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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배재고 사태 이후의 과제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과 교직원, 학부모들이 6일 광주제일고를 찾았다. 청룡기 야구대회 경기 중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응원 구호를 외친 데 대해 사과하기 위해서다. 논란이 불거진 지 7일 만의 방문 사과다.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등 80여명은 광주일고에서 사과의 시간을 가진 뒤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사과문에는 반성의 문장이 담겼다. 학생선수 대표는 "인생에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배우게 됐다"고 했고, 배재고 감독은 "저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을 인정했다. 잘못을 돌아보고 고치려는 시간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어디서부터 선을 넘었느냐다. "학생들 응원 구호를 두고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별뜻 없이 했다는 말이 책임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말의 무게는 말한 사람의 의도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 말이 누구의 상처를 건드렸고, 경기장 안에서 어떤 조롱으로 들렸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스포츠는 이미 '말의 책임'을 경기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축구에서 상대를 향한 모욕적 언행은 퇴장 사유가 된다. 말도 경기의 일부이고, 그 말에 대한 책임까지 경기규칙 안에 있다는 뜻이다. 학생선수들이 배워야 할 것도 여기까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안이 정치권 공방으로 넘어가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돌아볼 기회 대신 논쟁의 소재가 됐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말은 있었지만, 정작 아이들은 사라지고 정쟁의 목소리만 커졌다. 표현의 자유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고통을 조롱할 자유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 기준은 진영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내 편의 말이면 농담이고, 상대편의 말이면 혐오가 되는 식이라면 자유도 책임도 모두 정치의 도구가 된다. 표현의 자유를 말하려면 어느 편의 말인지와 상관없이 같은 기준을 세워야 한다. 책임을 묻지 말자는 뜻도 아니다. 잘못에는 그에 맞는 징계와 조치가 따라야 한다. 다만 정치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정쟁의 소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묻고 다시 배우게 하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이제 논의의 중심은 정쟁이 아니라 아이들이어야 한다. 이번 사과 이후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의 반성의 시간을 지켜주는 것이지, 그 사과마저 진영 논리로 끌고 가는 일이 아니다. 학생선수들은 언젠가 프로 무대에 서거나 지도자가 되어 또 다른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다. 지금 경기장에서 어떤 말과 태도를 배우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spring@fnnews.com

[사설] 15년 표류한 서비스발전법, 이젠 통과시켜야

서비스산업을 제조업에 이은 국가 성장축으로 키우기 위한 논의를 더 미룰 수 없다. 구윤철 부총리와 경제단체, 관계 부처가 6일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함께 논의하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구 부총리는 회의를 주재하며 "이제는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판을 새로 짜야 한다"고 언급했고,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은 "서비스산업 고도화가 뉴 K-인더스트리 시대를 여는 핵심 과제"라고 진단했다. 한경협은 서비스산업발전법 입법과 함께 K콘텐츠 금융지원 활성화, 비대면 배송 관련 제도 개혁 등 20개 과제를 정부에 건의했다. 논의 내용이 말로 끝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의 후속 조치가 나와야 한다. 반도체와 제조업 쏠림이 심한 한국 경제는 이로 인한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은 펄펄 끓고 있는데 나머지 업종은 냉기가 돈다. 중국발 저가 공습, 미중 패권 싸움이 격해지면서 한국 제조업은 설 자리를 잃고 위태로운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리스크를 줄이고 다음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려면 콘텐츠, 관광, 의료, 물류, 뷰티,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 등 고부가 서비스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워야 한다. 서비스산업이 담당하는 고용과 부가가치 비중은 매우 높다. 한경협에 따르면 서비스산업은 국내 고용의 70%, 부가가치의 60%를 담당한다. 하지만 낮은 생산성과 수출 경쟁력은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오랫동안 제조업을 보조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연구개발(R&D)과 세제, 금융, 인력양성 지원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K콘텐츠와 뷰티, 의료관광이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AI 혁명이 산업 지형을 바꾸는 지금이야말로 서비스산업 고도화는 더 절실한 과제다. 앞으로의 부가가치는 제품을 넘어 데이터, 플랫폼, 디자인, 유통, 지식재산권에서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은 이를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법안은 이명박 정부 때 처음 발의된 이후 15년째 표류 중이다.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의료 분야 규제완화를 둘러싼 갈등 때문이었다. 영리 의료법인, 의료민영화, 원격의료, 외국인 환자 유치 등을 둘러싼 논란이 법안 발목을 잡았다. 의료 공공성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건강보험 체계와 필수의료가 흔들려선 안 되며 과잉진료와 의료 양극화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우려 때문에 의료서비스 산업 전체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의료서비스는 진료 수입에 그치지 않고 숙박, 관광, 쇼핑, 뷰티, 통역, 보험, 플랫폼 산업으로 이어지는 고부가 서비스다. 외국인 환자 유치와 의료관광은 내수 활성화와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공공의료와 건강보험 체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단순히 규제완화에 머물러선 안 된다. 범정부적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서비스 R&D와 인력양성, 포괄적인 세제·금융 지원, 해외 진출, 지식재산권 보호를 종합적으로 담아야 한다. 의료, 관광, 뷰티 산업에선 해외 소비자를 끌어들일 통합전략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서비스업이 반도체를 잇는 수출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국회는 더는 시간을 끌지 말기 바란다. 낡은 논쟁을 반복하지 말고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제조업 강국을 넘어 서비스업 강국으로 가야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벽을 넘을 수 있다.

