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현미경 색채화 사진으로 인간 T세포(푸른색)이 에이즈 발병의 HIV 바이러스(노란색) 공격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미국 국립보건원 제공)
HIV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의 약자로 면역세포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입니다. HIV는 체내에 침투하면 면역계의 핵심인 CD4 양성 T세포에 결합해 세포 내부로 침투합니다.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 물질을 숙주 세포의 DNA에 삽입한 뒤 세포를 복제 공장으로 만들어 수천 개의 새로운 바이러스를 생산합니다. 이 과정에서 CD4 T세포가 파괴되면서 면역 기능이 점차 약해집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가 표준화되면서 약만 꾸준히 복용하면 바이러스 억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일반인과 거의 동일한 기대수명을 누립니다.
HIV 감염이 곧 에이즈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에이즈는 HIV로 인해 면역 기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져 기회감염이 발생한 상태를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CD4 T세포 수가 혈액 1㎕당 200개 미만으로 감소하거나, 폐렴·결핵·칸디다증 같은 기회감염이 나타나면 에이즈로 진단됩니다. 기회감염이란 정상적인 면역 체계에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병원체가 면역력 저하로 인해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조기 치료만 이뤄지면 에이즈 단계로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HIV와 에이즈를 같은 것으로 보는 낡은 인식이 여전합니다.
HIV 감염 초기에는 약 1개월 전후로 급성 증상기가 나타납니다. 38℃ 이상의 고열, 인후통, 전신 근육통 등 감기와 유사한 증상이 대표적입니다. 겨드랑이·사타구니 림프절이 붓거나 몸통·팔다리에 붉은 반점이 며칠간 지속되기도 합니다. 면역 저하로 구역감, 설사 등 소화기 증상이 동반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증상은 감기·몸살·장염과 비슷해 HIV 감염인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급성기가 지나면 HIV는 임상적 무증상기, 즉 잠복기에 들어갑니다. 이 기간은 평균 8~10년으로 개인 차이가 크며, 겉으로는 특별한 증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혈중 바이러스는 계속 존재해 전파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이후 면역 기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기회감염이 발생하며 에이즈 단계로 진단됩니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HIV의 주요 감염 경로는 성 접촉, 오염된 주사기 공동 사용, 모자 간 수직 감염, 수혈 등입니다. 이 중 국내 신규 감염인의 99.8%가 성 접촉으로 감염됐습니다. 성 접촉의 전파 확률은 0.01~0.5%로 비교적 낮지만, 단 한 번의 관계로도 감염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익명 관계나 일회성 관계에서는 특히 위험성이 커집니다. 전문가들은 콘돔 착용이 감염 예방의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HIV는 감염 전에 예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감염 위험 집단이 미리 약물을 복용해 전파를 차단하는 프렙(PrEP)입니다. HIV 감염인을 파트너로 둔 경우 등 감염 위험이 높다면 의료기관에서 프렙 처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HIV 항원·항체 검사와 프렙 처방 전 검사는 전액 무료로 지원되며 약제비는 6만원만 부담하면 됩니다. 아이샵(iSHAP) 홈페이지에서 프렙 처방 기관을 간편하게 조회할 수 있습니다.
HIV는 위험 행동 여부로 감염 가능성을 판단해야 하며, 증상만으로는 감염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질병관리청은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 있었다면 증상 유무와 상관없이 HIV 검사를 받도록 권고합니다. 일반적으로 위험 노출 후 12주가 지나면 검사 정확도가 가장 높습니다. 전국 보건소에서 무료·익명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으며 개인 정보는 철저히 보호됩니다. 조기 진단은 감염인의 치료 성과와 삶의 질을 크게 높입니다.
과거에는 HIV 감염이 곧 에이즈로 이어지는 치명적 질병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조기 치료만 이뤄지면 에이즈 단계로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는 바이러스를 억제해 면역 기능을 보호하며, 감염인의 전파 가능성도 낮춥니다. 꾸준한 치료로 바이러스 농도가 미검출 상태가 되면 사실상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습니다. HIV는 이제 조기 진단과 치료만 이뤄지면 관리할 수 있는 만성질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