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나쁜 사과, 좋은 사과
추미애 지사 사과 논란 일파만파
사과는 관계 회복을 위한 첫걸음
상대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고
피해회복 위한 조치도 뒤따라야
사과는 용서를 얻는 기술이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과정
오늘은 사과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붉고 탐스러운 사과(Apple) 말고, 어팔러지(Apology), 이 사과 말이다. 한자로 하면 사과(沙果) 아니고 사과(謝過) 얘기다. 요즘 사과가 아주 핫하다. 추미애 경기지사가 소방예산과 관련해 촉발한 사과 논란이 한고비 넘기긴 했지만, 각종 매체와 온라인상에는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살다 보면 사과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인터넷엔 '사과문 잘 쓰는 법'도 단계별로 상세하게 나와 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아론 라자르가 쓴 심리학 교양서 '사과에 대하여'(2004)부터 유명인들의 사과문을 꼼꼼하게 분석한 '공개 사과의 기술'(2014), 사과와 관계의 회복을 되짚어본 '사과를 망설이는 어른에게'(2024)까지 사과를 다룬 책도 제법 많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려면 갈등을 풀고 소통하는 방법을 하나쯤은 익혀둬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논란을 일으킨 추미애 지사의 소방관들에 대한 사과는 나쁜 사과의 전형에 속한다. 아론 라자르는 좋은 사과에는 잘못의 인정과 적절한 설명, 후회와 겸손의 표현, 그리고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원칙에 비춰 보면 추 지사의 사과는 잘못의 명확한 인정은 물론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책임 있는 후속 조치라는 측면에서 매우 미흡했다. "소방관 여러분께 상처를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바로 말했으면 좋았을 걸 "사과를 바라시니까"라거나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이 됐다면"이라고 토를 달다 보니 사과의 본뜻이 흐려지고 말았다. 처음부터 담백하게 인정했다면 재차 사과하거나, 눈물로 진정성을 호소하는 일도 없었을 터다.
사과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쁜 경우다. 주진우 의원은 김혜경 여사의 이른바 '황제 골프' 의혹을 제기하면서 프로골퍼 리디아 고로부터 레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리디아 고가 곧바로 "오늘 보도된 기사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저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라고 반박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기자들이 "리디아 고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사과하라는 것은 이 사안을 물타기 하기 위한 민주당의 프레임에 불과하다"며 공개적인 사과를 거부했다.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대통령 가족의 골프에 대해 비판할 순 있지만 엉뚱하게 이름이 거론된 리디아 고에게는 사과를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사과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도 많다. 2022년 캐나다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가 캐나다 원주민 아동들에게 저지른 학대와 강제 동화 정책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과거 교회가 저지른 일을 '악(Evil)'으로 규정하고 원주민들에게 진정한 용서를 구했다. 특히 용서를 구하는 것이 사태의 끝이 아니라며 진상조사와 책임규명 등 후속 조치의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사과에 인색하지 않았다. 대통령 후보 시절 자동차 공장을 취재하던 여기자를 '스위티(Sweetie)'라고 불러 성차별 논란이 일자 곧바로 전화를 걸어 신속하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우도 좋은 사과의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이른바 'JY 사과 리더십'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감염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되자 이 회장은 직접 국민 앞에 나서 책임을 인정하고 병원 혁신과 피해자 지원을 약속했다. 2020년에는 경영권 승계 논란과 무노조 경영에 대해 사과했고, 지난 5월에도 노조 총파업을 앞두고 국민과 고객에게 사과했다. 다른 기업 사례로는 무신사도 있다. 2019년 고 박종철 열사를 희화화한 광고로 집중포화를 맞은 무신사는 즉각 사과하고 유족과 기념사업회에 직접 사과할 기회를 요청했다. 광고 제작·검수 담당자를 징계하고 재발방지 대책도 내놨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콘라트 로렌츠는 "패자가 항복을 표시하면 승자는 대개 공격행동을 멈춘다"고 했다. 사과는 어쩌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화해의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상처를 헤아리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사과의 정석은 복잡하지 않다. 잘못했다면 신속하고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변명이나 남 탓 없이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하면 된다. 무엇보다 사과는 용서를 받아내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과정이어야 한다.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은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얻지만,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보다 더 큰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