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가 주요7개국(G7)에 낀 것은 1975년 자유당 집권 때다. 지금의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의 부친 피에르 트뤼도가 그 시절 총리였다. 이웃 미국의 주선으로 서방 클럽에 합류하긴 했으나 존재감 약한 나라는 기를 펴지 못했다. 당시 캐나다 경제는 글로벌 2% 비중밖에 안 됐다. 더욱이 1970~80년대 내내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1990년대에 접어들자 한 해 예산의 ..
2023-03-13 18:09:11아폴로 신전을 뒤로하고 아이들은 공을 차고 있었다. 신전 앞 민가의 뜰에선 젊은 여인이 빨래를 널고 있다. 10여년 전 튀르키예 서부 고대 헬레니즘 유적지를 다닐 때 이런 풍경을 자주 봤다. 들판에서, 산길에서 수천년 된 유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튀르키예는 거대한 신화의 땅이었다. 성서의 주요 인물들이 생을 바친 곳도 튀르키예다. 이방인..
2023-02-13 18:25:59베트남의 과거는 말 그대로 전쟁의 역사다. 그것도 상대는 매번 당대 최강의 나라들이었다. 숙적 흉노를 무찌르고 비단길을 장악해 한나라를 대제국으로 키운 이는 무제다. 중국의 베트남 1000년 지배 문이 이때 열렸다. 판을 뒤집기까지 포기를 몰랐던 베트남 선조들의 근성은 지금 봐도 놀랍다. 938년 하롱베이 인근 박당강에서 5대10국 중 하나였던 남한군을 대파해 ..
2023-01-09 18:47:26다이소 창업주 박정부 회장(78)은 흙수저 정도가 아니라 무수저 출신이다. 아버지는 6·25전쟁 때 북한군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 집은 폭격에 불탔고, 가족들은 어머니 삯바느질로 연명했다. "절대 가족보다 먼저 죽지 않겠다." 이 비장한 결심을 다시 품은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파업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촉망받던 관리자에서 ..
2022-12-12 18:09:57바야흐로 통근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은 철도 덕분이었다. 짐짝 말고 사람, 그러니까 도시에 일터를 둔 근로자들을 태워 나르는 철도(런던~그리니치 레일웨이)는 1836년 드디어 첫 기적을 울린다. 인류문화사를 주로 다룬 영국 작가 이언 게이틀리의 책 '출퇴근의 역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1세대 통근자는 변호사 등 부유층 전문직이 많았으나 노동계급이 이 대열에 합..
2022-11-14 18:04:24대만 반도체의 거인 모리스 창 TSMC 창업자(91)는 2018년 6월 물러났지만 여전히 막후 힘을 발휘한다. 지난 8월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대만에 갔을 때 창은 TSMC 회장 마크 류와 함께 펠로시를 만났다.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동맹 새 판을 짜기 위해 미국은 지금 못하는 것이 없다. 대만은 반도체에 자국 안보의 명을 걸었다. 펠로시와 창은 서로에게 할 말이 많..
2022-10-17 18:29:24"저는 여러분 앞에 선언합니다. 저는 평생, 단명하든 장수하든 헌신적으로 여러분께 봉사할 것입니다." 1947년 4월. 이 짧은 문장을 담은 6분짜리 연설이 영국연방 전역에 생중계됐을 때 수많은 이들이 울컥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지 6세의 장녀, 스물한 살의 엘리자베스다. 세상을 향한 그의 첫 메시지였다. 공주 역시 쉰한살 학자가 쓴 이 원고를 보자마자 그 ..
2022-09-19 18:17:57"당신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고 말한 이는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다. 미국의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FDR)의 부인이다. 엘리너가 남긴 어록은 수도 없이 많다. "돈을 잃은 자는 많은 것을 잃은 것이며 친구를 잃은 자는 더 많은 것을 잃은 것이며 신의를 잃은 자는 모든 것을 잃은 것..
