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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시네마] 레지던트 이블

파이낸셜뉴스

최근 세번째 시리즈를 개봉한 SF영화 ‘레지던트 이블’에는 ‘앨리스’라는 이름의 초인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앨리스는 자신의 키보다 높은 담장을 가뿐이 뛰어 넘고, 총알도 피하는 반사 신경을 지녔는가 하면 몸의 상처도 금세 치유된다. 또한 염력(念力)으로 불길을 막는 방어막을 치거나 적을 간단히 해치우기도 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살아난 이후에는 전보다 더욱 강해지는 그야말로 다이하드(die-hard)한 주인공이다.

슈퍼맨에서부터 X-맨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 영화에는 수많은 초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외계인인 슈퍼맨이나 돌연변이인 X-맨과 달리 앨리스는 보통 인간에서 초인으로 탈바꿈한 인물이다. 즉 인위적으로 창조된 초인이다. 거대 제약회사인 엄브렐러사의 지하 비밀 연구소 보안 책임자였던 그는 실험 중이던 T-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개선시킬 목적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개발된 T-바이러스는 감염된 사람을 살아 있는 시체인 ‘좀비’로 만드는 치명적 결함이 있지만 앨리스의 신체는 이 바이러스에 적응하면서 그의 신체 능력은 물론 정신적 능력까지 비약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레지던트 이블’은 인간을 ‘실험용 쥐’로 여기는 사악한 기업 엄브렐러사와 이들의 음모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한 앨리스의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유전자 조작을 거친 바이러스를 이용해 앨리스와 같은 초인을 만들어 낸다는 설정이 그저 SF영화 속의 이야기일 뿐일까? 지난주 한 과학 잡지에는 일본 과학자들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천적(天敵) 앞에서도 겁을 먹지 않는 쥐를 ‘만들어 냈다’는 소식이 실렸다. 그 전에는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슈퍼 쥐’를 만들어 낸 미국 과학자들의 소식도 있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쥐의 정신능력과 신체능력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냈다. 이는 이와 같은 기술을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영화 속 앨리스가 가까운 미래의 현실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의 정신적·신체적 능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세계는 인류의 파멸을 의미할까? 진화를 의미할까? 영화 ‘레지던트 이블’ 역시 이 두 가지 길을 보여주고 있다. T-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로 변한 인간들이 가득 찬 세상은 굉장히 암울하지만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앨리스의 존재는 인류 진화의 한 양상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T-바이러스 개발자이자 ‘앨리스 프로그램’ 책임자인 아이작 박사는 ‘앨리스가 인류의 미래’라고 믿는 인물이다.

흔히 루게릭(Lou Gehrig)병이라 불리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은 근육을 통제하는 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현재까지 완전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지만 근육의 성장과 복원을 촉진하는 유사인슐린 성장 요소(IGF-1)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법이 개발 중이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IGF-1 유전자 치료는 루게릭병을 치유함은 물론 정상적인 근육의 기능을 크게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알츠하이머병은 기억력과 사고력을 저하시켜 사람의 정신을 서서히 갉아 먹는다. 이 역시 현재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최근에는 뉴런과 뉴런 사이의 시냅스에 존재하는 CREB 단백질을 활성화시키는 유전자를 투여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질병 치료를 위한 유전자 기술은 원칙적으로 정상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 가령, 루게릭병을 치료하는 IGF-1 유전자와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CREB 활성화 유전자를 정상인에게 투여하면 이 사람의 근육운동 능력과 기억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쉽게 말해 인간은 유전자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유전공학 기술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고정 불변성에 대한 믿음을 흔들면서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오늘날에는 당연히 받아들여지거나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과학적 발견과 기술이 발견 당시에는 기존의 사상과 인식의 한계에 부딪혀 극심한 반발을 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진화론을 제창한 다윈에게 쏟아진 반발과 비난, ‘자연의 섭리에 반한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던 천연두 백신과 마취술 등을 생각해 보라.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이 가져 올 인간 실존과 정체성의 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자연의 섭리’ 운운하며 반대하기 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고 옳은 선택인지 고민해야 한다.

-㈜엘림에듀 논술연구소 박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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