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업계 망친다? '창고형 약국'을 둘러싼 논란
약국 업계 망친다? '창고형 약국'을 둘러싼 논란

약국은 변해야 할까, 변하면 안 되는 걸까? ‘약국계의 코스트코’ 창고형 약국이 던진 질문

2025.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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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창고형 약국'의 등장

‘창고형 약국‘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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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수정구 고등공공주택지구에 있는 국내 첫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약국 성남점 내부. 사진=연합뉴스
경기 성남시 수정구 고등공공주택지구에 있는 국내 첫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약국 성남점 내부.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1일 국내 최초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약국 성남점(이하 메가팩토리약국)'이 문을 열었습니다. 대형마트의 창고형 운영방식을 약국에 접목한 이곳은 지상 4개층의 단독건물로 2층부터 4층까지는 주차장이고 1층만 매장인데요. 매장 부지가 430㎡(130평)에 달하며 창고형 매장 답게 높은 층고의 공간이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으로 가득 차 있어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매장 내에는 2500~3000개의 제품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습니다. 소비자는 쇼핑카트를 끌고 매장을 돌아다니며, 원하는 제품을 카트에 담아 계산하는 되는데요. 계산대에서 계산을 돕는 직원들도 모두 약사들입니다. 매장 곳곳에 상주 약사들도 있어, 필요시 복약지도와 상담도 받을 수 있습니다.
메가팩토리약국 성남점 카운터 모습. 사진=연합뉴스
메가팩토리약국 성남점 카운터 모습. 사진=연합뉴스

소비자 니즈에 맞춰 유행 중인 ‘마트형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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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팩토리약국이 이슈의 중심에 섰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직접 골라 계산하는 방식 자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제일큰약국'이나 '○○백화점약국' 등 전국적으로 확산 중인 마트형 약국들이 이런 쇼핑 방식을 먼저 도입해왔기 때문입니다.
광주 동구 대림동의 123약국 내부 전경. 사진=123약국
광주 동구 대림동의 123약국 내부 전경. 사진=123약국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광진제일큰약국 내부 전경. 사진=광진제일큰약국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광진제일큰약국 내부 전경. 사진=광진제일큰약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 구매하는 방식이 인기를 끌면서 확산하는 '마트형 약국'은 작년부터 전국적인 확산세에 있으며, 현재 전국에 100여개 이상의 매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약국 생태계 위협˝... 창고형 약국 압박하는 약사들

약사들이 ‘창고형 약국‘을 반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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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창고형 약국' 내부 모습. 지난달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의 한 창고형 약국 내부 모습.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 창고형 약국'을 표방하며 이달 11일 문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첫 '창고형 약국' 내부 모습. 지난달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의 한 창고형 약국 내부 모습.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 창고형 약국'을 표방하며 이달 11일 문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약사들은 '창고형 약국'은 약사가 직접 환자에게 복약지도와 상담을 제공하는 본래의 역할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유려를 표합니다. 의약품을 공산품처럼 진열하고 판매하는 방식은 약국의 공공성과 전문성을 훼손한다는 건데요.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과 보건의료 체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약사회의 입장입니다.

또한, 대형 자본이 진입해 가격 경쟁이 심화될 경우 지역 약국의 생존이 위협받고, 의약품 오남용이나 부작용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창고형 약국이 확산되면 약국 유통질서가 흔들리게 되고, 이로 인해 약국 폐업이 늘어나면 국민이 필요로 할 때 안전하게 의약품을 구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감기약 수급 안정 위한 대한약사회 캠페인. 사진=연합뉴스
감기약 수급 안정 위한 대한약사회 캠페인. 사진=연합뉴스

"약사법 위반"... 결국 현수막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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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팩토리약국은 3일 오후 약국 외벽에 게시돼 있던 대형 현수막을 철거했습니다. 해당 건물에는 약국의 개업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는데요. 현수막에 쓰여있는 '창고형 약국' 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된겁니다. 지자체에서는 '창고형 약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약사법에 어긋날 수 있다며 해당 용어 사용과 게시를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약사사회에서는 일부 약국이 '마트형', '창고형' 등의 명칭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인하고 있다며 제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이에 따라 지자체가 약사회의 문제 제기를 일부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해당 용어 사용이 약사법 시행규칙 제44조(의약품 유통관리 및 판매질서 유지를 위한 준수사항)에서 금지하는 유인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현수막 내린 메가팩토리약국. 사진=성민서 기자
현수막 내린 메가팩토리약국. 사진=성민서 기자



'반대왕' 약사들에 여론은 싸늘하다

다이소 건강기능식품 판매 갑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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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들의 창고형 약국 반대에 여론은 싸늘합니다. 소비자들은 약사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는 약사 업계가 '반대'만을 해왔던 탓이 큽니다.