2022-08-10 18:28:411989년 11월 9일 목요일 오후 독일 동베를린. 35세 동독의 과학자 앙겔라 메르켈은 동료들과 세미나를 끝낸 뒤 사우나에서 시간을 보냈다. 거리로 나왔을 때, 국경 검문소는 열려 있었다. 장벽에 오른 시민들의 함성이 쩌렁쩌렁했다. 그때 메르켈이 한 일은 평소처럼 맥주를 마시는 대신 "서쪽으로 걸어간 것"이 전부였다. 메르켈의 16년(2005~2021년) 집권기..
2022-07-13 18:29:58번쩍이는 분홍빛 의상으로 치장한 청년은 단호한 스텝을 밟고 있었다. 현란한 몸짓으로 압도하는 눈빛의 청년은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의 리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다. 그는 2006년 우크라이나 춤 경연대회 우승자였다. 그의 춤 동영상 편집본은 지금도 SNS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다. 소화가 안 되는 장르가 없다. 이토록 유쾌한 대통령의 과거라니. 젤렌..
2022-06-08 18:14:05미국의 석유재벌 폴 게티(1892~1976)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당대 세계 최고 부자에 속했으나 그보다 구두쇠일 순 없는 사례가 숱했다. 그 유명한 손자 납치사건(1973년) 때 보여준 일화가 가장 많이 회자된다. 손자의 잘린 한쪽 귀를 소포로 받고 나서야 게티는 협상에 나섰다. 납치범이 요구한 몸값은 1700만달러. 그는 이를 깎아 300만달러에 합의를 본다. 하지만 ..
2022-05-11 18:35:04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두 전직 프랑스 대통령이 없었다면 지금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샤를 드골 대통령이 문을 연 프랑스 제5공화국 역대 지도자 중 가장 인기 없었던 이가 사르코지, 올랑드인 건 분명하다. 이들 10년 치세가 부른 정치혐오, 대선 코앞에서 터진 쟁쟁한 거물들의 극적인 스캔들, 그 속에서 빛나는 정..
2022-04-13 18:43:47카키색 털모자를 눌러쓴 러시아 병사는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흐느끼고 있다. 땋은 머리에 보라색 물을 들인 우크라이나 여성은 스마트폰 화상으로 누군가를 불러낸다. "나타샤, 들리나요?" 병사의 어머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들을 확인한 어머니 목소리가 떨린다. "잘될 거야, 다 잘될 거야." 지난주 외신이 보도한 러시아 병사의 트위터 영상 장면이..
2022-03-07 18:34:131965년 5월 6일 새벽 1시. 서울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온 화가는 결국 숨을 거뒀다. 나이 쉰하나. 요절도 장수도 아니었다. '어느 예술가의 죽음/이젤조차 없이/가난으로 보낸 나날'. 신문은 그의 부고 기사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는 데 실패했던 무명의 화가. 하지만 모두가 사랑하는 국민화가에 이르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
2022-02-09 18:07:19몇 해 전 에스토니아 탈린의 구시가 골목에서 악기 반두라를 처음 보았다. 기타처럼 생겼으나 목은 짧고, 몸통은 얇은 우크라이나 민속 현악기가 반두라다. 우크라이나 출신 건장한 청년이 이 악기로 한없이 슬픈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에 맞춰 노래하던 또 다른 청년은 저음의 굵은 목소리였다. 그 민요풍 노래 가사가 우크라이나 민족시인의 시였다는 사실은 ..
2022-01-12 18:06:361984년생 제이디 밴스는 미국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전도유망한 변호사다. 이 반듯한 백인 청년은 오하이오 출신으로 그곳에서 평범한 공립학교를 나와 해병대를 거쳐 이라크 파병부대 전투원 생활까지 했다. 예일대 교수들은 이 이력에 입을 쩍 벌렸다. 해병대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입학한 오하이오주립대 시절 구직 면접을 위해 그가 고른 복장은 해병대 전투화와 ..