[사설] 독일 미텔슈탄트의 몰락이 보내는 경고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로 설비 시장을 장악했던 독일 중소·중견 제조업체(미텔슈탄트)들이 중국에 먹히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사상 처음으로 독일의 대중국 첨단 자본재 수입액이 수출액을 넘어섰고, 독일 산업계는 매월 1만개가 넘는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국가다. 특히 기계류 제조에서 최강의 기술력과 장인정신을 보유한 국가로서 자동차와 같은 완제품뿐만이 아니라 소재와 장비, 부품(소부장) 제조에서도 세계 제일이었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기술력을 높이고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이 독일의 전통적인 강소기업들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대중국 공작기계 수출은 올해 1·4분기에 1년 전보다 3분의 1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독일 제조업의 중심축이자 심장 역할을 해온 미텔슈탄트들은 강력한 경쟁력을 가졌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라는 뜻에서 '히든 챔피언'으로 불렸다. 이 히든챔피언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의 정책이 '1만개 작은 거인'이다. 전문화·정밀화·특성화·혁신을 앞세운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이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독일의 히든챔피언을 쓰러뜨리고 있는 것이다. 독일을 겨냥한 중국의 정책적 공격 말고도 독일 미텔슈탄트가 몰락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는 공급망 충격, 탈원전에 따른 에너지 비용 급등, 경영자 고령화로 인한 승계난,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도입 미흡 등이 꼽힌다. 일본처럼 오직 기술력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다가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우리에게 독일 미텔슈탄트의 경영난은 경고이자 기회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의 공세에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수입액 1000만달러 이상인 소부장 1575개 품목 중 중국 의존도가 50% 이상인 품목이 472개나 된다. 소부장 산업의 중국 의존도는 30%까지 높아졌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배터리·로봇·자율주행차 등 핵심 산업의 종합 경쟁력에서 중국은 이미 한국을 앞섰고, 반도체 종합 경쟁력도 중국이 한국과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다만 올해 1~4월 국내 공작기계 총수주액은 1조192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2% 늘었고, 해외 수주는 7981억원으로 23.3% 늘어났다. 공작기계에서만큼은 한국 기업들이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다. 중국 공세에 독일의 미텔슈탄트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는데 한국의 삼성전자 등이 지난해 3곳을 인수했다. 독일 기업들의 어려움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시대의 변천을 도외시하거나 기술개발을 게을리하면 100년 넘게 쌓아온 경쟁력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첨단기술을 접목해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해야 나날이 거세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강남視角] 집값 안정의 열쇠는 '신뢰'받는 정책

집값이 급등할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 이슈가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값 통계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매수 심리를 자극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간통계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집값을 과열로 이끈 정책 실패가 주범이다. 주간통계는 지난 2013년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이 KB국민은행에서 조사를 넘겨받으면서 시작됐다. 표본을 선정해 매주 시세를 조사하는 방식이다. 호가 반영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지적도 있다. 호가 반영은 다른 시세 조사도 마찬가지이다. 주간 아파트값 통계는 정부가 검증을 거쳐 인정한 공식 통계다. 폐지 논란은 문재인 정부 때 수면으로 부상했다. 당시 정부와 정치권의 공통된 지적은 주간통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월간통계와도 다르고 실거래통계와도 차이가 적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민간 조사기관인 KB부동산과 방향성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겉으로 보면 양측 모두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진짜 속셈은 다르다. 정부와 여당은 폭등하는 집값이 주간통계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껑충껑충 뛰는 집값이 주간통계를 통해 지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야당은 '집값은 폭등하는데 정부 공식통계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결국 이 같은 논란은 통계조작 사건으로 이어졌다. 논란 끝에 폐지 대신 표본수 확대 등 보완이 이뤄졌다. 이후 윤석열 정부 때에는 폐지론이 사라졌다. 집값이 하락하자 주간통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수그러든 것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집값이 다시 뛰자 이곳저곳에서 '폐지론'이 재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주간통계 폐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 차원에서 개선방안을 찾는 관련 연구용역도 현재 진행 중이다. 집값이 하락할 때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주간통계가 유용하다. 수억원 떨어진 집값이 바로 통계 수치로 나오고, 시장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기 때는 반대이다. 그래서 폐지론이 이때마다 거론되는 것이다. 만약 정부 압박(?)에 의해 부동산원의 주간통계가 폐지되면 모든 것이 끝일까. KB부동산과 부동산R114 등 민간에서는 여전히 주간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달라지는 점은 정부 공식통계만 주간 단위로 발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동산원은 물론 민간에도 주간통계 발표를 금지하는 '초강수'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의미가 없다. 민간 앱을 활용하면 실시간으로 정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앱을 활용하지 않아도 된다. 부동산 카페와 블로그 등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고가 등 거래 관련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국토부가 운영하는 실거래가 공개시스템만 분석해도 하루 단위, 주간 단위, 월간 단위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한마디로 부동산원 주간통계 폐지는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공신력 있는 정보의 부재'라는 오류를 범하는 실책이다. 비공식 정보 범람만 만들어 낼 수 있다. 개편 및 보완은 계속 이뤄져야겠지만 이 역시 주간 단위 통계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부동산 정책실패를 주간 통계에서 찾는 것은 책임 회피이다. 통계 숫자는 말 그대로 단순히 보조수단이다. 평균 상승률보다 시장은 개별 단지 가격에 더 민감하다.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은 시장에서 신뢰하는 '정책'이다. 주간통계 문제점 분석에 앞서 공공 만능주의에 빠진 공급정책, 부동산을 비생산적 투자로 보는 세제·대출규제가 집값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번 기회에 '상부 또는 외부 입김에 휘둘리지 않을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통계 마사지' 등 외압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장치가 그것이다. ljb@fnnews.com 이종배 기자

