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피킹 파워 딜레마
'중국 차가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 내에서는 추락하고 있다.'
10월 28일 월스트리트저널 1면 기사 타이틀이다. 앞뒤 내용이 상반되는 제목이다. 외국에서는 잘 팔리는데 중국 내 자동차 산업은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초저가 출혈수출은 늘었지만, 국내 소비와 수익은 왕창 줄었기 때문이다. '피킹 파워 딜레마(Peaking Power Dilemma)'는 기사를 보면서 나에게 떠오른 생각이다. 2021년 등장한 국제정치 인기 용어로,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하의 중국을 지칭할 때 반드시 따라붙는다. 존스홉킨스대학 할 브랜즈 교수가 주창한 개념으로, '국가 발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모순'으로 풀이할 수 있다.
'피킹 파워 딜레마'는 나폴레옹 등장 이후 지난 200여년간 세계 패권 흐름을 관찰한 결과다. 정점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국가들의 행동 패턴은? 외교·군사적 측면과 지도층의 심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순 또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국가 발전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갑자기 '폭력적·극단적·이분법적'으로 나아간다.
브랜즈 교수는 2020년대 초반부터 중국의 구조적 하강이 시작됐다고 본다. 인구, 경제, 부동산 모든 것을 데이터로 압축해 내린 디지털 결론이 바로 '중국 하락'이다. 인공지능(AI)·전기차(EV)·로봇으로 떠들썩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부 보조금으로 지탱되는 온실 속 꽃에 불과하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시들어 죽는다. 대만 문제는 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 시진핑의 만병통치 해결책이다. 바로 '피킹 파워 딜레마'에 등장하는 전형적 모델이다. 어두운 현실을 감추기 위한, 국가·국민 총동원 전쟁을 통한 단기처방이다.
국가 차원 '피킹 파워 딜레마'는 개인 수준의 행동과 의식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영국 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이 분석한 '매닉 디펜스(Manic Defense)'가 본보기다. 학술용어로는 '조증적 방어'라고 하는데, 간단히 말해 정신승리 증상이라고 보면 된다. 소멸감과 실패에 직면할 때 나타나는 현실 외면 폭주형 행동이자 심리다.
갑자기 몸매나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 명품에 빠진다. 자식뻘 젊은 이성도 사귀고, 고급 시계와 자동차도 구입해 왕처럼 마음껏 즐긴다. 반드시 비이성적·부정적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관심도 없던 프로젝트에 매달리면서 일벌레로 변신하거나, 술과 음식도 철저히 조절한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약해지고, 불면의 밤이 끊이지 않는다. 아직 죽지 않고 건재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몸부림, 아니 발악이라고 할까? 40대 중반 '중년위기(Midlife Crisis)'와 비슷하지만, 모든 세대가 대상이란 점에서 '매닉 디펜스'와 구별된다.
2026년 한국 정치인 상당수가 '매닉 디펜스' 상태에 있는 듯하다. 모바일 SNS는 십대만이 아닌, '매닉 디펜스'에 직면한 폭주형 인간의 최우선 피난처 중 하나다. 기우이길 빌지만 '피킹 파워 딜레마'에 빨려드는 정치가도 한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캄보디아·우크라이나·이스라엘에 대한 호령과 호통이 마침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매닉 디펜스'에서 자유롭고, '피킹 파워 딜레마'를 원만히 풀어갈 한국형 정치가는 언제쯤 나타날까.
유민호 워싱턴 퍼시픽21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