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손성진 칼럼

[손성진 칼럼] 세계 산업판도 바꾸는 중국, 우리는?

파이낸셜뉴스

유럽이 산업혁명 선도했지만
전통 제조업에 안주, 위기 초래
그사이 중국이 세계시장 점령
중국 '레드웨이브' 한국도 덮쳐
반도체 믿고 희희낙락은 안 돼
스타트업·산업 생태계 육성을

논설실장
논설실장

200년 전 유럽에서는 증기기관의 힘으로 철도가 달리고, 방직공장에서는 기계로 베를 짜기 시작했다. 호모사피엔스 출현 이후 인간이 손으로 하던 일을 30만년 만에 기계가 대체한 1차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쌓은 부(富)와 파워로 유럽 제국은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경영했다. 대영제국은 전 세계 땅의 25%를 지배한 최강국이었다.

미국이 최강국으로 떠오른 것은 100년 전인 1차 세계대전 이후다. 포드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필두로 대량생산의 길을 튼 미국은 당시 세계에서 운행되는 자동차의 80% 이상을 생산한 국가였다.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70% 이상을 통제했고 전기와 비행기, 텔레비전 등의 역사적 발명품으로 세계 시장을 점령한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이었다.

미국과 그 뒤를 따르던 유럽, 일본 등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화(榮華)는 꺼지지 않는 성화로 여겨졌다. 전통적 제조기술은 후발 주자들이 뛰어넘기 어려운 경지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첨단산업의 발전은 200년의 세월을 단기간에 뒤집고 있다. 그 중심에 중국이 있다.

중국의 본격적인 부상(浮上)은 세계 산업 판도를 단숨에 바꾸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생산기지에 머물 것 같았던 중국이 산업 주도국으로 등장한 데는 수십년의 짧은 기간이 걸렸을 뿐이다. 당송(唐宋) 시대의 번영 이후 천년 동안 가라앉은 잠재력이 폭발하는 모양새다.

사회주의적 통제와 자본주의적 자유의 절묘한 배합은 여타 개발독재보다 유용했다.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으로 국가가 정책을 통제하며 밀어붙이는 중국적 '굴기'는 예상을 넘는 성과를 내며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한국을 예로 들면 중국 BYD가 한국 진출 9개월 만에 전기차를 2만대 넘게 판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아시아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의 민중이 체제를 위협할 듯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근저에는 중국이 있다. 가격을 무기로 한 중국 소비재들이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밀려든 것은 오래됐다. 유럽 소비자들은 한달이 걸려도 품질도 나쁘지 않고 가격이 싼 중국산 제품을 기꺼이 기다린다.

벤츠와 르노의 자동차가 다니던 유럽 땅을 중국의 전기차 브랜드들이 장악해 가고 있다. 다른 부문에서도 중국은 이미 유럽 시장을 잠식했다. 지난 10년간 유럽연합(EU)의 대중국 수입액은 3564억달러에서 7248억달러로 두배 이상 늘었다. 배터리는 90%, 태양광은 98%가 중국산이다. 산업혁명의 본고장이 중국에 먹히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실착은 전통적 제조업에 안주한 것이다. 기계와 화학을 기반으로 한 자동차산업, 중화학공업은 산업혁명 이후 2세기 동안 유럽을 지탱한 기둥과도 같은 산업이었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기술력은 계속 앞서갔고 컴퓨터, 반도체, 인터넷, 로봇, 인공지능이 이끄는 3차·4차 산업혁명에 투자하지 않았다.

유럽과 같은 보수적 태도로 일관한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노키아, 필립스, 소니 같은 기업들이 쇠퇴한 것은 유럽과 일본의 추락에 직격탄이 되었다. 산업의 중심지가 유럽과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첨단산업에 집중하면서도 자동차 기업 볼보와 같은 유럽의 전통적 제조업체들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경제가 번창할 때 유럽은 복지카드를 마구 뿌렸다. 한번 제공한 혜택은 거둬들이기 어렵다. 잘나갈 때야 세금이 잘 걷히니 문제가 없다.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고 돈이 없어 약속된 복지정책을 이행하기가 어려워졌다.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정부는 대안이 있을 리 없다.

한국이 제2의 유럽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반도체 하나는 잘했고, 잘하고 있다. 선지적인 기업가들 덕분이다. 그러나 누구든 반도체 하나만 보며 "우리는 유럽과 달라"라고 할 때가 아니다. 반도체에 가려진 실상부터 파악해야 한다. 자동차는 이미 끝났다는 말도 있다. 극단적 표현이지만 중국의 기세가 그만큼 무섭다는 뜻이다.

10여년 후면 중국은 미국을 자신의 아래로 끌어내릴 수도 있다. 미국마저 두려움을 느끼는데 희희낙락할 때가 아니다. '차이나 레드웨이브(China Redwave)'는 거센 파도처럼 한국을 덮쳐오고 있다. 한국형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거대한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으로 막아낼 수 없다. 스타트업을 길러내고 산업 생태계를 육성해야 한다. 어떻게 할지 모른다면 공무원들이 중국에 가서 배워 와야 한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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