[노동일 칼럼] 광주 반도체의 '미션'은 무엇인가

엔비디아의 창업자·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은 최근 방한 길에 "미션이 보스다(Mission is the boss)"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평소 지론인 이 말은 기업의 존재 이유와 최종 목표(Mission)가 조직 내 권력이나 내부 정치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담고 있다. 눈을 밖으로 돌려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기업은 오직 철저한 시장 논리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 확보'라는 지향점(미션)만을 보고 달려가야 함을 뜻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최대 관심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삼전·닉스)의 '광주반도체' 논란은 기업의 '미션'에 부합하는가. 삼전·닉스의 미션은 '세계 초일류 반도체 경쟁력 강화와 기술 패권 수성'이다. 첨단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미·중·일의 추격이 턱밑까지 차오른 지금 우리 기업들의 모든 자원과 의사결정은 이 미션 달성에 최적화되어야 한다. 국가전략자산인 반도체 기업은 더더욱 경제 외적 논리가 작용해서는 안 된다. 광주여서 문제라는 명제는 있을 수 없다. 부지, 용수, 전력, 인력 등 핵심 조건이 충족된다면 국가안보·균형발전 등을 고려한 정부의 산업정책은 타당성이 있다. 호남 소외론 등으로 광주반도체를 정당화하려는 논리는 오히려 정치적 고려에 따른 투자결정이 아닌지 의구심을 자초하는 언급이다. 기업들은 신중하다. 용인 등의 생산라인을 신속히 완공한 후 광주에 투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을 내놓았다. 정치권 얘기는 다르다. 기업을 "설득해서" (용인과 광주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4년도 남지 않은 정부 임기 내 800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여력이 있는지 재무적 반론부터 나온다. 일본 구마모토 TSMC를 예로 들어 '현 정부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구마모토 TSMC 1공장은 2021년 소니와 TSMC가 합작법인 설립 후 3년 만인 2024년 말부터 가동 중이다. 결정적 요소는 아소산의 풍부한 지하수와 규슈전력의 원자력발전소를 통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 전망이었다. 구마모토현은 전담조직을 통해 통상 2년 이상 걸리는 농지 전용 및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4개월 만에 완료했다. 벤치마킹 대상은 바로 이 점이다. 민주당은 탈원전, 4대강 반대, 보 해체 등을 내세우는 환경단체 등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한다. 영산강 지역에 댐을 건설하고, 불안정한 재생에너지 대신 원전 2기 건설 등 기존 노선의 극적 전환이 가능한가. 정부가 4개월 만에 부지선정 및 환경영향평가 등을 완료하고, 용수와 전력 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면 광주반도체에 대한 시각은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재용 회장의 결단"과 "고 이병철 회장의 도쿄선언"을 언급했다. 과거에는 청와대의 '지도'와 총수의 결단으로 가능했던 일도 이제는 달라졌다. 민주당 주도로 통과시킨 개정 상법에 따르면 삼전·닉스의 광주반도체 투자 건은 상법 제393조 제1항 '회사의 중요한 업무집행'에 해당하여 이사회 의결이 필수적이다. 또한 상법 제382조의 3에 따라 이사들이 '회사 및 주주의 전체 이익'을 위해 심의했는지를 의사록에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배임 등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어렵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결정'뿐 아니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까지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점도 문제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실상은 이런 논의를 '우물 안 개구리'들의 소음으로 만든다. 미국은 '칩스법'을 바탕으로 세제 혜택과 보조금, 관세 등의 무기를 통해 반도체 제조시설을 유치하고 있다. 일본은 도요타, 소니 등 대기업 8곳이 합작해 만든 라피더스를 국가대표 반도체 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에 대한 보조금 외에 2500억엔을 출자하며 반도체 전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중국 최대 D램 제조사인 창신메모리(CXMT)의 글로벌 D램 점유율은 1년 만에 3%에서 8%로, 양쯔메모리(YMTC)의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1년 만에 8%에서 13%로 급상승했다. "애플이 창신·양쯔메모리와 칩 구매 협상 중"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디스플레이·태양광패널·배터리 등 첨단산업에서도 우리를 추월한 중국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현실화하는 와중에 우리 기업들은 정치공방에 발목을 잡힌다면 "반도체마저"라는 비명이 언제라도 터져 나올 수 있다. 광주반도체의 미션이 호남 소외론에 대한 보상일 수는 없다. 대한민국 반도체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투자여야 한다. 많은 우려와 의문에 대해 입 다물라는 말 대신 정부·기업·전문가들이 함께 검증하고 정직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dinoh7869@fnnews.com

