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사막’으로 유명한 네바다 주(州) 남쪽 끝에 자리잡은 도시인 라스베이거스. 이곳은 미국 서부 개척 역사에서 북미 대륙 횡단 증기열차가 잠시 머무르는 기착지였다. 사막 지대를 달리던 증기열차는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잠시 라스베이거스에서 멈춰 물을 갈아 주었고, 승객들은 휴식을 취했다.
자연스럽게 열차에서 내린 이들을 위한 휴식시설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그 뒤로 ‘몰몬’ 교도들이 라스베이거스를 개척하면서 현재의 도시로 발전했다.
하나둘씩 늘어난 고급 호텔들과 쇼핑시설들로 인해 지금의 라스베이거스에선 따가운 햇살을 제외한다면 사막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한낮의 라스베이거스는 세계 10대 호텔들에 머물고 있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벼 오히려 번잡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 북동쪽으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주립공원 ‘밸리 오브 파이어(Valley of Fire·불의 계곡)’에 가보면 이 도시가 사막이었음을 금세 깨닫게 된다.
일출과 일몰 때면 온통 불타는 대지처럼 보이는 계곡에는 라스베이거스 쪽으로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가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사막에는 고대 인디언들이 남겨 놓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벽화들이 여기저기 남겨져, 황량한 황무지에 도전한 이들이 캘리포니아 금광을 찾아 떠난 카우보이들만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글·사진=김경수기자 rainman@fnnews.com
라스베이거스는 사막에 세워진 신기루 같은 도시다. 한 여름에는 40도까지 치솟는 이 건조한 도시가 미국의 주요 관광도시가 됐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라스베이거스가 최고의 관광지가 된 이유를 대도시인 로스엔젤스와 국립공원 '그랜드캐니언'에서 가까운 지리적인 조건에서 찾기도 하지만 시원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봤다.
■진화하는 라스베이거스
온 나라가 사행성 게임인 '바다 이야기'로 어수선한 가운데 카지노의 원류지라고 할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는 여행길은 처음부터 그리 가볍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말을 떠올리고 나서야, 이달중으로 직항을 개설한다는 대한항공의 항공편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또 '어떤 마력이 사막에 이처럼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해결하고픈 심정도 한구석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라스베이거스야 말로 가장 미국적인 자본주의 도시라면서 한번쯤 가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서울에서 12시간에 가까운 비행을 마친 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내리면 일단 수많은 카지노 기계들로 인해 놀라게 된다.
공항 로비부터 시작되는 카지노 기계들은 마치 '이곳부터 라스베이거스입니다'라는 말을 하려는 듯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렇지만 라스베이거스 도심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최고급 호텔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은 서로 자기 숙소가 최고라고 뽐내는 듯 이색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 호텔간의 경쟁이 너무 심해서 일부 호텔들은 규모의 경쟁을 하다가 부도까지 맞는 일마저 벌어졌다고 한다.
만약 호텔 예약을 미리 하지 않고 라스베이거스에 들어갔다면, 길거리에 즐비한 수많은 특급호텔 중에서 숙소를 정하느라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호텔들은 각기 제 나름대로의 이색적인 테마에 따라 최대한 개성을 살렸다. 이탈리아식 '베네치안' 호텔안에는 베니스에서나 볼 수 있는 곤돌라가 호텔 안팎에서 관광객들을 태우고 둥실 떠다닌다.
프랑스를 연상하는 '파리스' 호텔은 실제 크기에 거의 가까운 에펠탑과 개선문이 들어 서 있다. 로마제국을 연상케 하는 '시저스 팰리스' 호텔은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물을 본뜬 것이 특색이다. 이슬람 사원을 본떠서 만든 '알라딘' 호텔은 멋진 모스크 양식으로 꾸며졌다.
호텔들은 겉모습만 뻔지르르 하지 않다. 1년 내내 호텔들 내부에서는 '공짜 테마쇼'를 열어서 관광객을 유치한다. 공짜 쇼라고 하지만, 관광객의 눈에는 수백불을 줘야 할 것 같은 '빅쇼'처럼 여겨질 정도로 화려하다.
