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자체 자치행정권 흔드는 국가유산청
지난 7월 대한민국 최초로 부산에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렸다. 위원회는 당시 한국의 갯벌(2단계) 등 신규 등재 및 보존 현안 33건을 심의했다. 세계유산 보유국은 국제 협약에 근거해 해당 세계유산의 보존가치(OUV)를 유지하기 위해 유산의 자체의 훼손 방지는 물론이고 주변부 개발에 의한 부정적 영향도 관리해야 한다.
세계유산이 대도시의 도심에 자리한 경우엔 보존과 개발을 둔 갈등의 소지가 다분하다.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세계유산영향평가(HIA) 갈등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난 3월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의 발효로 세계유산영향평가 제도가 세계 최초로 법적 의무사항이 됐다. 근래까지 HIA는 필요한 경우 소수의 사례에만 적용됐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규제 일변도의 의무화된 법과 제도가 강제됐다. 세계유산지구 밖이라도 해당 사업이 세계유산의 보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국가유산청장이 HIA 실시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평가 결과에 따라 세계유산지구 밖의 사업이라도 계획변경이 불가피해진다.
문제는 세계유산에 영향을 판단할 구체적·객관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유산청의 재량으로 지방정부의 도시계획 권한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해당 지자체 주민들의 재산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보존과 개발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런던의 세계유산인 런던탑 인근 310m 초고층 빌딩 '더 샤드(The Shard)'는 도시 성장과 세계유산 보존 간 공존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무조건적인 개발 억제가 아니라, 유산의 핵심 가치가 훼손되는 지점만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대안을 설계하는 것이 성숙한 정책의 본질이다.
세운4구역 역시 종묘의 세계유산지구 밖에 있다. 그럼에도 국가유산청이 HIA 실시와 사업계획 조정을 요구하고, 급기야 서울시의 인가 취소까지 압박하며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는 지방정부의 도시계획 권한을 침해하고 주민 재산권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조치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국민의 토지재산권을 제한하는 국가의 계획재량 역시 정당성과 객관성이 결여될 경우 위법한 것으로 판시하고 있다.
규제의 일관성과 형평성도 중요하다. 세계유산인 수원화성 주변은 2023년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규제를 대폭 완화했지만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으로 세계유산 영향평가 의무가 추가됐다. 규제완화된 지역에 새로운 규제가 추가된 웃지못할 상황이 됐다. 문화유산 관련 정책의 방향이 갈팡질팡하면 기존 국가유산 규제와의 중복문제와 함께 지역·사업 간 규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향후 서울의 한양도성이나 부산 피란수도 유산 등이 신규 등재가 된다면 서울 사대문 안팎이나 부산 원도심 지역 전반에 걸쳐 유사한 혼선이 야기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려면 평가 대상과 범위,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고 기존 세계유산 법령을 합리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세계유산 보호의 목적은 도시를 멈춰 세우는 데 있지 않다. 국가유산청은 자의적 행정명령을 거두고 세계유산지구 내 사업계획 조정에 대한 객관적 판단 기준과 함께 세계유산지구 밖의 영향평가 대상 선정 기준의 수립에 관해 지방정부 및 지역주민과의 실효성 있는 협의에 나서야 한다. 사후 갈등과 법적 분쟁으로 치닫기보다 사업 초기 단계에서 객관적 영향 평가 기준과 함께 이를 입체적 도시계획에 반영하는 것을 역사 보존과 도시의 미래, 시민의 삶을 함께 지켜내는 길이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