[포럼] 덩치만 커진 한국의 지방재정

우리나라는 지난 6·3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을 선출했다. 정치적 의미에서의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이번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다는 점에서 지방분권의 의미에 대해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는 재정의 관점에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1948년 정부수립 후 제헌헌법을 마련했고, 그 이듬해 지방자치법 제정을 통해 지방자치가 시작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 전면 중단되었다가 1991년에 이르러서야 지방의회가 부활되었고,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완전한 민선자치시대를 연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선거 과정에 주민주권이나 지역권력 견제와 같은 이슈보다는 전국적 이슈에 휘말린 모습은 아쉬움이 남는다. 분권이란 말 그대로 한곳에 집중된 권한과 그에 동반된 책임을 분산함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정치적 분권, 행정적 분권, 재정적 분권 및 경제적 분권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재정적 분권은 상위 정부로부터 낮은 단계의 정부에 조세 및 지출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포함한 재정적 권한과 책임을 이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별로 서로 다른 주민들의 선호와 환경을 반영하여 차별화된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모든 지역에 대해 획일적인 경우보다 후생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지방은 경쟁하고 주민들은 지방정부의 반응성과 재정적 이동성을 통해, 또는 투표와 이탈을 통해 사적재를 선택할 때와 같이 효율성이 증대될 수 있다. 나아가 공공서비스 지출 책임이 주민과 보다 가까이 있는 지방정부에 주어짐에 따라 지방정부와 주민 간의 연계가 강화됨으로써 책임성 또한 증진된다. 이론이 그렇다. 양적으로는 1990년과 비교해 지방재정 규모가 18.75배나 급증했고, 전체 재정지출에서 지방정부의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서도 매우 높은 수준을 나타내는 등 형식적 측면에서는 재정분권이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구조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수도권 집중과 맞물려 분권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문제로 지방재정의 대폭 확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지자체가 재정부족을 호소하고 있고, 재정자립도는 40.89%에 불과하다. 아울러 지자체가 자율성은 원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문제, 주민들의 무관심과 낮은 참여 문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간의 갈등 문제 등으로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는 데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로 우리와 시스템이 매우 상이하지만 지방정부의 책임성 차원에서 근간이 되는 세금인 재산세가 다른 여타 세원으로 충당하지 못하고 남은 지출수요를 감당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울러 현재와 같이 모든 지방세원의 종류와 세율을 국회가 정하고 재산세의 과세표준이 되는 재산가액까지 중앙정부가 정하는 제도는 지방분권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방정부들이 탄력세율제도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활용하지 않고 암묵적인 담합을 하도록 유도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지방교부세와 같은 일반재원보다 국고보조금이 더 비중 있게 운용되어서는 안 된다. 지방재정 이론에서 강조하는 편익과 비용 간의 연계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기고] 장벽 없는 마이데이터, 삶을 이롭게 하다

마이데이터는 정보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데이터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제도다. 주인으로서의 통제권은 데이터를 스스로 이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보장된다. 마이데이터의 핵심이 '데이터 이동성'에 있다고 하는 이유다. 마이데이터는 처리자의 벽을 허물고, 데이터가 정보주체의 뜻에 따라 흐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흐르게 된 데이터는 '분야'라는 또 다른 벽을 마주하고 있다. 금융데이터는 금융 분야에서, 의료데이터는 의료 분야에서 주로 활용된다. 기존 분야를 넘어 다른 분야에서 데이터가 활용되는 일이 많지 않다. 데이터는 본래 다면적 성격을 갖고 있어 같은 데이터라도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 어떤 목적으로 쓰이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신용카드 결제내역은 금융에선 지출에 관한 정보이지만 건강관리 관점에서는 내가 술을 마시는 지, 담배를 피우는 지, 어제 야식을 먹었는 지 알 수 있고, 규칙적으로 수영장에 다니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의료 영역에서 이런 데이터를 활용하면 환자의 생활습관을 정확히 알 수 있고,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지시를 환자가 잘 이행했는 지도 확인할 수 있다. 금융 데이터가 건강관리를 돕는 것이다. 건강 데이터로 금융의 문제를 풀 수도 있다. 질병보험의 본질은 앞으로 닥칠 건강상 위험에 대비하는 것인데 정작 사람들은 자신에게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 지 예상하지 못한 채 보장범위를 정하고, 보험에 가입한다. 자신의 데이터로 장래의 건강 위험을 통계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면 합리적 보장 범위를 정할 수 있다. 건강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거나 건강 악화로 발생한 의료 채무의 연체를 신용평가에서 제외하는 등 건강에 관한 데이터로 개인의 신용을 합리적으로 평가 및 관리할 수도 있다. 다면적인 데이터가 정보주체에 불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가 건강 데이터를 활용해 인수 거절이나 보험료 인상의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 때문에 활용의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칼이 위험한 도구라고 해서 칼을 사용하지 말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마이데이터는 정보주체가 데이터의 이동 여부와 목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동하는 데이터가 정보주체에게 불리하게 활용되는 상황을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다. 관련된 법과 제도도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다. 금융과 공공 분야에서 시작된 마이데이터 제도가 개인정보보호법에 근거를 두고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의료와 통신은 물론 교육·고용·부동산·교통·복지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정보주체가 자신의 데이터를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된다. 최근 시행령 개정을 통해 '본인전송요구' 범위가 전 분야로 확대됐다. 이를 통해 데이터가 분야의 벽을 넘어 새로운 가치와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사례가 등장할 것으로 본다. 데이터로 사람들의 삶을 이롭게 만들겠다는 꿈도 곧 이뤄질 것 같다.이정운 뱅크샐러드 최고법무책임자

눈 가려움, 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다...알레르기 결막염 '연중 관리' 필요

