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은 여성들이 만들었다" [fn 인사이트]
[파이낸셜뉴스] 박원갑 위원(사진)은 4일 파이낸셜뉴스와 만나 "지금은 땅도, 상가도, 단독주택도 아닌 아파트만 거래되는 '아파트 편식 사회'가 열렸다"며 대한민국이 콘크리트 공화국이 된 경로를 짚었다.
출발점은 '누가 먼저 살았느냐'였다. 박 위원은 1932년 충정로 아파트, 1958년 종암 아파트, 1962년 마포 아파트를 거치는 동안 아파트는 여전히 낯선 공간이었다고 했다. 전환점은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이었다. 그는 "국내 최초로 견본주택(모델하우스)이 등장했는데, 모델하우스는 '저기 살면 나도 행복할 것'이라는 꿈을 파는 전시장"이라며 "탤런트 강부자씨가 1호 계약자였고 당시 중상류층이 이를 소비하면서 외국에선 서민 임대주택인 아파트가 한국에선 중산층의 상징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외국의 값싼 탱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귤이 된 것"이라고 비유했다.
아파트의 매력은 상대적이기도 했다. 박 위원은 "런던의 단독주택은 중정이 있는 구조지만, 우리 단독주택은 사실상 3~4층 다가구·다세대"라며 "차도 못 들어가는 난개발로 주거 여건이 떨어지니 사람들이 아파트로 피난을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촌도 원룸 지으면 빈촌 된다는 말이 있다"며 "프랑스처럼 아파트를 허물고 단독주택으로 되돌아간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문화는 비가역성을 띤다"고 했다.
'아파트 공화국'의 핵심 동력은 여성이었다. 박 위원은 이를 '쉬코노미(She+Economy)'라고 불렀다. 그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부엌의 높이가 결정한다"며 "한옥은 난방과 취사를 함께 해 부엌이 마당보다 낮아야 했지만, 아파트는 주방과 거실 높이가 같다. 압축된 공간에서는 가부장적 권위 대신 효율과 실용이 작동한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식탁처럼 주방이 거실로 나오는 설계 변화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아파트를 '편의+프리미엄', 즉 '편리미엄의 극치'로 규정했다.
여기에 안전이 얹혔다. 박 위원은 "가성비가 아니라 '가안비(가격 대비 안전)', 안전하면 돈을 더 내겠다는 주거 안전주의가 아파트 쏠림의 심리적 기저"라며 "여성들은 집 안뿐 아니라 울타리와 차량 게이트까지를 보호받아야 할 '확장된 거실'로 본다. 단지가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인 셈"이라고 했다. 젊은 층이 오피스텔을 '꼬마 아파트', '콘크리트 캐슬'로 받아들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부동산 트렌드는 꼰대 시각이 아니라 젊은 여성의 시각에서 봐야 읽힌다"고 말했다.
자산화는 그다음 단계였다. 박 위원은 "아파트는 사실상 부동산이 아니다. 규격화·표준화돼 있어 유사 금융상품이라는 표현도 쓴다"며 "옆집이 10억원에 팔리면 우리 집도 10억원이라는 계산이 서니 환금성이 높고, 그래서 단독주택보다 변동성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200만호 공급을 계기로 재테크 인식이 강해졌다"며 "최근 논문을 보면 집을 살 때 투자재(하우스) 기능을 안식처(홈) 기능보다 3.5배 높게 평가한다. 가치가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부동산에서 빠진 돈이 곧장 증시로 향한다는 통념엔 선을 그었다. 박 위원은 "토지보상금도 예전엔 100억원 중 80억원이 부동산으로 재유입됐지만 지금은 20% 수준"이라며 "주식은 휘발성 자산이라 연령대가 높을수록 예금이나 단기자금으로 묶어둔다. 금융시장으로 간다는 건 맞지만 반드시 주식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집 두 채를 사는 시대가 아니라 한 채 사고 나머지는 주식으로 가는 시대"라고 정리했다. 결국 선택은 각자의 투자 경험치와 변동성을 견디는 성향에 달렸다는 것이다.
전망은 신중한 낙관에 가까웠다. 박 위원은 "1인당 국민소득이 올라가는데 수도가 망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나. 700년 된 서울의 경쟁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며 "통화량이 늘면 우량자산에 먼저 반영되는 캔틸론 효과도 작동한다. 도심의 가치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기 과열은 경계했다. 그는 "올해 들어 16% 오른 지역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많이 오른 것"이라며 "가격이 부풀려지면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다"고 했다. 금리도 변수다. 박 위원은 "모든 자산 가격의 중력은 금리"라며 "기준금리가 3.25% 수준이면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3.5%까지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발 고금리 쇼크 때 수도권 실거래가가 20% 급락했던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공급 부족에도 집값이 떨어진 캐나다 사례도 함께 들었다.
[email protected] 한영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