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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신기술이 기존기술로 전락하다니..

[기자수첩] 신기술이 기존기술로 전락하다니..

최근 공시 자료를 살피다 한 기업이 올린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 평가 통과…'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신의료기술이라… 무슨 내용일까.' 호기심이 생겨 들여다보다 뜻밖의 얘길 듣게 됐다. 최근 이 회사 기술이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를 통과하긴 했는데 실은 새 기술이 아니라 이전에 있던 기술로 통과가 됐고 이번 인정으로 국내 시판이 가능해졌다는 다소 뚱딴지 같은 내용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신기술이 아닌 기존 기술로 판정받아서 간신히 국내 시판이 가능해졌다니.' 이해가 되지 않아 전후 자세한 얘길 요청해 듣게 됐다.

골절 환자를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는 제품 제조회사인 이 기업은 작년 5월 다국적기업 화이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7년 동안 300억원 가까이 투자해 일궈낸 노력의 결실이었다. 판매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또 다른 벽이 나타났다. 이번에 성공한 기술이 국내 최초라서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평가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9개월간 심사를 받았고 심사기간 중 해당 기업은 제품판매를 위한 모든 조치를 마쳤지만 결국 국내 판매는 무산되고 말았다. 9개월의 심사가 끝나자 추가 조사기간이 필요하다는 회신이 왔기 때문. 그동안 매출이라곤 해외시장에 조금씩 내다판 게 전부였다.

다급해진 기업은 할 수 없이 제품을 빨리 판매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꿨다. 그게 바로 새로운 기술이 아닌 기존 기술로, 그것도 화이자의 제품과 똑같은 제품이라고 위원회를 설득한 것. 그러자 4개월 만에 '기존 기술'이라는 의견과 함께 '판매 가능'이라고 도장을 찍어줬다. 국내 판매가 가능해졌다.

회사 관계자는 "억울하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제품을 하루라도 빨리 판매해야 하는데 언제 팔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으니 기가 막히죠. 고육지책으로 '기존 기술'로 들이밀 수밖에 없었어요. 말이 좋아 신의료기술평가지 이건 물귀신이나 다름 없는 것 아닌가요?" 문제는 국내 상당수 기업들이 이 같은 이유로 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최초 기술을 기존 기술로 평가절하해야 하고, 신기술인데도 먼저 개발된 기존 기술과 같은 기술이라고 말해야 받아들여지는 안타까운 기업의 현실. 정부가 규제개혁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산업 현장에서 체감하기엔 아직 거리가 한참 먼 듯하다. 정부가 현장 얘기에 귀를 더 크게 열어줬으면 한다.

kjw@fnnews.com 강재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