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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제금융포럼]힐튼 루트, '성장을 향한 최적의 금융시스템'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12 04:46

수정 2014.11.07 13:55


1. 서론
금융시스템은 경제성장과 발전의 핵심요소다.지난 97년 아시아 경제위기는 이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아시아 국가들은 건실한 펀더멘털(경제적 기초)을 갖추고 있었지만 취약한 금융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해 경제 위기를 겪었다.지난 20년간 선진국, 개발도상국 가리지 않고 국제통화기금(IMF) 회원국 중 3분의 2 이상인 182개국이 금융위기를 겪었다.

개도국들이 일찍이 경제 위기를 겪은 바 있는 선진국의 경험을 빌릴 수는 없을까. 만약 빌린다면 선진국의 다양한 금융 시스템 중 어떤 것이 적합할까.

금융시스템은 규모, 구성, 소유권, 집중도 등에 따라 각각 다르다.또 은행과 보험의 겸업을 금지하는 국가처럼 금융시스템의 차이는 제도에도 기인한다.

각국별 금융시스템의 차이를 짚어보고 정책 대안을 제시해 보겠다.
2. 각국의 금융시스템 차이
◇규모에 따른 금융시스템 차이

국내총생산(GDP) 비율로 따질 때도 선진국 금융시스템은 개도국에 비해 규모가 크다.금융시스템의 규모는 은행 자산, 주식 발행액, 채권 발행액을 모두 더한 수치다.이 규모가 클수록 경제성장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다.장기적으로 저축과 투자를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성에 따른 금융시스템 차이

미국 기업은 주로 주식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고, 독일 기업은 은행을 통해 자본을 조달한다.어떤 형태가 더 나은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서비스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의 경우 주식시장을 통한 자본조달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미국의 이른바 신경제의 발전도 주식시장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자산도 없고 시장에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인적자본이 전 재산인 벤처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는 주식시장이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은행과 주식시장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은행과 주식시장은 운용 방법이 다르지만 저축과 투자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다만 주식시장보다 은행에 더욱 의존할 경우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지불해야 할 비용이 더 높다.
◇소유권에 따른 금융시스템 차이

국가, 개인, 내국인, 외국인 등 누가 은행의 주인인가도 중요한 문제다.브라질 은행은 50% 이상이 국가 소유다.반면 영국 은행의 50% 이상은 외국인이 주인이다.7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개인이 은행을 소유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중도에 따른 금융시스템 차이

러시아의 경우 최대 은행이 러시아 전체 은행 자산의 25%, 러시아 10대 기업은 주식시장 전체 자금 중 약 60%를 차지한다.반대로 미국에서는 최대 은행이 은행 전체 자산의 6%, 최대 기업은 주식시장 자금의 약 14%를 차지한다.
◇금융시스템 차이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 비용

미국은 80년대 은행권 도산 사태로 2000억달러(GDP의 3% 수준)를 손해봤다.그러나 97년 아시아 국가들은 인도네시아 80%, 한국 60%, 태국 40% 등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시스템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는 점, 반면 경제 전체에서 금융시스템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았다는 점이 공통점으로 지적된다.

이 차이는 금융시스템이 은행이나 주식시장 어디에 집중됐는가에 따른 것이다.미국에서는 주식시장이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반면 한국 등 개도국들은 은행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3. 정책대안
◇금융시스템의 구성 다양화

은행, 주식시장은 상호 보완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끄는 양대 축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고 다양한 업무 영역을 갖춘 금융시스템을 육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자료 분석결과 은행 자산이 주식시장 규모보다 클 경우 은행권 위기로 인한 비용 지출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따라서 정부는 주식시장을 희생하면서까지 은행 대출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서는 안된다.

은행이 금융시스템 대부분을 차지할 경우 은행권 위기는 곧바로 저축과 투자를 연결하는 금융의 매개기능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결국 실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또 은행자산이 일부 은행으로 집중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전체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더 커진다.은행이 너무 커진 상태에서 도산 위기에 몰리면 파급 효과가 걷잡을 수 없어 대책없이 돈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

또 은행자산이 집중되면 은행간 경쟁을 해쳐 대형 은행이 신용분석 기법 개발을 소홀히 하고 친밀도에 따라 대출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은행 소유권 민간 이전

정부가 은행을 소유하면 자원배분이 왜곡돼 경제성장을 해칠 수 있다.정치인이 은행을 정권의 기반으로 삼아 정권에 가까운 기업이나 정부소유 기업에 대출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중국은 비생산적인 국영기업에 쏟아부은 무리한 대출로 금융시스템 전체가 약화되기도 했다.

부자와 권력자들 사이의 정치적 가신주의도 활개칠 소지가 있다.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금융권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치적 간섭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 소유 은행을 민영화하는 것이다.물론 이 경우 은행간 경쟁이 담보돼야 한다.국내 은행을 외국 은행이 인수토록 하거나 외국 은행이 국내 은행과 같은 조건으로 활동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경쟁을 유발시키는 한가지 방법이다.

금융기관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외국 은행의 시장진입은 은행간 경쟁을 활성화하고 국내 은행의 영업행태도 선진화할 수 있다.
◇집중분산

경제 자원이 소수 기업에 집중되면 국영이든 민간기업이든 국가경제 전체가 취약해진다.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커지고 은행 대출에 시장원리 대신 연고주의가 판을 치게 되기 때문이다.

은행 자산이 소수에 집중되거나 소수기업이 주식시장을 독식하면 금융시스템은 폭넓게 발전할 수 없고 금융시스템의 유동성도 낮아져 성장이 더뎌진다.시장은 비효율적으로 작동한다.따라서 금융시스템을 개선해 소수 개인에 집중된 경제력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은행을 견제하고 주식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기업은 직접금융을 통해 보다 많은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하면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진다.
◇규제축소

은행의 업무영역, 소유권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를 풀어 은행이 자유롭게 국제 금융시장에 진출하고, 빠르게 변하는 정보기술(IT) 분야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법률과 감독기능 강화

개도국들은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적절한 법률과 감독기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자본시장(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회계기준과 법률을 개선할 때 경제적 번영도 찾아올 것이다.

/힐튼 루트 밀큰연구소 세계경제연구실장
/정리= dympna@fnnews.com 송경재
■힐튼 루트 약력

밀큰연구소가 자랑하는 세계경제 전문가로 현재 밀큰연구소 세계경제분석실장을 맡고 있다.아시아 시장에 정통한 그는 개발도상국에 관한 많은 연구실적을 발표했다.

스탠퍼드대에서 공공정책과 국제정책을 가르쳤고 같은 대학 부설 후버 연구소에서 수석연구위원으로 일하다 최근 밀큰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지난 94∼97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고문으로 있으면서 스리랑카 국가행정시스템 구조조정 작업을 맡기도 하는 등 실무도 겸비했다.현재 남아시아 지역 국가의 정부와 경제기관 구조조정을 돕고 있다.
■주요약력

▲ 미시간대 경제학,역사학 박사

▲ 스탠퍼드대 교수(공공,국제 정책)

▲ 후버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아시아개발은행 수석고문
■주요저서

▲ ‘동아시아 기적의 열쇠’

▲ ‘글로벌 경제의 유인에 대한 재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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