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821조 슈퍼예산, 속도보다 정밀검증이 먼저다
李대통령, 시정연설서 내용 설명
여야, 책임감 갖고 심사 숙의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직접 설명했다. 총지출은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12.8% 늘었다. 역대 정부 본예산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확장재정을 집행해 높은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게 내년도 예산안의 주요 특징이다.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은 전략상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밀물이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으라는 말처럼, 수출이 늘고 세수가 많이 걷힐 때 성장 모멘텀을 더욱 강화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나아가 많이 걷힌 세수를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곳에 안배한다는 점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같은 미래 성장동력과 인재에 투자한다는 점도 공감한다.
그럼에도 내년도 예산안 편성 취지에 걱정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는 분명히 내수와 산업 활성화를 도모하는 마중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기대효과에 힘입어 내년도 경제성장률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번 늘린 재정지출이 가져오는 중독 증세를 걱정하는 것이다.
현재 세수가 늘어나는 것은 반도체 호황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호황이 꺾이면 세수는 자연히 급감할 텐데 한번 늘린 재정지출은 쉽게 줄이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시적 재원으로 계속사업을 늘리면 세수가 둔화한 뒤에도 지출을 해야 되기에 재정이 불안해진다.
나아가 재정지출 확대는 침체된 내수를 진작하는 데 불쏘시개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과도한 재정지출은 순기능과 함께 부작용도 함께 낳는다. 정부의 지출이 늘어나면 총수요를 자극한다. 우리 경제의 현실을 보면 내수 살리기와 물가 안정이 급하다. 두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재정지출을 확 줄이는 것도 안 되지만 과도하게 늘릴 경우 고물가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특히 미래대응기금을 놓고 여야 간에 논쟁이 치열하다. 기금 설립 초기부터 시작된 여야 간의 엇갈린 시각이 아직까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논쟁의 근저에는 미래대응기금 재원의 지속 가능성 여부에 있다. 실제로 국회 예산정책처는 추가 세수가 지속되기 힘든 가능성을 전망했다. 최근 기대되는 추가 세수는 지속적 재원이 아니라 2027∼2028년에 집중되는 일시적 재원에 가깝다는 평가다. 미래대응기금이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면 좋겠지만,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따라서 역대 최고의 예산 편성에 고무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바라보며 전략적 예산 편성을 고민해야 할 때다. 세수 호조기에 급증한 채무를 줄이는 것이 국가재정법의 취지에 맞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곳간이 넉넉할 때 적정 규모의 나랏빚을 청산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대통령의 이날 시정연설을 계기로 내년도 예산안의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정부는 예산안 편성이 실제 효과를 내려면 실행과 속도에 달렸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잘못된 예산안은 거듭 숙고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역할을 국회에서 하는 것이다. 여당은 정부 원안을 밀어붙이는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당도 정부의 예산안을 발목잡기로 일관할 게 아니라 합리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