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위로, 그리고 전율까지. ‘안녕하지 못 했던’ 지난해 말, 안녕을 고하고 떠난 이에서 출발한 ‘변호인’은 관객들에게 127분간 안녕의 약속을 보여주며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온기는 열풍으로 이어졌다.
개봉 전 제작보고회에서 주연배우 송강호가 “우리들의 가장 큰 변호인은 관객들”이라고 한 말에 관객들은 열렬히 화답했다. 지난해 12월18일 전야개봉 후 29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을 내주지 않은 ‘변호인’은 19일 새벽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전야개봉한 지 33일 만이었다.
◇송변은 부르짖었고 관객은 들었다
‘변호인’은 1981년 부산의 속물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이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 분)의 재판 변호를 맡기로 하면서 다섯 번의 공판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영화의 출발점이 된 배경은 1981년 제5공화국 초기 부산에서 일어난 용공(容共) 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이다. 주인공 송우석의 모티브는 당시 부림사건에서 무료 변론을 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극 중 변호사 송우석은 국가권력의 입맛에 맞게 죄가 조작되고 인권이 침해되는 장면을 목격하며 가장 상식적인 정의를 외친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지켜지지 않고 송우석은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부르짖는다. 영화는 관객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동시에 지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곽영진 영화평론가는 “‘변호인’의 메시지가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백성이 곧 왕이라는 광해의 말(‘광해, 왕이 된 남자’), 국가가 곧 국민이라는 송우석의 호소와 절규에 관객들은 공감한다”며 “다수 관객들은 현재 민주주의와 인권이 1980년대보다 나아지긴 했으나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고 느끼기에 영화를 보며 현실을 반추한다”고 말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변호인’에는 현실사회와 달리 정의가 제자리에 돌아간다는 통쾌함이 있다. 영화는 국가, 시스템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들의 분노를 직면하면서 시스템 안에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며 “또 이 작품은 기존 실화 영화처럼 단순히 사건 묘사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기존 권력층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고 바라봤다.
송우석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동호 역의 오달수 역시 언론시사회 당시 “198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 ‘변호인’을 보면 가슴이 아플 것이고 겪지 못한 이들은 통쾌함을 느낄 것”이라고 영화가 주는 일침을 높이 샀다.
‘변호인’ 관객들은 작품에 크게 공감하며 재관람도 이어가고 있다. 맥스무비 영화연구소에 따르면 ‘변호인’은 지난 9일 기준으로 평균 재관람률 7.17%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5위이며 2009년 말 개봉한 ‘아바타’ 이후 재관람률이 7%를 넘어선 최초 작품이다.
곽 평론가는 “‘변호인’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권력의 주인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며 위로한다. 자신의 울분을 표현해주고 위로도 해주기에 여운이 짙게 남는 작품”이라고 재관람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배경을 설명했다.
◇노무현과 송우석 사이, 영리한 간극
‘변호인’은 영화 개봉, 심지어 시사회를 열기 전부터 숱한 공격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였기 때문이다.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들은 포털사이트에서 ‘변호인’에 터무니없이 낮은 별점을 매기며 작품을 폄하했다. 오히려 개봉 후 별점은 높아졌다.
뚜껑을 연 ‘변호인’은 편향된 정치적 색깔이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영화는 단지 변하지 않는 상식을 풀었을 뿐이었다.
곽 평론가는 “돈 없고 백 없는 송우석은 서민적이며 법의 권력을 누리지 않고 횡포와 사회 부정의에 저항한다. 노 전 대통령의 일면을 다뤘으나 소재와 인물을 확장시켜 전기적인 요소를 뛰어넘었다”고 이야기했다. 친서민적인 주인공의 모습에 퍽퍽하고 어려운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이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심 평론가는 “영화 속 송우석은 노 전 대통령에게 천착되지도 않고 가상도 아닌 인물이다. 정치적인 논란을 비껴가면서 노 전 대통령을 영리하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송강호의 역대급 열연
송강호는 지난해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한해 2000만 관객 돌파라는 신기록 배우가 됐다. 사람 냄새나고 열정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변호를 폭발시키는 송우석이라는 인물은 송강호이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양우석 감독은 송강호를 두고 “불세출의 배우를 넘어서서 참 위대한 예인”이라고 할 정도였다.
송강호는 ‘변호인’ 개봉 전 가진 인터뷰에서 변론 장면을 위해 처음으로 연기 연습까지 자처했다고 밝혔다. 송강호는 “다섯 번의 공판이 입체적으로 다 다른 느낌을 줘야 해서 촬영 5일 전부터 혼자 연습을 많이 했다. 공판 장면은 철저하게 감정 리듬을 계산해 촬영했다”고 이번 작품에서 연기에 유난히 공을 기울였음을 시사했다.
심 평론가는 “송강호 연기는 무척 뛰어나다.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1000만 관객이 들 수 없을 것”이라며 “영화 속 송강호에겐 삶을 사랑하며 일상을 영위하는 인간적 느낌과 어려움을 뛰어넘고 각성하는 영웅의 모습,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순수함이 느껴진다”고 칭찬했다.
곽 평론가는 “‘변호인’ 흥행에서 절반의 비중을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연기”라며 “송강호의 위대한 연기를 중심으로 조연들의 연기까지 힘을 잘 발휘했다”고 짚어줬다.
송강호가 ‘변호인’으로 역대 흥행 박스오피스 2위인 ‘괴물’(누적관객수 1301만여명)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서울=뉴스1) 유기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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