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입국의 그늘,밀수 밀화] <29> 잠수복에 덜미 잡힌 금괴밀수
지난 1970년을 전후해 부산 영도 청학동 해변에는 해녀가 낀 밀수품운반조직이 활동했다. 이들 조직은 특별히 건조한 5t짜리 소형 선박에 3∼4명의 해녀를 태우고 마치 자맥질 하는 조업선으로 위장, 주로 야간을 틈타 움직였다.
부두에 접안한 화물선에서 밀수품을 빼내려면 세관 감시초소를 통과해야 하기에 어려움이 많고 잡힐 확률도 높았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바로 해녀를 동원한 밀수품 운반이었다. 이들은 부산항 묘박지(錨泊地)에서 사전 밀약한 계획에 따라 신호불빛을 주고받으며 화물선에 접근, 밀수품을 옮겨 싣고 뭍으로 날랐다. 어쩌다 옮겨 싣다 들킬 경우 현품을 없애기 위해 먼저 밀수품을 하나 둘 바다에 빠뜨린 뒤 뒤따라 해녀까지 바다 속으로 잠수해 줄행랑을 하는 바람에 수사관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언젠가 해녀들이 그곳에 슬쩍 나타나 조업을 하는 체하며 밀수품을 건져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밀수형태에 대비하기 위해 인력을 보강한 것이 세관 스쿠버다이버였다. 제1호 세관다이버는 지난 1969년 부산세관에 채용된 이종원씨(68·부산잠수센터 대표)로 그는 해군 해난구조대(SSU) 출신 베테랑이었다. 지금은 레저시대를 맞아 스쿠버다이버가 보편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보기드문 특수기능자였다.
초창기에 그는 밀수정보가 있는 우범 선박을 검색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불려 다녔다. 특히 밀수품 은닉이 용이한 식수탱크나 기름탱크에 잠수복차림으로 들어가 밀수품을 찾을 때면 구슬땀이 맺혔다. 그에게 있어 잠수복은 세관 관복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제복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런 잠수복이 빌미가 돼 밀수범이 잡힌 사건이 하나 있다.
지난 1974년 4월 경남 충무항(지금의 통영항)에 막 입항수속을 마친 50t짜리 활선어 수출선 해광호에 세관 수사요원들이 올라 분주히 움직였다. 그전부터 이 배는 다른 활선어 수출선에 없는 특이한 사항이 하나 발견돼 관찰 대상이 됐다. 다름 아닌 잠수복 한 벌. 그들은 스크루에 그물이 걸릴 것을 염려해 비치해 놓은 것이라고 우겼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왜냐하면 항해코스가 거의 비슷한 다른 활선어 수출선에도 이런 잠수복이 비치돼 있어야 하는데 다른 배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관 스쿠버다이버가 해광호 선저 부분을 정밀검색해 보기로 했던 것. 약 1시간 동안 배 밑바닥을 훑던 다이버가 드디어 물위에 머리를 내밀면서 긴장된 모습으로 말했다. “키(舵)가! 아무래도 키가 이상해요.”
즉시 배를 육지에 올려 키 부분을 유심히 살폈다. 선체 산화방지용 아연판을 뜯어내자 철제로 된 키 공간에 비창(秘倉)이 있었고 그곳에 금괴 10㎏이 은닉돼 있었다. 잠수복은 바로 이 금괴를 은닉하거나 들어내기 위해 구비해 놓은 귀중한 장비였던 것이다.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
■사진설명=금괴 은닉장소로 둔갑한 배 조타장치의 주요 부분인 키(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