득표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올림픽공원에서의 대규모 농성은 끝나더라도 특검의 추가 수사와 검증 결과에 따라 일부 참가자들이 선관위나 특검 사무실 등 다른 장소에서 집회를 이어갈 가능성은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