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공백은 '생활비 버킷' 으로… 은퇴 앞둔 50대 자산배분법 [금융 오디세이]
은퇴 시점 맞춰 자산 비중 조절
퇴직후 3~5년간 사용할 자금
원리금 보장 상품·단기채로 마련
증시 따라 주식형 자산 손해봐도
연금계좌 내 손실 회복 시간 확보
돈을 모으고, 불리고, 지키는 일. 우리금융그룹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금융이라는 복잡한 여정에 이정표를 제시한다. 자산 관리부터 안전한 금융생활까지, 일상에 필요한 정보와 시장을 읽는 깊이 있는 통찰을 전한다.
#. 국내 제조업체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는 김모씨(56)는 최근 퇴직연금 계좌를 확인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3년 전부터 퇴직연금 3억원의 70%인 2억1000만원을 주식형 상품에 투자해 왔는데, 지난달 주가지수가 18% 가까이 하락하면서 평가액이 3800만원 가까이 줄어든 탓이다. 올해 여름까지 증시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투자 비중을 조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김씨는 정년까지 불과 4년을 남겨둔 시점에서 손실을 회복할 시간이 충분할지 걱정이 앞섰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퇴를 앞둔 50대 투자자들은 주식시장 전망보다 자신의 '은퇴 달력'을 먼저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다. 퇴직 시점과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따져 소득 공백 기간을 확인한 후, 이 기간에 필요한 생활비를 미리 확보해야 한다.
■'소득 공백기' 채울 생활비 버킷부터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은 주가가 언제 회복할지 걱정하는 김씨에게 은퇴 이후의 소득 공백부터 살펴볼 것을 권했다. 김씨는 60세에 정년퇴직하지만 국민연금은 65세부터 받을 예정이다. 5년간 소득 공백이 발생하는 셈이다.
김씨가 이 기간 퇴직연금 등으로 충당해야 할 생활비는 월 250만원이다. 1년이면 3000만원, 5년이면 1억5000만원이 필요하다. 이는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매달 마련해야 하는 돈이다.
박 지점장은 은퇴 이후 일정 기간 사용할 생활비를 미리 안전자산으로 확보하는 '생활비 버킷' 전략을 제안했다. 퇴직 후 3~5년간 사용할 자금을 원리금보장 상품이나 단기채 등에 따로 마련하고, 나머지는 장기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버킷의 크기는 현재 생활비와 기대 수명, 물가, 의료비 등을 고려해 계산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증시가 급락하더라도 당장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식형 상품을 헐값에 처분할 필요가 없다. 김씨는 우선 3년치 생활비인 9000만원을 안전자산으로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퇴직이 가까울수록 이러한 자산배분은 더욱 중요해진다. 젊을 때는 시장이 급락하더라도 회복을 기다릴 시간이 있지만, 은퇴 직전에는 사정이 다르다. 손실을 만회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손실이 난 자산을 처분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의 무게중심을 바꾸자
박 지점장은 "퇴직연금의 자산배분도 은퇴 시점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30대와 은퇴를 앞둔 50대가 같은 투자 전략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젊을 때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데 집중했다면,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모아둔 자산을 지키면서 오래 나눠 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김씨도 은퇴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해 퇴직연금의 자산배분을 다시 설계했다. 기존 70%였던 주식형 비중을 40%로 낮추고, 채권형은 20%에서 30%로 높였다. 원리금보장·현금성 자산 비중도 기존 10%에서 30%로 확대했다. 주식형 상품을 한번에 처분하지는 않았다. 증시가 급락한 시점에 모든 자산을 매도하면 그날의 시장 가격에 투자 결과가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 투자 비중을 조정하는 '분할 리밸런싱'을 선택했다.
물론 50대라고 해서 누구나 주식형 비중을 40%로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연금이나 부동산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배우자의 소득은 있는지, 자녀 부양이 끝났는지 등에 따라 적정 비중은 달라진다.
다만 한 가지 원칙은 분명하다. 주식형 자산은 '앞으로 5년 안에 쓰지 않을 돈'의 범위에서 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채권형 상품도 금리 변동에 따른 손실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시장금리가 오르면 기존 채권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채권형 펀드 등에 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형 상품을 고를 때는 자금 사용 시점과 만기가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 돈을 꺼내 쓸 시점과 만기가 크게 어긋나는 장기채보다 해당 시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중단기채를 고려할 만하다.
은퇴가 가까워졌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자산을 안전자산에 묶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장 사용할 생활비는 안전하게 확보하되, 장기간 운용할 자산은 물가 상승에 대비해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연금 수령 방식에 따른 세금도 고려해야 한다. 퇴직급여를 일시금 대신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박 지점장은 은퇴 준비를 긴 항해에 비유했다. 퇴직을 앞둔 50대라면 당장의 시장 변동을 견디는 동시에 은퇴 이후 수십 년의 삶까지 대비해야 한다. 박 지점장은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은 파도의 높이가 아니라 배의 무게중심"이라며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통제할 수 없지만, 자산배분과 연금 수령 계획은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 주식 비중과 안전자산 몫, 연금 수령 계획을 자신의 은퇴 시점에 맞춰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움말: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
[email protected] 이현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