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명동 사채업자 왜 사라졌나]큰손들 벤처투자실패 ‘탈진’

함종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9.02 06:42

수정 2014.11.07 12:51


서울 명동 사채시장의 위축은 코스닥시장 침체와 초저금리 및 경기침체에 따른 것이다.

특히 많은 명동 사채업자들은 지난해 벤처기업투자로 투자원금의 90% 이상을 날리는 등 이미 사업의 바탕이 되는 기초체력을 소진한 상태다.

영업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3년만기 국고채 유통수익률이 연 5%안팎을 오르내리는 ‘초저금리’ 상태까지 지속돼 사채업자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명동지역 사금융 70%가 전업 또는 폐업=명동에서 20여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계림부동산 최우규 대표는 “명동지역 사채업 사무실 수가 지난해에 비해 70% 이상 감소했다”며 “그나마 남아 있는 사무실도 ‘개점휴업’인 상태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명동에 기반을 둔 기업신용정보 제공업체 인터빌의 한치호 부장은 “금융기관 명예퇴직자들이 ‘금융맨’ 시절 알고 지내던 ‘전주’들을 끼고 차린 사금융 회사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고 보면 된다”며 “극심한 경기침체로 생산과 소비가 위축돼 명동지역에서 거래되는 어음이나 외상매출채권 물건의 절대규모가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이와함께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도 사금융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한화경제연구원 오동훈 연구원은 “저금리로 인해 현재 전반적인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국내 금융사상 가장 좋은 상태”라며 “기업입장에선 기업어음(CP) 발행 등 급하게 자금을 조달할 유인이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의 긴급자금수요를 나타내는 당좌대출한도 소진율이 지난 4월 17.8%에서 7월엔 14.6%까지 급감했다.

◇선진국형 금융산업 형태로 진입=전문가들은 사금융의 위축과 관련,선진경제로 진입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사금융 위축원인을 초저금리에 따른 자금의 초과 공급발생에서 찾고 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우량기업에 대해 ‘대출전쟁’을 벌이고 있고,그동안 관심밖이었던 신용불량자에 대한 대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우성 책임연구원은 “신용금고에 이어 은행과 할부금융회사까지 소액대출시장에 나서고 있는 것은 사금융 폐해의 근본을 해결할 수 있는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이미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사금융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의 경우 신용금고의 개인신용대출 연체율이 5% 미만에 그치는 등 신용평가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며 “우리금융기관도 제대로 된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소액대출시장을 더욱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려되는 부작용도=일각에서는 저금리 및 급작스런 사금융의 축소가 기업들의 자금 사정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재무구조가 우량한 중소기업의 경우 은행권 및 사채시장을 통해 싼 이자로 어음할인 등을 받을 수 있는 반면,재무구조가 다소 부실한 기업의 경우 사채시장에서조차 외면당하고 있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 건설회사의 C급 어음을 받은 한 하청회사 사장은 “어음을 할인받아 급전을 마련하려고 명동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월리 2.5%에도 할인해 주려는 업체들이 없다”고 말했다.


영업기반 약화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사금융회사들이 재무구조가 떨어지는 회사의 어음은 아예 할인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사금융의 위축과 함께 명동지역 상권도 최대 불황을 겪고 있다.
명동에서 노래방을 경영하고 있는 최모씨는 “단골이었던 주변 증권회사 직원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됐다”며 “상가 임대료가 예전에는 평당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 하던 것이 지금은 43만원에 4만3000원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수요가 줄어 이마저도 유지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 jsham@fnnews.com 함종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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