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줄 사람 없어 문 닫습니다"…후계자 절벽에 M&A 눈 돌리는 中企
[편집자주]고령화 덫에 걸린 중소기업의 '후계자 절벽'이 지역경제와 제조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제3자 사업승계 세제특례와 협약보증을 내놨지만, 까다로운 요건과 가치평가 간극, 인수자금 조달 한계 탓에 실제 계약까지는 넘어야 할 문턱이 많다. 기 처방을 넘어 '중소기업 승계 특별법' 제정으로 상시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인수 이후 기술 전수와 스케일업까지 뒷받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소기업 승계형 인수합병(M&A)의 현장 걸림돌과 제도적 해법을 짚어봤다.
(서울=뉴스1) 정지윤 기자 = # 경상도에서 산업용 특수윤활유 제조 기업을 수십 년간 일궈 온 A사 대표는 경영에서 물러날 방법을 고민했지만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택한 방법은 인수·합병(M&A)이었다. 해외 판매법인과 제조법인이 분리돼 있는 데다 사업과 무관한 자산과 공장 부동산까지 얽혀 있어 회사를 그대로 매각하기 쉽지 않았지만, 법인을 통합하고 비영업자산을 분리하는 등 매각 구조를 정비한 끝에 A사는 올해 4월 같은 지역의 무역·물류 기업에 지분 100%를 넘겼다.
# 27년간 골판지상자 제조업을 영위한 기업 B사와 C사는 자녀의 가업 승계 거부로 기업 승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특수관계인인 두 대표는 함께 회사를 매각하기를 희망했고, 매도기업 대표자들은 M&A를 통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수 있게 됐다. 매수기업은 기존 공장과 생산설비를 활용해 업계 내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
# 30여 년간 자동차부품을 제조한 한 중소기업 D사는 대표자의 고령화와 건강 문제로 은퇴를 희망했지만 후계자 부재로 기업을 매도하기로 결심했다. 거래 성사로 매도기업의 기술력과 영업 노하우를 유지하고 고용을 승계할 수 있게 됐으며, 매수기업은 생산역량을 강화해 완성차 업계 1차 협력사 거래처 확보와 해외 진출을 추진할 발판을 마련했다.
오랜 시간 축적한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쌓아 온 중소기업들이 대표자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재로 경영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자녀가 가업 승계를 거부하거나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경영자의 은퇴 이후에도 기업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승계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기술과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 인수·합병(M&A)이 승계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중소기업 경영자 60세 이상 전체 33.3%…"승계 계획 결정 못해"
3일 중소벤처기업부의 '2024년 기준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경영자의 평균 연령은 55세로 집계됐다. 경영자 연령별로는 50세 이상이 전체의 70.2%를 차지했고, 60세 이상도 33.3%에 달했다. 반면 40대 미만 경영자는 4.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 또한 적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25년 중소기업 기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에게 승계할 계획이 없거나 아직 결정하지 못한 기업들은 전체의 27.5%를 기록했다.
승계 계획이 없거나 결정하지 못한 이유 중 '본인이 젊어 승계 고려단계가 아님'을 제외하면 '기업하기 힘든 환경으로 자녀에게 기업경영의 무거운 책무를 주기 싫어서'(42.8%)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영위 업종 전망이 불투명해서'(28.9%), '자녀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24.7%) 순이었다.
가족 승계자 역시 기업승계를 망설이는 이유로 경영 환경을 지목했다. 가족 승계자 중 기업승계를 희망하지 않았거나 고민한 이유는 '중소기업 경영 환경 열악'이 54.4%로 가장 높았다. '세금 문제 해결의 어려움'(32.4%), '영위 업종 전망 불투명'(29.4%) 등이 뒤를 이었다.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세금뿐 아니라 경영 자체에 대한 부담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기업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면 향후 '폐업이나 기업매각 등을 했거나,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이 40.8%에 달했다. 개인사업자는 해당 응답이 47.6%로 가장 높았다.
M&A 신청기업 30% '후계자 부재'…기술·인력 유지 '제3자 승계' 방안 모색 필요성
중소기업계에서는 친족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가업승계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기업과 기술, 고용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기업승계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후계자가 없는 기업이 폐업을 선택하기 전에 적합한 인수자를 찾고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넘길 수 있도록 M&A 시장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 자녀에게 승계하지 않을 경우 향후 기업계획으로는 '전문경영인 영입'이 25.3%로 가장 높았고, '매각'이 21.1%, '임직원 승계'가 16.6% 순이었다. 특히 개인사업자와 상장법인에서는 매각을 고려한다는 응답이 각각 32.5%, 37.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기업들도 제3자 승계와 M&A를 위한 정책적 지원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 전체 응답 기업의 64.5%는 제3자 승계 및 M&A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한 지원으로는 '승계 시 세금 부담 완화'가 70.8%로 가장 많았고, '승계 관련 법적 절차 간소화'(39.3%), '전문가 컨설팅 지원'(25.3%) 등이 뒤를 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후계자가 없어 기업승계가 어려운 경우 폐업할 수밖에 없는 만큼 M&A도 하나의 선택지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의 관련 제도를 참고해 후계자가 없는 기업을 위한 M&A 관련 지원이 필요하다는 건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IBK컨설팅센터에 따르면 IBK컨설팅센터가 2023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M&A 자문을 제공한 기업은 총 696개사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3년 160개사, 2024년 203개사, 2025년 203개사였으며 올해는 8월까지 130개사가 지원을 받아 건수는 꾸준히 증가세다.
특히 M&A를 통해 회사를 매각하려는 기업 중 상당수는 후계자 부재로 인한 문제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IBK컨설팅센터의 M&A 중개·주선 매도 신청기업 가운데 약 30%는 후계자 부재를 이유로 매도를 신청했으며, 실제 M&A가 성사된 매도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후계자 부재가 매각 사유인 비중은 약 80%에 달했다.
M&A 전문 플랫폼 브릿지코드의 박상민 대표는 "후계자가 없다는 이유로 수십 년간 쌓아 온 기술과 거래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산업 전체의 손실"이라며 "승계가 꼭 가족에게 물려주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회사를 더 키워 갈 새 주인을 찾는 것 역시 창업주가 일궈 온 가치를 지키는 또 하나의 승계"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 M&A 과정에서의 현실적인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 중소기업계 한 관계자는 "매도자와 매수자 간 정보 비대칭과 기업가치에 대한 인식 차이가 주요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매도자는 기업의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 등을 높게 평가하는 반면, 매수자는 재무 실적과 인수 이후의 경영 안정성을 중시해 가격에 대한 견해차가 발생하기 쉽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기술유출 우려와 복잡한 거래 절차, 세금 및 고용승계 문제 등도 원활한 M&A를 어렵게 하는 요인도 지목된다. 특히 기업 운영이 대표자 개인의 기술이나 영업 역량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 인수 이후 경영의 연속성에 대한 우려로 거래가 성사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거래 과정에서 기술과 경영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3자 승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중기부는 기업승계의 대안으로 M&A 지원체계 구축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화 사회에서 자본시장의 역할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M&A를 통해 경영자는 기업이 계속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회사 매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신규 사업 전개를 목표로 하는 기업이나 창업을 희망하는 개인은 실패 가능성을 줄이고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황 연구위원은 "현행법제에서 중소기업 경영자가 후계자 없이 은퇴하고자 할 경우 일반적인 M&A와 동일하게 진행돼야 하지만 사실상 절차도 복잡할 뿐 아니라 인수자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의 M&A 활성화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경영자의 고령화에 따른 사업자산 승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