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은행

한은서 풀린 돈 22兆 효과는?

김주형 기자
파이낸셜뉴스

시중자금이 꽁꽁 묶인 채 돌지 않고 있어 기업들이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하루하루 피를 말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22조원이라는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음에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은행의 지나친 '몸 사리기' 영향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은행들은 '돈가뭄'의 원인이 되고 있는 △단기자금 집중 △소극적인 옥석 가리기 △대기업·우량기업 위주 대출 등 문제점들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막대한 자금 풀었는데 효과는(?)

한은은 작년 10월 초만 해도 5.25%였던 기준금리를 올해 1월 초 최저 수준인 2.5%까지 끌어내리는 한은 역사상 유례없는 조치를 내렸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공급한 원화만 22조원에 달한다.

당초 계획했던 22조7000억원이 대부분 풀린 셈이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하다.

중소기업 대출은 오히려 줄었다. 국내 시중은행의 지난해 12월 말 중소기업대출은 전월 대비 3조8000억원 줄어들었다.

국민·우리·신한·하나·기업·외환 등 6개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지난달 29일 현재 308조2039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0.7%(2조214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작년 12월 5조2611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특히 최근에는 중기대출 연체율이 급등하면서 리스크 관리에 나선 은행들이 대출을 더욱 옥죄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국내 은행의 전체 원화대출 연체율은 1.08%로 2007년 말 대비 0.34%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기업대출 연체율이 1.46%로 전년 말 대비 0.54%포인트나 급등한 탓인데 주로 중소기업의 연체율 상승에 기인했다.

중소기업의 대출채권 연체율은 2007년 말 1.00%에서 작년 3월 말 1.29%, 9월 말 1.50%, 12월 말 1.70%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단기자금·우량기업 돈 넘쳐

반면 대기업이나 우량 중소기업에는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기업은행을 제외한 5개 시중은행의 대기업대출은 지난달 29일 현재 60조4407억원으로 5.1%(2조9094억원) 증가했다.

단지자금시장에도 돈이 넘쳐나고 있다.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는 지난 한달간 20조원 이상 유입됐고 MMF 설정액은 100조원을 훌쩍 뛰어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은행이 높은 이자를 주는 단기상품으로 몰리고 있어서다. 한은을 통해 저리로 공급받은 돈을 대출로 운용하지 않고 MMF에 넣어 두고 있는 셈이다.

한은이 2.5%의 금리로 환매조건부채권(RP)을 사주면 3%대 이자를 주는 MMF로 예치하는 것인데 지난달 9일 시행된 한은의 정례 RP 매각 입찰에는 사상 최대인 80조원이 몰렸다.

■기업 옥석 가리기 '미적'

이러한 현상은 기업 '옥석 가리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등 구조조정 부진에 따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옥석 가리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기업에 대한 신용위험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에 대출이 막힐 수밖에 없다는 것. 은행들은 최근 111개 건설·조선사에 대해 신용위험을 평가해 2곳은 퇴출, 14곳은 워크아웃 대상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고 있다"며"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실기업에 대한 리스크가 커 은행들이 중기대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2008회계연도 재무제표가 확정되는 오는 3월부터 전체 거래기업에 대한 정기 신용위험평가에 나선다. 6월까지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에 나설 참이지만 이 역시 은행들이 구조조정에 대한 1차적인 부실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막힌 자금시장을 뚫기 위해 은행의 자본확충펀드에 대한 기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경영권 간섭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대응책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자본확충펀드 지원을 신청한 은행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를 사들여 자본을 늘려줄 방침이다. 은행들은 늘어난 자본으로 대출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면 차후 경영권에 간섭을 받게 되고 이는 결국 은행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자본확충펀드 지원 신청을 꺼리고 있다. 실제 자본확충펀드 1차 신청은 정부 산하 은행 위주로 이뤄졌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은행들에는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는 은행에 대해 경영권 간섭이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toadk@fnnews.com 김주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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