[파이낸셜뉴스] 매년 7월 8일은 세계알레르기기구(WAO)가 지정한 '세계 알레르기의 날'이다. 올해 슬로건은 "Allergy Care is Essential Care"다. 알레르기 질환을 계절마다 잠깐 신경 쓰는 문제가 아니라, 계절과 관계없이 일년 내내 발생하는 환자의 삶의 질과 직결된 질환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안과 진료 현장에서 이 메시지는 매우 중요하다. 알레르기 결막염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는 "봄이나 가을만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증상이 심한 봄에만 안약을 사용하다 나아져서 중단했다 다시 불편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알레르기 결막염은 특정 계절에만 나타나는 질환이 아니다. 겉으로 증상이 줄어든 것처럼 보여도, 눈의 염증 반응은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꽃가루에 의한 알레르기 등 특정 계절에 발생하는 경우도 많지만, 많은 경우의 알레르기 결막염은 계절에 국한되지 않는 '통년성 질환'이다. 따라서 봄·가을 이 지나도 관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알레르기 결막염의 주증상인 가려움증은 눈을 비비면 일시적으로 해소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비만세포를 자극해 히스타민 분비를 증가시키고 염증을 더욱 악화시킨다. 또한 눈을 비비면서 각막상피를 손상시킬 우려도 있어 장기적으로 각막 손상과 각막혼탁 난시 등의 이차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가벼운 증상으로 여겨 치료를 미루다, 각막 손상이 진행된 상태로 병원을 찾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알레르기 결막염 증상이 심할 때에만 약을 사용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한 관리가 어렵다. 알레르기 면역 반응은 한 번 시작되면 완전히 가라 앉는 데 몇 주가 소요되며, 겉으로 증상이 완화된 이후에도 눈 표면에서는 염증 반응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항히스타민 작용과 비만세포 안정화 작용을 동시에 나타내는 듀얼 액팅 점안제가 알레르기 결막염의 1차 치료 옵션으로 활용되고 있다. 듀얼 액팅 점안제는 증상 완화와 함께 염증의 지속과 재발을 동시에 억제할 수 있어, 계절에 국한되지 않는 통년성 알레르기 치료와 관리에 적합한 선택지로 평가된다. 알레르기 결막염은 일시적인 불편이 아니라 반복되고 재발하는 만성 질환이다.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만 치료하거나 임의로 관리를 중단할 경우, 염증의 악순환과 재발 위험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증상 발생 전 부터 예방적으로, 증상이 완화된 이후에도 안과 전문의와 함께 장기적인 관리 계획을 세워 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 알레르기의 날 슬로건인 'Allergy Care is Essential Care'는 통년성 알레르기 결막염 관리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봄이 지났다고, 증상이 줄었다고 치료와 관리를 중단하지 않도록 하고, 꾸준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통년성 알레르기 결막염의 재발과 합병증을 예방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지켜야 하겠다. 정혜욱 대한안과의사회 회장

[강남視角] 파행이 관행된 최저임금 심의

역시나 큰 이변은 없었다. 법정 시한인 지난달 29일을 넘기고도 아직 결론 나지 않은 2027년도 최저임금 이야기다. 삼성전자발 '대기업 N% 성과급'이 불을 지핀 최저임금 심의는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의 시각차만 확인한 채 여전히 공전하고 있다. 노동자 측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며 처음에 16.3% 인상안을 들고 온 가운데 사용자 측은 노동자보다 더 큰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며 최저임금 동결을 요구한 상황에서 이미 기한 내 합의는 물 건너간 상황처럼 보였다. 영세자영업자, 소상공인 가운데에는 최저임금만큼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일견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대급 성과급의 이면에서 1600원을 두고 벌어지는 처절한 논쟁은 날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아이러니다. 이제 내년도 최저임금은 지난 1988년 처음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 대다수의 과거가 그랬듯,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심의촉진구간이라는 이름의 중재안을 통해 최종적으로 정해지는 흐름이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과연 중재안이 정말 중재안이냐는 점이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반복되는 중재안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관행은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로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 법정 시한을 지킨 것은 단 9차례뿐이다. 거의 매년 시한을 넘기고 결국 7월 중순께 중재안이 등장하고서야 결론이 났다. 1988년 제도 시행 이후 2026년 적용분까지 39차례의 결정 가운데 노사 합의로 마무리된 것은 단 8차례뿐이고, 나머지 31차례는 모두 표결로 매듭지어졌다. 그리고 그 31차례 표결의 절반이 넘는 16차례가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으로 결정됐다. 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자, 사용자 및 정부가 지정하는 공익위원이 9명씩 들어가는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으로는 불가피한 결과라는 말도 한다. 노동자와 사용자위원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결국 결국 캐스팅보트는 정부가 임명하는 나머지 9명의 공익위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중재안이 결국은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되는 이유다.노사는 올해 4차 수정안까지 주고받으며 격차를 1680원에서 1290원까지 좁혔지만 이 속도라면 결국 최종 순간에는 또다시 공익위원의 중재안이 등판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늘 그랬듯 4차례에 걸쳐 줄어든 390원의 격차보다 중재안으로 나올 금액이 주는 격차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심의요청 이후 90일 이내라는 법정 시한이 너무 촉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 최저임금 협상이 중재안이라는 메인요리를 내놓기 전 무의미한 애피타이저처럼 인식되는 현재의 상황이 좋지는 않아 보인다. 매년 노동자는 큰 폭의 인상을, 사용자는 동결 혹은 소폭 인상을 내걸고 평행선을 달리다가 법정 시한을 넘기고 결국 공익위원의 중재안으로 결론이 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애초에 법정 시한 준수를 전제로 제도가 설계되지 않았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물론 노사 각자 자기편 논리만 밀어붙일 뿐 애초에 합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균형을 갖고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공익위원의 역할은 필요하다. 다만 최저임금은 전체 기업의 99% 넘는 중소기업들의 경영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민감하고 중요한 결정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가족의 생계와 직결되는, 미루거나 양보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다. 최저임금 시한을 넘기는 파행이 어느새 당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법정 시한을 늘리거나 노동자와 사용자 측의 이견을 조정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등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중기벤처부장