2020-11-25 18:23:48"날은 더워졌는데 눈이 내렸다. 세월이 병들었다." 지금 중국에서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 옌롄커의 소설 '레닌의 키스'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름에 갑자기 눈이 내린 바러우산맥 장애인마을 서우훠. 해결사로 등장한 현장 류잉체는 보통 캐릭터가 아니다. 혁명과 출세에 목숨 건 류는 러시아가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 시신 관리비로 고민이 많다는 신..
2020-11-04 18:00:00지난달 87세 나이로 타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50여년 법조인생 중 27년을 미국 대법관으로 지냈다. 자신의 후임 지명은 대선 후 해달라는 말을 남겼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보수 중의 보수 에이미 코니 배럿 지명은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성대하게 열린 행사장. 하필 거기서 백악관 인사들이 대거 코로나19에 감염됐다..
2020-10-14 18:15:58"그래서 나는 더더욱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벨라루스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2015년)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72).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에서 그는 반복적으로 이 표현을 썼다. 기자 시절에 쓴 반정부 글로 인해 해외를 전전하다 고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게 10년 정도 된다. '하얀 루시'라는 뜻의 벨라루스는 러시아, ..
2020-09-02 18:05:00"독일 대장장이 출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이후 이토록 큰 변곡점은 없었다." 미국 저명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의 지적이다. 그가 말하는 변곡점은 정확히 2007년에서 시작한다. 특별할 것 같지 않아 보였던 그해 1월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세상을 뒤흔들었다. 페이스북이 e메일 주소를 가진 13세 이상 모두..
2020-07-22 17:46:22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어중간한 시공무원에서 최고권좌에 오른 과정은 극적이다. 1990년대 말 막판 병약해진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그들 안위를 위해 급히 스카우트한 국가보안위원회(KGB) 중령 출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초반 2%대 지지율에 불과했지만, 그후 정교하게 터져나온 체첸분쟁이 이 무명의 정치인을 대통령 자리까지 ..
2020-07-01 18:03:18마오쩌둥 주석이 이끌던 중국의 2인자 저우언라이 총리는 인민복 차림으로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의 베이징 숙소를 찾았다. 1971년 7월 9일 오후였다. "키는 작지만 우아한 자태며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 번득이는 눈빛이었다. 탁월한 지성과 품성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키신저는 저서 '중국이야기'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2020-06-03 17:00:06한때 미국 언론은 그를 '성난 흑인 여성'의 대표자로 그렸다. 하지만 이제는 재클린 케네디 이후 가장 우아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영부인에 그를 올려놓는다. 시카고 변두리 흑인동네에서 태어나 프린스턴대·하버드대·유명 로펌·백악관까지 차례로 정복하며 완벽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여인. 남편이 대통령에서 물러났어도 그의 인기는 여전하..
2020-05-13 17:31:35극우 기세에 바람 잘 날 없던 이탈리아의 코로나발(發) 붕괴는 그럴 수 있다 치자. 경제력, 군사력, 기술력 세계 최강 미국의 코로나발 초토화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봉쇄령에 지친 미국인들은 이제 총까지 들고 나와 셧다운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확진자수는 80만명을 넘었다. 세계 모든 국가를 압도하는 이 수치만으로도 공포스럽다. 도널드 트럼..
2020-04-22 17:14:46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미군에 공식 항복을 선언한 날, 도쿄 풍경은 그로테스크했다. 궁성 앞 오열하는 젊은이들 사진은 훗날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당시 시내 거리엔 이상한 활력이 넘쳤던 모양이다. 작가 사카구치 안고(1906∼1955)는 "전쟁의 위대한 파괴 아래 운명은 있었으나 타락은 없었다. 무심했지만 충만했다"는 말로 그 순간을 기억했다..
2020-04-01 16:5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