북이탈리아의 한 지역의 이름을 따온 '벨라지오' 호텔은 분수 쇼로 유명하다. 수백 미터에 이르는 분수 쇼는 음악에 따라서 물줄기가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면서 움직이는 모습이 압권이다.
보물섬의 뜻을 가진 '트래져 아일랜드' 호텔에서는 매일 밤 인어와 해적들간의 해상전투가 야외 특설무대에서 펼쳐진다. 포격전에서는 실감나게 화염과 대포를 터트리고, 마지막에 침몰하는 해적선은 상상을 초월한다. 브라질을 연상케 하는 리오 호텔에서는 호텔 천장에 붙은 무대들이 떠다니면서 공연을 하는데, 화려한 삼바 복장의 무희들이 공중에서 육감적인 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옛 시가지의 '프리먼트' 거리에서는 매일 밤 화려한 조명쇼가 열린다. 이 조명 쇼는 한국기업인 'LG CNS'에서 시설 설치와 운영보수를 하고 있어서 뿌듯함을 전해준다. 이들 공짜 '빅 쇼'들은 하루에 수차례씩 열려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권투 및 격투기 세계 챔피언 경기도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동안 많이 열려서 관광객들을 끌어 모았다. 한국인으로는 김득구 선수가 시저즈 팰리스에서 경기를 하다가 사망한 아픈 기억도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라지' 호텔에서 열린 K-1 월드그랑프리 수퍼파이트 경기에 최홍만 선수가 출전해 승리한 기쁜 일도 있다.
세계 최고의 공연도 역시 호텔안에서 열린다. 만달레이 베이 호텔에서는 유명가수들의 쇼가 수년째 계속된다. 세계 최고의 디바인 셀린디온이 2년 장기공연에 들어갔고, 엘튼존과 토니블랙스톤도 이곳에서 공연을 자주 갖는다. 뿐만 아니라 베네시안 호텔에선 '오페라의 유령'을, 미라지 호텔에서는 '비틀스 인 러브' 같은 정상급 공연을 열고 있다.
수많은 쇼와 공연을 즐기다 보면 이곳이 카지노의 도시인지 쇼의 도시인지 분간하기 힘들게 된다.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의 도시로 시작했지만, 쇼와 테마의 도시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글·사진=김경수기자 rainman@fnnews.com
■웨딩과 박람회의 도시로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와 전시회도 끊임없이 개발했다.
특히 라스베이거스는 결혼법이 간단해서 결혼을 목적으로 미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이곳을 찾아온다. 한해 평균 15만회가 넘는 결혼식이 이루어져 일명 '웨딩 시티'라고도 불린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의 내부에는 어딜 가더라도 웨딩채플이 있으며, 언제라도 결혼을 할 수 있다. 대신 이혼율도 가장 높은 도시가 라스베이거스라고 한다.
라스베이거스의 대부분의 호텔들은 전시장을 내부에 갖추고 있어서 기업인들도 많이 찾는다. 중장비 박람회부터 결혼박람회까지 모든 종류의 컨벤션 센터가 호텔 내에 조성돼 있다. 대부분의 컨벤션 센터들은 각각 호텔의 특색에 맞춰 설치됐다. 파리스 호텔의 경우 컨벤션 센터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그대로 본떠서 만들기도 했다. 또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는 중장비 전시 등이 가능한 대형 전시장으로 유명하다. 베네시안 호텔의 컨벤션 센터는 이탈리아식 궁전을 연상케 하며 중장비뿐만 아니라 소규모 박람회도 완벽하게 치러낸다. 라스베이거스관광청. (02)777-9282
/김경수기자
■사진설명=라스베이거스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불의 계곡'은 1억5000만년의 세월에 걸쳐 조성된 석회암 사막이 펼쳐져 있다. 이 계곡은 고대시대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첫번째 사진) 분지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리오' 호텔 51층에서 바라본 밤 풍경은 마치 '우주 도시'를 보는 듯하다.(두번째 사진) 라스베이거스 대표거리인 '프리먼트'에 가보면 총 길이 420m의 돔 형식의 천장에서 펼쳐지는 LED 영상쇼를 매일 밤 접할 수 있다. 이 LED 설비와 영상연출은 한국 기업인 LG 계열사에서 맡았다.(세번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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