[사설] 홈플러스 파산 위기, 일자리·지역경제 후폭풍 대처를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하면서 한때 국내 2위였던 대형마트가 사실상 파산 수순에 들어섰다. 회생계획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2000억원이 조달되지 않아 파산이 불가피하다. 남은 2주간 자금 문제가 해소되면 극적으로 회생절차를 밟을 수 있다. 홈플러스 문제는 대형 유통기업 하나가 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직원·협력업체·입점 점주들의 생계와 지역 상권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릴 사안이어서 심각하게 짚고 넘어갈 대목들이 있다. 당장 신경써야 할 점은 청산 이후 경제적 후폭풍이다. 홈플러스가 직간접적으로 고용한 인원은 주차·카트관리·청소 인원까지 포함해 대략 1만3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지면 수많은 실직자가 발생할 것이다. 홈플러스와 거래해온 중소업체와 상공인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납품대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자금회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다행히 임금체불 피해 근로자에게 대지급금과 생계비 융자를 해주고 협력업체를 위한 긴급 유동성 지원 방안을 내놓긴 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다. 홈플러스가 폐업을 하게 되면 일자리가 아예 없어지고, 중소상공인들은 정상적인 주요 거래처가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력도 무시할 수 없다. 지역별로 점포가 순차적으로 문을 닫을 경우 인근 상권의 유동성도 떨어지고, 지역 세수에 미치는 파장도 클 것이다. 이에 정부는 실직자에 대한 재취업 지원까지 멀리 내다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청산 절차가 진행될 경우 사각지대에 놓이는 이해관계자가 없는지 촘촘히 살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사태를 대형마트를 포함한 오프라인 유통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홈플러스의 몰락에는 대주주와 채권단 간 책임 문제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유통산업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산업발전 방안을 재구성할 때가 됐다고 본다. 이커머스로 소비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대형마트라는 업태 자체의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점포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대응으론 영업의 반전을 기약할 수 없다. 실제로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최악의 혹한기를 걷고 있다. 홈플러스의 잔여 점포들이 매물로 나오더라도 경쟁 대형마트들이 점포 인수에 소극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다. 남은 대형마트들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새로운 사업모델이나 지역 밀착형 서비스로의 전환 등 생존전략을 치밀하게 점검할 시점이다. 정부 역시 대규모 고용을 창출해 온·오프라인 유통업이 무너질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 업태 전환과 재취업을 지원하는 중장기 정책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홈플러스에 남은 시간은 2주 남짓이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수만명의 생계가 걸린 만큼 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안전망을 미리 갖춰야 한다.

[사설] 쿠팡 사태, 법 집행 원칙 지키되 동맹 갈등은 막아야

미국 백악관 당국자까지 한국 정부가 쿠팡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앞서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도 한국 정부가 쿠팡 등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중간보고서를 낸 바 있다. 개별 기업의 법 위반 의혹이 동맹 현안으로 비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미국의 과도한 주장에는 사실과 원칙으로 대응하면서 사태를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동시에 이 문제가 한미 관계의 다른 현안으로 번지지 않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쿠팡 사태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쿠팡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으로 3755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판단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사건의 본질은 전 국민 대다수에 해당하는 개인정보가 외부로 빠져나간 중대한 보안사고다. 더구나 유출된 정보가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엄정한 조사와 제재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미국 의회와 백악관의 태도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하원 법사위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설명과 소비자 피해 실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한국의 정당한 법 집행을 차별적 규제로 몰아가는 것은 동맹국에 대한 예의에도, 법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의 쿠팡 주식 거래 내역과 미 통상·외교 핵심 인사들의 과거 쿠팡 관련 보수 수령 사실까지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측은 이해충돌 소지부터 투명하게 설명하는 게 먼저라고 본다. 한국 정부는 이럴수록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 쿠팡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뉴욕증시에 상장된 기업이다. 쿠팡에 대한 조사 절차와 법적 근거, 과징금 산정 방식, 국내외 기업 제재 사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미국 정부와 의회, 언론, 투자자에게 적극 설명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쿠팡 사태가 한미 안보·원자력 협력 논의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한미는 현재 원자력추진잠수함과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 원자력·안보 협력 후속 논의를 진행 중이다. 방산 등 전략 협력까지 맞물린 상황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양국의 핵심 현안을 흐리는 변수로 작용해선 곤란하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튀르키예 앙카라를 방문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참석하는 다자외교 무대인 만큼 쿠팡 사태가 양국 간 접촉 과정에서 문제로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는 국내법 집행의 정당성을 분명히 설명하되, 이 문제가 양국 간 외교 현안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쿠팡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과징금 부과나 조사 결과에 대해 법적 불복 절차를 밟는 것은 기업의 권리일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의 당사자인 기업이 미국 정치권을 움직여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듯한 모습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쿠팡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유출 경위와 피해 규모를 투명하게 밝히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책과 피해자 보호 방안을 내놓는 것이다. 쿠팡 사태는 기업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법 앞의 평등에 관한 문제다. 정부는 법 집행의 정당성을 지키면서 동맹의 큰 틀이 불필요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정교하게 대응해야 한다.

[포럼] 군사대국 치닫는 독일과 일본

세계의 안보질서가 변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독일과 일본을 직간접적으로 군사강대국으로 내몰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독일의 안보불안을 일으켰고, 중동전쟁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럽 국가들이 군대를 파견하지 않으면서 미국과 NATO 국가들은 단단했던 대서양 동맹관계가 느슨해져 버렸다. 독일은 히틀러 정권하에서 유대인 600만명을 살상했다. 필자는 독일의 만행을 확인하고자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가 본 적 있다. 유대인의 머리카락을 잘라 쌓아 두고 신발들도 보관되어 있는 시설도 보았다. 시체를 태우기 위한 화장터도 그대로 보존되어 독일의 잘못을 반성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는 베를린 한복판에도 나치의 만행을 보여주기 위한 시설을 만들어 놓으며 과거의 잘못된 행위를 반성하려 한 것이다. 생체실험을 한 곳도 공개되고 있다. 과거사를 숨기려고 급급하는 일본과는 다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NATO 국가들의 동맹관계를 소홀히 하면서 독일이 군사 재무장을 하고 있다. 독일은 2025년 헌법을 개정해 국방비 한도를 해제하고 유럽 최강의 재래식 군대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일본도 들여다보자.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는 군사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국제분쟁에 군사력을 파견할 수 없도록 명기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되면서 무조건 항복을 했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국 맥아더 장군의 의도대로 평화헌법이 만들어진 것인데 다카이치 정부는 일본 헌법 제9조를 개정하려 한다. 패전 후 80년이 지나면서 전쟁의 악몽을 잊어버린 것인가. 일본은 지난 수십년간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이 세계 최고 기술의 전함과 잠수함을 생산하고, 전투기 날개에 탄소섬유수지를 활용하는 군사기초과학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은 전후 최초로 군함을 수출하고 살상력 무기를 수출한다고 해 군사력의 과학기술이 첨단화된 독일과 일본의 군사 재무장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작고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군사강대국 일본의 청사진을 내놓았는데,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아베의 군사강국 일본의 목표를 실현하려 한다. 독일과 일본의 군사강국의 움직임은 멈출 수 없는 세계가 되고 있고,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해 자주국방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동북아질서의 변화에 한국은 스스로에게 한국 안보의 앞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의 동맹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어야 하지만 핵잠수함·미사일과 드론 등 한국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자주국방력을 키워야 한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무기 수출에 나서면서 한국의 방위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배하면서 중국까지 쳐들어 가고, 급기야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는데 미국의 핵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져 1945년 무조건 항복을 한 일본이다. 그러면서 1947년 평화헌법을 선포해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일본이 100년도 못 버티고 군사강대국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과 국민은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에서도 스스로를 지킬 힘을 비축해야 한다. 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fn광장] AX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

