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이해집단 반발에 밀리는 ‘개혁정책’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5.02 06:08

수정 2014.11.07 14:40


차기정권에 대한 책임전가식 ‘정책딜레이’는 국정 후반기 들어 한층 노골화되는 양상이다.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금융·기업 구조조정 작업은 갈수록 추진력이 약해지면서 부실청산 부담이 뒤로 미뤄지고 있다. 공적자금도 134조원이나 투입됐으나 본격 회수는 차기에서 맡아야 한다. 막대한 은행돈을 잡아 먹고 있는 현대사태와 대우자동차 문제도 이런 식으로라면 차기정권의 해결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설상가상 차기정권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현 정부가 발행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나랏빚까지 떠안게 됐다.

이미 시행을 약속한 각종 정책들도 차기정권으로 속속 넘겨지고 있다.
최근 2년 연기쪽으로 기운 모성보호법을 비롯해 노동법 개정안, 금융지주회사 기능재편 방안, 주가지수선물거래 부산선물거래소 이관 등 부담스런 사안들에 대해 현 정부는 이해집단의 반발에 부딪히기가 무섭게 맥없이 손을 들었다.

내년에는 지방선거 및 대선과 맞물려 각종 이해집단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이와 비례해 정부의 눈치보기도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부실한 경제에 곳간마저 텅텅 비었으니=국민의 정부가 출범과 함께 만신창이 경제를 인수해 구사일생으로 회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외환위기 전까지 흑자기조를 유지해온 건실한 재정이 큰 뒷받침이 됐다. 이에 비하면 차기정권은 현 정부가 털어내지 못한 부실과 막대한 규모의 나랏빚까지 걸머지게 된 셈이다. 다행히 경제가 회복되고 성장률이 매년 5∼6%대로 올라서면 몰라도 현재의 침체기조가 계속되는 한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국채를 발행해 경기를 부양하고 금융부실을 털어내느라 공적자금을 대량으로 쏟아부으면서 나랏빚은 지난해말로 120조원(보증채무 포함 194조원)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부실청산 작업은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문제의 경우 정부가 발을 깊이 들여놓으면 놓을 수록 어려운 형국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대우차에 대해선 GM만 바라본채 손을 써볼 엄두조차 내지못하고 있다. 우리경제의 최대복병인 현대와 대우자동차 문제는 차기정권으로 사실상 비용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생색은 현 정권이 내고,부담은 차기에 넘겨=정부가 98∼99년 국채와 보증채무를 대량으로 발행하면서 상환만기를 5∼7년으로 몰아놓아 차기정권은 출범초부터 ‘부도’를 막기에 급급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가 차기정부로 떠넘긴 공적자금 원리금 규모는 총 89조5000억원에 이른다. 공적자금 조성을 위해 발행한 예보채권의 경우 상환만기가 98∼2002년까지인 원금은 전체의 16.7%인데 비해 80.5%는 2003∼2008년 사이 만기가 돌아온다. 자산관리공사의 경우도 상환원금의 68.5%가량이 2003∼2008년 사이에 만기가 몰려있다. 1차 공적자금 조성액 64조원을 놓고보면 원금만기가 올해와 내년에 걸쳐있는 경우는 7조8000억∼8조3000억원인데 비해 차기정권이 출범하는 2003년이 되면 원금상환 규모가 23조2000억원으로 급격히 늘어난다. 여기에다 추가로 조성된 40조원의 공적자금이 더해지면 차기정권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부실대기업 회사채 25조원의 만기를 1년에서 1년6개월 이상 연장하기로 한 ‘회사채신속인수제’도 차기정권으로선 큰 부담이다. 이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인 현대계열의 회사채 만기는 내년말부터 집중적으로 돌아온다. 한술더떠 현대는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의 대출금 1조6000억원에 대해 만기를 올해에서 2003년 이후로 연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고, 채권단은 이를 받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회사채인수제에 대해 “기업구조조정을 3년뒤로 미루는 미봉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골치아픈 사안도 차기정권으로 패스=시행을 2년뒤로 넘기려는 모성보호법이 가장 최근의 실례다. 오는 7월 시행을 전제로 준비해오다 재계가 어려운 경제난을 들어 반발하자 맥없이 주저앉은 셈이다. 이에 대해 여성계가 거세게 들고일어나자 법안의 3가지 골자 가운데 출산휴가를 현행 60일에서 90일로 늘리는 문제에 한해 시행할 듯 했으나 이마저도 결론을 내지 않았다.

이해집단의 반발에 부딪혀 정부가 가볍게 손을 든 사례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노동정책과 관련해 정부는 당초 내년부터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을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집단반발하자 오는 2006년까지 5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우리금융지주회사의 감원 등 기능재편 방안도 당초 오는 10월까지 확정할 방침이었다가 지난해말 금융노조의 파업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2002년 6월로 8개월 연기했다.


주가지수선물거래를 부산선물거래소로 이관하는 문제도 기득권을 놓을 수 없다는 증권거래소측과 증권거래법상 가져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부산선물거래소의 팽팽한 주장 사이에서 양측의 눈치를 보던 정부는 지난해말 부산으로 이관하되 3년간 유예기간을 둔다는 결정을 내렸다. 완전히 부산으로 넘어가는 시점인 2004년부터 시장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기술적인 문제 외에 인력조정 등 골치아픈 문제들이 차기정권의 해결과제로 넘어간 셈이다.


이밖에 부산과 인천항만의 독자운영을 허용하는 항만공사제도 당초 올해 도입될 예정이었으나 해양수산부가 ‘존립문제와 직결된다”며 반발하자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 bidangil@fnnews.com 황복희 서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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