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태국 진출 포기한 산은의 딜레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2.02 16:41

수정 2010.02.02 16:41

산업은행이 태국 시암시티은행(SGIB) 인수를 포기했다. SGIB를 동남아 금융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아 장차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기업투자은행(CIB)으로 도약하려던 산은의 원대한 계획도 출발부터 어그러졌다.

사실 산은은 지금 애매한 입장이다. 민영화 스케줄을 짤 때만 해도 투자은행(IB)은 금융 선진화의 총아로 각광을 받았다. 우리도 한국형 골드만삭스를 키워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자본시장통합법이 제정됐고 산은이 한국형 IB를 선도할 적임자로 꼽혔다. 이후 정책금융공사가 분리돼 나갔고 내년에 국내 증시, 내후년에 해외 증시에 상장한다는 로드맵도 마련됐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IB는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몰락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을 엄격히 분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경우 은행지주회사 아래 투자은행을 자회사로 두는 월가의 기업투자은행(CIB) 방식도 규제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CIB를 롤 모델로 삼았던 산은으로선 갑자기 방향타를 잃은 꼴이다. 산은이 태국 SGIB 인수를 포기한 데는 이 같은 고민이 있다.

산은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다. 기존 전략을 고수한다면 소매금융 강화를 위해 국내외 상업은행 인수에 다시 나서야 한다. 그러나 한물 간 CIB 모델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투자은행 전업으로 바꾸기도 쉽지 않다. 투자은행의 성패는 시장에서 자기 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 리스크를 관리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국제 기준에서 산은은 아직 이런 능력이 부족하다.

정부는 산은의 민영화 전략과 로드맵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민영화라는 큰 틀은 살리되 달라진 국제금융 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어떤 금융기관도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디스는 작년 11월 “정부 지분율이 50% 이하로 내려가기 전까지 산은이 취약한 펀더멘털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산은과 한국의 금융 시스템은 둘 다 불안정을 경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취약한 펀더멘털이란 주로 자금 조달 능력과 자산의 질을 뜻한다.
이 경고를 허투로 들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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