인류가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를 일상에서 체감하게 된 계기는 2022년 11월 말 오픈AI 챗GPT의 출시였다. 인간의 대화형 질문에 대한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챗GPT의 대답이 항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인간과 대화하는 기계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매우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지난 4년 동안 업그레이드된 구글 제미나이, 앤스로픽 클로드, 네이버 하이퍼클로바 등 다양한 생성형 AI를 사용해 본 경험담이 우리 주위에 넘쳐흐른다. 생성형 AI는 문자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백과사전,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위키피디아나 네이버 백과사전의 고급 버전이다. 정보와 지식 미디움의 기술적 확장이라는 점에서 물론 주목할 만하다. 그 정보와 지식의 범위가 교육, 학술, 법률, 행정, 과학기술, 산업, 언론, 디자인, 예술의 영역, 즉 개별 전문 도메인까지 전방위로 확대되는 이 시대를 우리는 AI 전환(AX) 시대라고 부른다. 사회의 각 도메인에 AI 테크놀로지가 진입하면서 바뀐 것이 분명히 있다. 첫째, 우리는 매우 똑똑하고 반응이 빠른 비서를 바로 옆에 두게 됐다. 생성형 AI 구독료를 좀 더 많이 지불하면 좀 더 유능한 비서를 옆에 둘 수 있다. 질문하면 바로 답하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으면 더 구체적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변호사, 회계사, 의사, 약사와 같이 유사한 상담 과업을 반복하는 직종은 곧 소멸되리라는 우려도 있다. 둘째, 정보와 지식을 수집하는 일의 수행 방식과 평가는 효율성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인간 비서를 채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평가기준이 되고 있음이 큰 변화다. 컴퓨터 앞에서 간단히 해결되는 작업을 위해 힘들게 도서관에서 두꺼운 서지를 넘길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셋째, 복잡한 인간관계에 부대끼는 실제 세계에 굳이 진입할 필요 없이 가상의 세계 속에서도 얼마든지 정보와 지식을 탐구할 수 있다.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만으로도 자신의 전문 도메인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욱 커진다. 논쟁도 필요 없고 숙의도 필요 없다. 그 결과 인간은 점점 더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기계와의 상호작용에 더욱 몰입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 또한 분명히 있다. 첫째, AX 시대 전문 도메인의 플레이어는 여전히 비서 AI가 아닌 마스터 인간이다. 법원 판결, 의사 처방, 정부 정책, 기업 경영전략, 언론 보도, 모두 AI 비서가 효율적인 방식으로 제공한 정보와 지식의 나열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 여전히 법관, 의사, 행정가, 경영인, 신문 편집인이 의사결정의 핵심 플레이어다. 둘째, AX 시대에 AI가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제공하는 정보와 지식은 인간 사고 과정에 필요한 재료이지만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니다. 최고의 요리를 위해 좋은 식재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식재료의 단순 나열이 곧 최고의 음식은 아니다. 최고 요리의 본질이 마스터 셰프의 통찰력과 손맛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셋째, 인간과 기계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가상의 시나리오는 현실의 맥락을 자주 잊게 한다. 가상 세계의 팩트가 항상 현실 세계의 진실인 것은 아니다. 법, 정책, 언론, 심지어는 과학기술 세계가 마주치는 현실 도메인은 모두 매우 특수한 맥락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여전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이며,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비로소 해결된다. 그 개입의 책임도 역시 인간의 몫이다. 정부와 기업의 보고서, 학술 논문, 그리고 학생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 내용에 오류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맥락에 대한 해석과 진단의 자기 기준과 관점이 결여됐다면 최고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AX 시대에 AI 비서의 도움에만 전적으로 의존해 마스터의 생각과 개입이 빠진 결과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마스터, 본질, 현실의 중요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들이 점차 망각되고 있음이 우려된다. 스마트한 프롬프트 활용으로 AI를 더 잘 이용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AI는 여전히 정보와 지식을 수집해서 전달하는 비서이자 보조도구에 불과하다. AX 시대에는 확실한 자기 기준을 기반으로 사고하는 진품 전문가의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다. 인간 지능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복제해 내는 AI도 인간의 지성 영역을 완전히 대치하지는 못한다. 두려움 없이 담담하게 AX 시대를 포용하면 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사설] 보유세 강화하되 거래세 낮추라는 OECD 권고 적극 참고해야

