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디밴드의 리더가 자신의 노래가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된 것과 관련, 여성가족부의 심의에 대해 부당함을 지적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디밴드 ‘감성밴드 여우비’의 리더 정근영씨는 지난 15일 한 포털 게시판에 ‘여성가족부의 어이없는 행패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정씨는 글을 통해 “가사에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됐다”며 “‘술’이 들어가는 수 많은 다른 곡들은 유해매체로 지정되지 않았는데 굳이 왜 내 노래만 문제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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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밴드 여우비’의 리더 정근영 씨 |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환경과 김종문 주무관은 “가사에 술이 들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유해매체로 규정짓는 것은 아니다”며 “정씨의 노래는 위원회에서 ‘그대 모습을 비춰 보는데 굳이 술을 마셔야 하는지’를 문제삼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음반의 유해 여부는 미디어전문가, 청소년전문가, 법률가 등으로 구성된 음반심의위원회가 결정한다.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은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으로 규정돼있다. 정씨의 노래는 ‘청소년유해약물 등의 효능 및 제조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그 복용·제조 및 사용을 조장하거나 이를 매개하는 것’ 이라는 항목에 저촉됐다는게 여성가족부의 설명이다. 술은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청소년 유해 약물로 규정돼있다.
하지만 이같은 심의 기준이 너무 모호해 매번 논란이 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똑같이 가사에 술이 들어가도 어떤 노래는 유해매체가 되고 어떤 노래는 유해매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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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은 정씨의 노래가사. 여성가족부는 밑줄 친 부분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
실제로 남진의 빈잔, 김동률의 취중진담, 임창정의 소주 한잔 등의 노래에도 술이 등장하지만 정씨의 노래와 달리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분류되지 않았다. 임창정의 ‘술이 한 잔 생각나는 밤 같이 있는 것 같아요’란 가사는 유해하지 않아도 정씨의 ‘술 한잔에 그대 모습 비춰 볼게요’란 가사는 유해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지난 달엔 신인그룹 X-5의 ‘판타지’란 곡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았다. ‘환상 같은 밤에 파티 인 더 클럽’이라는 가사가 문제가 됐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파티를 주제로 한 슈퍼주니어의 ‘파자마 파티’나 투애니원의 ‘렛츠 고 파티’ 등은 유해매체로 지정되지 않았다. 해당 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여성가족부에 심의에 대한 소견서를 제출해놓은 상태다”라고 전했다.
이번 논란의 중심이 된 감성밴드 여우비의 정씨는 “유해매체 심의 기준이라는게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걸면 귀걸이인 것 같다”며 애매모호한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기준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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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기준 |
애매한 심의 기준은 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기준에 어떤 식으로 적용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제작을 하면서부터 자체적으로 심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아이돌 가수 X-5를 배출한 오픈월드 엔터테이먼트의 한 관계자는 “유해매체 지정 기준이 애매해 제작단계에서부터 심의를 걱정하며 가사를 바꿔가며 만들고 있다”며 “그렇게 만들어도 이번과 같이 에상치 못한 부분에서 심의에 걸리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한 기획사의 대표 역시 “제작하는 직원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표현이 심의에 걸릴지 몰라 자체 심의를 하는 상황”이라며 “그런 과정에서 점점 곡의 느낌이 약해진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많이 토로한다”고 전했다.
성시경, 보아, 나윤권 등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아이플레이뮤직의 원창준 원장은 “가사를 쓴다는 것은 은유적 표현 등을 고려해야하는 등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인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심의에 걸리게 돼 표현을 바꾸게 되면 제작자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매번 발생하는 심의논란을 피하기 위해선 전문가들 뿐 아니라 일반인이나 관련업계 종사자 등 대중의 감수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로 심의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umw@fnnews.com 엄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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