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기술 성과 보호기간, 10년으로 못 자른다"
프랑스 업체 변압기 도면 무단 사용... 대법, 4차 납품분 파기환송
"최초 납품 10년 지났어도 공공영역 아니면 여전히 보호가치"
[파이낸셜뉴스] 남의 기술 성과를 무단으로 쓴 행위가 부정경쟁행위인지 따질 때 보호기간을 최초 납품 시점부터 10년으로 일률적으로 끊을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0년이 지났더라도 그 기술이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공영역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여전히 보호 대상이라는 것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지난 8일 프랑스 변압기 제조업체가 국내 변압기 업체를 상대로 낸 부정경쟁행위 금지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판결 중 네번째 납품에 관한 금지·폐기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국내 업체의 상고는 기각했다. 프랑스 업체는 모방 변압기의 제조·판매 금지와 폐기, 30억1654만7738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한국철도공사가 발주한 동력분산식 철도차량의 변압기를 국내 업체가 수주한 뒤 프랑스 업체에 제작을 의뢰한 사건이다. 양측은 2010년 4월 제작·공급 계약을 맺었고, 프랑스 업체는 2011년 초부터 2013년 초까지 변압기 63대와 부품의 형상·크기·조립 형태가 담긴 도면을 넘겼다. 도면에는 '비밀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원고의 승인 없이 사용하는 행위는 금지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국내 업체는 이 변압기와 도면을 써서 거의 그대로 모방한 변압기를 만들어 납품했다. 2013년 3월 1대, 2017년 12월 2대, 2019년 10월 70대, 2021년 5월 89대를 차례로 수주해 지난해 8월까지 넘겼다.
쟁점은 두가지였다. 이 납품이 부정경쟁방지법이 금지한 성과도용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기술 성과의 보호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해 네번째 납품을 책임 범위에서 뺄 수 있는지다. 성과도용은 타인이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든 성과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사용해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2013년 7월 신설된 보충적 일반조항이다.
1심은 모방 변압기의 제조·판매 금지와 폐기, 손해배상 2억5000만원을 명했다. 2심은 네 납품 모두 성과도용의 요건을 갖췄다고 보면서도, 기술 관련 성과는 일정 기간만 보호된다며 보호기간을 최초 납품 시점인 2011년 초부터 10년으로 잡았다. 그 결과 2021년 5월 계약에 따른 네 번째 납품은 기간이 지난 뒤여서 책임이 없다고 판단하고, 나머지 세 납품에 대한 손해액을 8억681만1264원으로 늘렸다. 첫 납품은 조항 시행 전이라 민법상 불법행위로 봤다.
대법원은 앞선 세 납품에 대한 판단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반면 보호기간을 잘라낸 부분은 법리를 오해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의 성과인 이 사건 변압기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그 보호기간을 제한할 수 있다거나 제4 납품행위 당시 이미 보호기간이 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근거는 세번째와 네번째 납품 사이의 간격이었다. 두 납품이 끝난 시점의 차이가 2개월 정도에 불과하고 납품 대상도 같으며, 그사이 기술적 특징이나 국내 업체의 기술력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네번째 납품분 역시 2011년 초 받은 변압기를 거의 그대로 모방한 것이고 공공영역에 속한다고 볼 자료도 없는 만큼, 10년이 훨씬 지난 뒤에도 보호가치가 있는 성과물로 볼 소지가 크다고 했다.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