[파이낸셜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부동산 세제는 보유세 비중을 높이고 거래세 비중은 낮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보유세 강화, 거래세 인하'라는 그간의 제언이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우리도 일방적 증세보다 거래 활성화와 공급 확대를 유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정부는 이달 말 부동산 세제 개편을 포함한 세법 개정안을 내놓을 예정인 만큼 이번 권고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OECD는 2일 발표한 '2026 한국경제보고서'에서 부동산 세제를 거래세 중심에서 보유세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해 주거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한국 주택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해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글러스 서덜랜드 OECD 경제국 국가분석과장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파트 거주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적응 기간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부동산 세제는 거래를 이중삼중으로 가로막는 구조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부담이 크다 보니 집을 팔려는 사람도, 옮기려는 사람도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거래가 막히면 매물이 줄고 주거 이동도 위축된다. 공급 부족과 전월세 불안이 이어질수록 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한 규제가 오히려 시장 왜곡을 키울 수 있다. 투기 억제와 조세 형평성을 위해 보유세 강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거래세를 그대로 둔 채 보유세만 올려서는 매물 확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부동산 세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0%로 OECD 평균(1.6%)보다 높다. 전체 조세에서 부동산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11.7%로 OECD 평균(5.1%)의 두 배를 웃돈다. 반면 보유세 비중은 29.4%로 OECD 평균(56%)의 절반 수준이다. 전체 세 부담을 늘리기보다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높이는 방향으로 세목 간 비중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OECD는 이런 세수 중립적 개편이 주거 이동성을 높이고 노동시장 효율을 개선하며 주택시장 경직성도 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래가 살아나면 매물이 늘고 집값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실수요자의 주거 이전 부담이 줄고 지역 간 노동 이동도 활발해져 경제 전반의 활력도 높아질 수 있다. 거래세 인하가 투기를 조장한다는 정치적 부담을 덜고 조세 형평성과 시장 활성화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도 이번 권고는 의미가 적지 않다. 다만 보유세 강화는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세 부담이 전월세 가격으로 전가돼 세입자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소득이 없는 고령층이 세금 때문에 정든 집을 떠나는 상황도 막아야 한다.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인하를 함께 추진하되 세 부담을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정교한 보완책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강남視角] 이제는 선관위가 답할 때

최근 5년 동안 치러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선거관리 사고는 모두 184건이다. 파이낸셜뉴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선거인명부 착오와 투표용지 관리, 회송용 봉투 오류, 투표함 관리, 개표 결과 오입력까지 유형은 다양했지만 공통분모는 뚜렷했다.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눈에 들어온 것은 사고 건수보다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됐다는 점이다. 서울 잠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선거관리 부실이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선과 총선, 지선은 선거 방식과 규모가 서로 다르다고 해도 자료 속의 사고 패턴은 사실상 동일했다. 사전투표 과정에서는 회송용 봉투와 투표지 관리 문제가 이어졌고, 투표소의 경우 선거인명부 착오와 투표용지 오교부가 잇따라 발견됐다. 개표 단계도 예외는 없었다. 투표함 관리와 결과 입력 오류가 연이어 확인됐다. 물론 모든 사고를 같은 무게로 볼 수는 없다. 단순한 행정착오도 있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미세한 유형도 나왔을 것이다. 다만 선거가 바뀌어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다시 나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번이라면 현장 문제로 치부하더라도, 같은 잘못이 여러 선거에서 재차 등장한다면 시스템 전체를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지선 사고 건수는 51건이다. 선거인명부 관리 부실, 이중투표, 투표함 관리, 개표 결과 오입력 등 투표 절차와 직접 연결되는 부분이 상당수다. 2022년 지선 때와 유사하다. 당시 13건보다 약 4배 많다는 점만 다르다. 그래서 더욱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선거는 결과뿐 아니라 절차에 대한 신뢰도 함께 관리해야 하는 제도다. 선관위가 다른 행정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복되는 사고를 모두 현장 직원의 실수로 돌리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선거는 중앙선관위와 지방선관위, 투표소·개표소 현장 인력이 동시에 움직이는 업무다. 명부 확인, 투표용지 교부, 봉투 관리, 투표함 이송, 개표 입력이 이들의 협력 속에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는 만큼 교육과 매뉴얼, 점검 체계가 중요하다. 따라서 같은 절차에서 착오가 되풀이된다면 어느 단계에서 관리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사고를 한 덩어리로 묶어 '현장 착오'라고 넘겨버리면, 다음 선거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 선관위가 그간 교육을 강화하고 각종 매뉴얼을 보완해 왔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교육이 현장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인지, 인력이 부족한 것인지, 기존 매뉴얼이 실제 투표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향후 사안별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국정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명부 관리, 투표용지 교부, 투표함 관리, 개표 입력 가운데 어느 절차를 어떻게 고치겠다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해외라고 완벽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선거 때마다 우편투표와 개표 지연 문제가 논란이 되고, 일본 역시 투표용지 교부 착오나 개표 오류가 보고된다. 영국은 선거가 끝난 뒤 독립기구가 운영 전반을 평가하고 개선 권고를 국민에게 알린다. 그러나 사후점검 방식에선 우리와 차이가 난다. 사고를 공개하고, 원인을 분류하며, 다음 선거 전까지 개선 권고 이행 여부를 다시 확인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주민등록등본을 잘못 발급하면 다시 발급하면 된다. 세금이 잘못 부과되면 이의신청과 정정 절차가 있다. 반면 투표와 개표는 한 번으로 끝난다. 선거 후에는 없었던 일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 이런 이유에서 선거관리 사고는 사후 해명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설명과 개선책이다. 동일한 사고가 왜 다시 나왔는지, 다음 선거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까지 선관위가 이제는 내놔야 한다. jjw@fnnews.com 정지우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