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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제금융포럼]강병호 금감원 부원장 연설 요약

차상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12 04:47

수정 2014.11.07 13:54


오늘 파이낸셜뉴스와 밀큰연구소가 공동 주최하는 ‘서울 국제투자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은 97년말 외환위기가 발발하면서 국가부도의 지경에 이르는 등 세계인들을 다시 놀라게 했다.그러나 한국은 불사조와 같이 부활함으로써 또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국의 개혁은 이제 종결된 것인가’하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그 대답은 ‘아니다’이다.우리는 아직도 먼 길을 더 가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기초가 되는 금융 인프라스트럭처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일이다.

다음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사이에 활발하게 전개될 경제교류에 대비해 역량을 구축하는 일이다.

마지막은 동아시아 지역금융센터로서의 위상을 구축하는 과제다.

가끔 비판적인 논평가들은 한국이 제2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도 한다.가용 외환보유고가 900억달러를 상회한다는 사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위기의 가능성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내외투자가들의 관심의 초점이 돼온 4대 그룹의 구조조정에 대해 언급하겠다.

99년중에 4대 계열은 15조원의 자산을 매각하고 23조원을 증자함으로써 부채를 25조원이나 감축시켰고 부채비율을 178%로 낮췄다.

이들 4대 그룹의 수익성이 98년 10조3000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7조5000억원 흑자로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우리는 이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매출이익률도 2.7%에 달했다.

4대 그룹뿐만 아니라 상장회사 전체를 살펴봐도 517개 비금융 상장회사의 경우 부채비율이 279%에서 148%로 감소했다.

해외분석가들은 한국기업이 여전히 취약하다고 하지만 정보기술(IT) 등 지식산업분야의 신생기업이 속속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실 등에서도 구조조정의 성과는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상장기업의 99년 자기자본 이익률(ROA)은 6% 남짓하여 만족할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주목해야 할 점은 구조조정이 미진한 기업이 상당수임에도 한국경제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올해는 실적이 더욱 개선될 것이며 이는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징표다.

구조조정은 이미 시장의 힘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돌이킬 수 없는 경지에 달했다.

역설적으로 현대그룹이 한때 유동성위기에 봉착했던 것도 시장규율이 과거 어느때보다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현대그룹은 총부채를 9조여원 줄이고 부채비율을 181%로 낮췄다.
다만 현대 계열사의 자금조달이 원활하지 않았던 데는 강화된 제도적 장치와 시장규율이 강력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경우는 두드러진 한 예에 불과하다.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정보가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저희 금융감독원은 미국 SEC의 EDGAR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DART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분기별 재무제표와 경영지배구조 등 기업분석에 필요한 주요자료들이 전자공시되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나라중 하나가 되었다.외국인 투자가를 위해 영어로도 개발중이다.

이제 금융구조조정의 최근 진전사항을 볼 필요가 있다.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의 고객 펀드에서 부실자산을 털어낸 다음 자본을 확충하고 오직 고객의 이익을 위해 펀드가 운용되도록 각종 제도적 장치를 보강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회복했다.다른 투자신탁운용회사들도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금융의 핵심인 은행의 구조조정에서도 부실은행은 정리하고 남은 은행은 부실자산을 털어내는 한편 인원 및 조직의 감축을 통한 외과적 수술을 단행했다.경영지배구조를 선진화했고 25조5000억원의 증자를 통해 BIS기준에 맞춰 자본충실도를 제고했다.

이제부터의 은행구조조정은 시장에 의해 주도되면서 완성도를 더해 나갈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한 일부 은행원들의 파업이 있기도 했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장의 힘은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원칙은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다.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구조조정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부도설이나 대란설이 앞으로도 있겠지만 구조조정을 촉구하는 제도적 장치나 시장규율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에 아직 안개가 끼어 있지만 그 안개속을 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분들은 반드시 보람이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 강병호 금융감독원 부원장 약력

▲46년 경남 함양생

▲69년 고려대 경영대 경영학과 졸업

▲69∼81년 한국은행 근무(조사부 과장)

▲81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대학원 재무관리 경영학 석사

▲86년 고려대 대학원 재무관리 경영학박사

▲81∼98년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휴직)

▲88∼98년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93∼97년 증권관리위원회 비상임 위원

▲97∼98년 국민은행 비상임 이사

▲97∼98년 금융개혁위원회 자문위원

▲99년1월∼현재 금융감독원 부원장

한양대 금융대학원 금융증권 전공주임

▲저서 ‘금융기관 경영론’,‘금융제도론’,‘금융시장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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