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사설] 국내 가격이 해외보다 비싸면 제재, 구시대적 발상

파이낸셜뉴스

반시장적 규제, 판단 기준도 모호
진입 장벽 낮춰서 경쟁 촉진해야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공정거래법 시행령 중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금지' 조항의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독과점 사업자가 해외 시장보다 국내에서 가격을 부당하게 높게 책정하거나 원가 상승기에는 상품 가격을 빠르게 올리면서 원가 하락기에는 높은 가격을 유지해 폭리를 취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했다./ 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공정거래법 시행령 중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금지' 조항의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독과점 사업자가 해외 시장보다 국내에서 가격을 부당하게 높게 책정하거나 원가 상승기에는 상품 가격을 빠르게 올리면서 원가 하락기에는 높은 가격을 유지해 폭리를 취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했다./ 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 시행령 중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금지' 조항의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독과점 사업자가 해외 시장보다 국내에서 가격을 부당하게 높게 책정하거나 원가 상승기에는 상품 가격을 빠르게 올리면서 원가 하락기에는 높은 가격을 유지해 폭리를 취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했다. 그러나 시장 안팎에서는 사실상 정부의 가격통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독과점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남용은 당연히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원가보다 상당히 높거나 해외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기업을 처벌할 경우다. 무엇이 적정 가격인지를 정부가 판단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 남용을 막겠다는 취지가 자칫 정부가 시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2007년 공정위는 가격이 원가에 비해 현저하게 높거나 동종 업종의 통상적인 수준보다 지나치게 높으면 가격 남용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당시 업계는 반시장적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규제개혁위원회가 시장경제의 근본 원리와 충돌한다며 철회를 권고해 무산된 바 있다.

위법성 판단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우려된다. 개정안은 가격 남용의 성립요건인 가격의 '현저한 상승'을 '상당한 상승'으로 완화해 입증 문턱을 낮췄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가격 상승을 상당하다고 볼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기업으로서는 규제당국의 자의적 해석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품의 원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규제하겠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영상 플랫폼은 이용자가 한두 명 늘어도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하지만 서버와 콘텐츠, 연구개발(R&D)에는 막대한 고정비가 들어간다. 또 높은 이윤은 그동안 위험을 감수한 투자와 혁신의 대가일 수 있다. 원가 대비 가격을 따져 규제하면 신약이나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고위험 투자 유인이 줄어들 수 있다.

해외 가격과 비교해 국내 가격을 규제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국가별 세제와 물류비, 시장 규모 등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가격을 올릴 때는 빠르고 내릴 때는 더딘 이른바 '로켓과 깃털' 현상에도 나름의 경제적 이유가 있다. 재고비용과 가격 변경 비용, 향후 원가 재상승에 대비하려는 판단 등이 작용할 수 있다.

공정위가 독과점 사업자의 부당한 가격 남용을 막으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가격을 인위적으로 누르는 방식으로는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높은 가격과 이윤은 새로운 경쟁자의 시장진입을 유도할 수 있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독과점의 폐해를 줄이는 근본적 해법이다. 정부는 입법예고 기간 경제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위법성 판단기준을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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