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세간의 주요 관심사는 '위험관리'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은 겉보기에 화려한 시스템도 '한 방이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내년부터 국내 은행에 도입되는 바젤Ⅱ는 위험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 같은 시대흐름에 맞춘 금융기관의 운영·관리 메뉴얼이다.
금융기관의 '발생 가능한' 모든 기대손실을 포괄적으로 규정해 충당금을 쌓도록 했고 대출위험도도 차별화했다. 일괄 적용되던 리스크 관리체계가 대전환된다는 의미다.
“바젤Ⅱ는 새로운 금융 수능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은행 감독의 새로운 국제 기준인 바젤Ⅱ를 이렇게 정의했다.
수학능력 시험의 핵심 키워드는 종합적인 사고력이다.
사고력이란 말 그대로 논리적이고 정확하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또 사고력은 생각하는 과정 없이 주어진 내용을 외우는 단순 암기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생각하는 능력이 뛰어날 수록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바젤Ⅱ란 무엇인가
바젤Ⅱ의 정식 명칭은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가 만든 새로운 금융기관 자기자본 규제에 관한 국제적 통일기준이다.
바젤Ⅰ으로 알려진 BIS협약은 지난 88년 은행 감독 기준으로 국내에 도입됐고 바젤Ⅱ는 바젤Ⅰ의 업그레이드판이다.
기존 BIS협약이 학력고사라고 한다면 바젤Ⅱ는 수능에 비교된다.
기존 BIS협약은 대출 리스크를 세분화하지 못하고 금융감독 당국의 지침에 따라 일괄적으로 적용해 BIS비율을 산정했다. 삼성전자에 돈을 빌려 줬던, 신생 벤처기업에 돈을 빌려줬던 대출금액의 100%를 위험가중자산으로 잡았다.
물론 자산의 종류에 따라 위험가중치에 차이는 있다. 현금과 중앙정부 및 중앙은행에 대한 채권은 위험가중치가 0%였고 정부투자 기관 등 국내 공공기관에 대한 채권은 10%, 주택담보대출 등은 50%이다.
반면 바젤Ⅱ는 모든 대출건마다 신용도를 측정해 대출금액을 0%에서부터 1250%까지 위험가중자산을 달리 계상해야 한다.
기업 대출의 경우 기업표준신용등급이 최상위인 ‘AAA∼AA-’인 경우의 위험가중치는 20%이지만 ‘BB- 미만’이었을 때는 150%까지 올라간다.
이 같은 차이는 정부와 중앙은행, 공공기관 등도 마찬가지다. 해당 국가의 국가 표준신용등급에 따라 위험가중치가 다르다는 의미다.
BIS비율은 자기자본을 위험가중 자산으로 나눠 산정되기 때문에 위험가중 자산의 크기는 BIS비율 산출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즉 똑같은 금액을 대출해 자산을 늘렸다고 하더라도 금융기관이 좀더 종합적으로 판단해 신용도가 뛰어난 기업에 대출해 주면 그만큼 BIS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은 92년 말부터 시중 은행의 BIS비율을 8% 이상 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투명성·자율성 강화
바젤Ⅱ와 기존 BIS협약과의 차이점은 투명성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바젤Ⅱ에 따르면 금융기관이 리스크 및 자본적정성 관련 정보를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금융기관이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다면 투자자들의 투자척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보는 해외 자본 조달 등에서도 똑같이 활용된다. 투명성이 뛰어나면 그만큼 싼 비용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감독 당국의 점검 부문도 바젤Ⅱ에 새로 포함됐다. 감독 당국은 금융기관이 영업과 관련된 모든 중요 리스크를 감안해 자본적정성을 인식하고 측정·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췄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또 필요한 때 자기자본 확충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 리스크에는 신용, 시장, 운영 리스크뿐만 아니라 금리, 유동성 등도 포함돼 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악화됐을 때 감독 당국이 조기에 개입할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주택담보대출과 같이 단기간에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는 대출상품은 또 생길 경우 은행이 자체적으로 편중 리스크를 평가해 보유 자기자본의 적정성을 파악하고 감독당국이 이를 점검하는 이중의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비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바젤Ⅱ가 시행되면 금융기관의 자율성도 강화된다.
BIS비율을 산정할 때 은행 자율적으로 산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부 등급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내부 등급법으로 BIS비율을 산정하려는 금융기관은 적용하기 6개월 이전까지 금감원에 승인신청을 해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바젤Ⅱ가 시행되면 은행은 우량한 기업에는 대출금리 인하 등 차별화된 영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 입장에서도 자신의 신용을 알아주고 이에 맞춰 대우를 해 주는 은행을 찾을 수밖에 없어 금융권 간의 치열한 경쟁이 촉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영국 등 유럽연합 국가와 캐나다. 홍콩, 일본 등은 올해부터 바젤Ⅱ를 도입했고 한국과 호주, 싱가포르는 내년부터 도입한다.
다만 한국은 부도발생 후 발생하는 실질적 손실까지 은행 자체적으로 추정해 BIS비율을 산정하는 ‘고급 내부 등급법’은 2009년부터 도입한다.
/mirror@fnnews.com 김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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