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1·①) 기업에도 정부에도 의원님들은 ‘슈퍼 甲’
#. 지난해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A대기업의 국회 담당자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B의원실을 찾았다.
해당 의원실에서 자사 환경관리설비에 대한 질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질의서를 미리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B의원실에서는 지역구 내 지인이 운영하는 시설에 헬스·운동기구를 협찬해 달라고 요구했다.
가격만 해도 수천만원에 이르는 부담 탓에 결국 담당자는 상부에 사정을 보고한 뒤 질의서 받는 것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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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입법권과 감사권의 사정거리에 있는 기업들은 한사코 실명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당연한 일이다.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앞선 A기업도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국감에서 피해를 보게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들이 부정과 부패를 숨기고 있으니 제 발 저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의원들이 기업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 정당한 비판이라면 굳이 '슈퍼갑(甲)의 횡포'라는 말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트집잡기, 군기잡기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국회와 기업, 억지 '상부상조'
정부와 연계된 사업을 진행하는 C기업은 국회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 편성되는 예산 규모에 따라 이 회사의 매출이 사실상 결정되기 때문이다. C기업 국회 담당자가 하루가 멀다 하고 해당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찾아 다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의원실을 드나들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했다. C기업 관계자는 4일 "국회의원과는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며 "국회의원이 직접 어떤 사안을 부탁하면 회사 입장에서 큰 부담이 돼도 거절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지역구에 투자를 요청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앞선 사례와 같이 의원들의 지인을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와 기업 사이에 모종의 거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감 증인채택에서도 거래가 숨어 있다.
실제 일부 기업은 자사 직원들에게 국감 시기에 맞춰 해당 상임위 위원장과 소속 위원들에게 후원금을 낼 것을 독촉했다. 그 덕분에 해당 기업 사장은 당시 국감 증인채택에서 제외돼 후원금을 지원한 대가가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국회의원들이 기업에 요구하는 민원이 지역구 전반에 걸친 '거시적'인 것이 아닌, 일부 특정인을 위한 '미시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자칫 이권 개입 등 심각한 사안으로 번질 수 있다.
기업은 각종 법안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 규제를 받고 있고, 국회는 정부와 소속 기관을 감독·규제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힘의 연결고리는 늘 부적절한 거래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국회의원의 일상적 활동은 모두 당선을 위한 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지역 유권자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치적 쌓기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지역 민원 해결을 위해 소속 당론에 배치되는 행동도 개의치 않는다. 시의원이나 구의원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지역 민원 해결사를 자임한다. 의원들이 해결할 민원이 관련 기업에 자연스레 떠넘겨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한 모 의원은 "여의도 국회에 있을 때의 나 자신과 주말에 지역구 활동을 하는 나는 180도 다른 사람"이라며 "지역 민원 해결을 위해 소관 부처 산하기관 취업 의뢰는 물론 예산 확보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에도 '갑질'
삼권분립제. 우리나라는 국가의 권력을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의 3권으로 나눠 상호 견제하면서 권력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입법부의 고유 권한인 입법권과 예산안 심의.확정권이 오히려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주어진 권한을 행정부를 견제하는 데 사용하지 못하고 정치적 공격의 수단으로 삼는 의원들의 자질은 늘 문제가 돼 왔다.
대표적인 예로 대정부질문의 경우 각종 현안에 대한 질의응답보다는 해당 부처 수장을 향한 훈계식 호통이나 의원의 일방적인 자기 주장만 펼치다 끝나는 사례가 더 많다.
국회의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질의할 때 장관의 답변을 듣고 추가 질의를 하는 식으로 주고받기식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 정상이다. 이때 장관이 국회의원의 지적을 수긍하거나 사과하면 의원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관이 항변을 하거나 의원의 논리가 틀렸다고 지적할 경우 의원이 당황하는 모습이 TV에 중계되면 크게 위신이 깎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하는 의원들의 '비기(秘技)'가 바로 호통치기다.
대정부 질문서를 작성했던 한 보좌관은 "의원이 질의할 때 어느 정도 예정된 시나리오를 짜 놓고 총리나 장관의 답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유형별 질문을 두세개 정도 추가한다"며 "만약 예상 밖 답변이 나오거나 반박이 제기될 경우에는 말을 중간에 자르거나 '자세가 그게 뭡니까'란 식으로 면박을 주는 것으로 대처하는 것은 하나의 요령"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국회가 상하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예산안 심의.확정권을 쥐고 있어서다. 각 부처가 제출한 새해 예산안은 국회로 넘어와 계수조정된다. 이때 신규 사업 추진비 등을 확보하려면 소관 의원들에게 '읍소'할 수밖에 없는 게 행정부의 실정이다.
단적인 예로 국회 정무위 야당 의원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가보훈처의 안보교육용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 자료제작 협찬사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으나 보훈처장은 끝까지 거부했다. 협찬자 본인이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정무위는 연말 국가보훈처 예산안 심의에서 안보교육예산 15%를 삭감 의결했다.
이른바 '괘씸죄'가 적용된 것이다.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국정감사에서 시종일관 뻣뻣한 태도로 임했다는 이유로 2012년 사업예산 중 3개 사업이 전액 삭감되는 등 대부분의 사업이 삭감대상에 오르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사무처장이 계수조정소위원회 회의장 등을 직접 방문해 예산 살리기에 나섰지만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해 1년 내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특별취재팀 이두영 부장 김기석 전용기 최경환 김학재 김미희 예병정 박소현 이승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