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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낙엽이 가르쳐준 비움의 과학

파이낸셜뉴스
문애리 덕성여대 약대 석좌교수
문애리 덕성여대 약대 석좌교수

"떠나가는 것들로 가득한 나날입니다. 가을은 오자마자 무엇이 급한지 다시 저만치 가고 있고 마지막 축제 같던 가을 꽃도 이제 시들었습니다." 조간신문에 실린 한 시인의 고백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어릴 적부터 가을이 좋았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깊어지는 계절, 유독 짧고 눈부셔서 더 애틋한 계절이다. 책장에 붉은 단풍잎을 끼워 두던 어린 날의 기억도 여전히 선명하다. 며칠 전까지 온 산을 물들이던 단풍은 어느새 가지를 떠나 길가에 소복이 쌓인다. 찬란한 충만함과 쓸쓸한 소멸이 스치듯 교차하는 찰나, 어쩌면 그것이 가을의 낭만일 것이다.

그런데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이 소멸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나뭇잎은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낮이 짧아지면 나무는 엽록소를 분해해 질소 같은 귀한 양분을 줄기로 거둬들이고, 그동안 초록에 가려 있던 노란 카로티노이드와 새로 만들어 낸 붉은 안토시아닌이 단풍의 빛깔로 드러난다. 그리고 잎자루 끝에 '떨켜'라는 얇은 세포층을 만들어 스스로 잎을 떼어낸다. 떨켜의 세포들이 제 몸을 허물어 길을 내주면, 잎은 바람 한 줄기에 가볍게 가지를 놓는다. 떨어진 잎은 흙으로 돌아가 이듬해 숲을 먹이는 거름이 된다. 혹독한 겨울을 건너 봄의 새순을 틔우기 위한, 미리 계획된 작별이다.

우리 몸의 세포도 같은 지혜를 품고 있다. 세포가 정해진 신호에 따라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현상을 '아포토시스(apoptosis)'라 부른다. 1972년 이 개념을 처음 제안한 과학자들은 꽃잎이나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이 이름을 빌려 왔다. 세포 안에서 캐스페이즈(caspase)라는 효소가 차례로 깨어나면 세포는 DNA를 잘게 나눈 뒤, 주변에 염증 하나 남기지 않고 조용히 정리된다. 엄마 뱃속 태아의 손가락 사이 물갈퀴가 사라지는 것도, 뇌의 신경망이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것도 이 덕분이다. 병들거나 손상된 세포, 제 역할을 다한 면역세포도 이렇게 스스로 물러나며 자리를 내어준다. 성인의 몸에서는 하루에만 500억~700억개의 세포가 이렇게 물러난다. 반대로 사라져야 할 세포가 끝내 버티며 증식을 멈추지 않으면 그것이 암이 된다. 떠날 때를 아는 것이 곧 생명을 지키는 일인 셈이다.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이 '예정된 세포 죽음'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찾아낸 과학자들에게 돌아간 것도 그만큼 이 현상이 생명의 근본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차가워진 바람 속에서 낙엽을 바라보며, 그 쓸쓸함을 조금은 다르게 읽어본다. 낙엽은 끝이 아니라 나무가 다음 봄에 건네는 약속이고, 소멸은 실패가 아니라 생명이 오랜 세월 다듬어 온 가장 정교한 기술이다.

우리 삶에도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있다. 오래 붙들고 있던 욕심,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 이제는 맞지 않는 옛 습관 같은 것들이다. 잘 비워낸 자리에 비로소 새것이 깃든다는 사실을 나무와 세포는 말없이 보여준다. 비움은 잃는 일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계절이 저만치 떠나가는 길목에서, 내 안의 묵은 잎 하나를 가만히 떨궈 보면 어떨까. 그렇게 가벼워진 마음으로 맞는 겨울은 조금 덜 춥고, 그 끝에 올 봄은 한결 환할 것이다.

문애리 덕성여대 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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