지난 3월 다이소에서 건강기능식품 판매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5000원 남짓의 저렴한 건강기능식품의 등장에 소비자 호응이 매우 뜨거웠지만, 약사회는 "다이소에서 파는 건강기능식품은 약국 판매 제품보다 유효 성분의 함량이 현저히 낮다", "약국의 제품이 비싸보이게 함으로써 약국 건강기능식품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며 즉각 판매를 중지하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지난 2025년 3월 1일 다이소 홍대2호점 건강기능식품 매대 앞에서 소비자가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노유정 기자
지난 2025년 3월 1일 다이소 홍대2호점 건강기능식품 매대 앞에서 소비자가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노유정 기자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은 제약사 3곳을 방문해 다이소 철수를 요구하기까지 했는데요. 다이소에 건기식을 납품한 제약회사 중 한 곳이 닷새만에 판매를 철회했죠. 이후 제약회사에 갑질을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약사회는 공정위 현장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의 건강기능식품 판매 중단을 둘러싸고 '갑질 혐의'를 받는 대한약사회를 대상으로 본격 조사에 나섰다. 공정위는 13일 오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대한약사회에 조사관 등을 보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한약사회 모습. 2025.3.13/뉴스1
공정거래위원회가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의 건강기능식품 판매 중단을 둘러싸고 '갑질 혐의'를 받는 대한약사회를 대상으로 본격 조사에 나섰다. 공정위는 13일 오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대한약사회에 조사관 등을 보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한약사회 모습. 2025.3.13/뉴스1

편의점 안전상비약 지사제·제산제 추가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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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13개 품목. 이중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mg와 타이레놀정 160mg이 단종되어 현재는 11개 품목만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13개 품목. 이중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mg와 타이레놀정 160mg이 단종되어 현재는 11개 품목만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약사회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의 품목 확대도 13년째 반대하고 있습니다. 2012년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편의점에서 진통제와 감기약 등의 안전상비약을 살 수 있게 되었는데요. 약사법상 20개 품목까지 판매할 수 있도록 했지만 당시 13개의 품목만 지정되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품목을 늘리자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2017년 12월 보건복지부는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 심의위원회를 열어 위산 분비로 인한 속쓰림을 완화시키는 제산제(겔포스엠)와 갑작스런 설사를 막는 지사제(스멕타현탁액)의 품목을 추가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 결정 막바지에 약사회 간부가 갑자기 "국민 건강권을 침해한다"며 칼을 들고 자해 소동을 벌여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제산제와 지사제는 '약물 오남용' 가능성도 매우 낮은 품목이기에 약사회의 반대는 설득력을 얻지 못해 비난을 받았습니다.

제산제 '겔포스엠' 사진=뉴시스(보령제약 제공)
제산제 '겔포스엠' 사진=뉴시스(보령제약 제공)

지사제 '스멕타현탁액' 사진=파이낸셜뉴스(대웅제약 제공)
지사제 '스멕타현탁액' 사진=파이낸셜뉴스(대웅제약 제공)

2025년 현재, 편의점 안전상비약은 2개가 줄어 11개입니다. 제약사 사정 및 국내 생산 중단으로 인해 어린이용 타이레놀 정제(80 mg)와 타이레놀 정제(160 mg)가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심의위원회는 6년 넘게 구성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창고형 약국'을 반대하는 약사들의 속사정

약사도 힘들다...약국 업계는 포화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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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약국 시장은 지난 5년간 매년 수백 곳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강중구)이 공개하고있는 빅데이터개방시스템 의료자원현황에 따르면 2024년 1월 1일 기준 전국 약국 수는 2만4933개소였지만 매달 꾸준하게 증가해 10월 1일 기준 전국 2만5199개소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신규 약사들이 2000여 명씩 배출되는데 그 중 개업을 선택하는 약사가 70%에 육박하기 때문인데요. 약사 면허는 종신 면허라서, 정년이 없죠. 문 닫는 약국은 없고 새 약국은 계속 늘어나는 형국입니다.


약국당 매출 1위 서울 종로구에 늘어선 약국들. 사진=연합뉴스
약국당 매출 1위 서울 종로구에 늘어선 약국들. 사진=연합뉴스

업계에서는 보통 월 조제료 수입이 최소 1000만원은 좋은 입지라고 하는데요. 약국 차리기 좋은 입지는 이미 선배 약사들이 차지한 상황에서 새로 약국을 차리려는 신규 약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최대한 비집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존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은 이러한 약국들을 '치들약(치고 들어오는 약국)'이라고 비난하지만, 신규 약사들 입장에서는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지역 인구가 매년 줄어드는 탓에 처방전을 써줄 의원들도 문을 닫는 지경이거든요.



약사 업계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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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약국 현관에 "종합병원 처방조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뉴스1
서울 시내의 약국 현관에 "종합병원 처방조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뉴스1



대한약사회는 '창고형 약국'이 약사의 전문성과 직능을 위협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처방전을 따라 약을 조제·판매하는 역할이 과연 전문직의 본질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의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약물 오남용 우려'와 '복약지도 필요성'만을 내세운 반대 논리는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습니다. 원격 진료와 비대면 진료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의약품 유통만큼은 약사가 독점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약사의 전문성이 더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고령화로 인해 복잡한 약물 관리가 필요한 노인과, 약물 오남용 문제가 심각한 청소년 등 사회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약사의 전문성은 오히려 약국 밖에서 더 요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창고형약국 전경. 사진=성민서 기자
창고형약국 전경. 사진=성민서 기자

'창고형 약국'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시장 파괴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칠 문제가 아닙니다. 어쩌면 창고형 약국은 약국이 곧 약사인 기존의 약국 생태계를 흔드는 존재가 아니라, 약사 사회와 국민 모두에게 변화와 성찰의 기회를 던져주는 계기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정부와 약사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약사의 역할과 전문성을 어떻게 재정립할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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