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5·③) 점심저녁 도시락으로 때우며 1분1초 아끼는 '까칠정책통'
우수의원 24시 동행취재 - 김기식 의원
"오늘은 세끼 모두 도시락으로 해결해야 할 듯싶다. 국회에서 조찬 모임을 시작으로 오전 10시 토론회와 정무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 일정이 겹친다. 그런데 당으로부터 오전 9시30분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겠다고 통보를 받았다. 오전 일정을 최대한 쪼개서 소화해야 한다. 예산 심사에 필요한 자료 더미를 하루 종일 들고 움직여야 겠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0일 오전 6시를 조금 넘어서 경기 파주 자택을 나섰다.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오르자 곧바로 오늘 일정을 챙기기 시작했다. 월요일, 여의도로 향하는 길은 평소보다 차량이 많다. 오전 7시30분 국회 의원회관 203호실에서 열리는 '더좋은미래의원모임'에 다소 늦게 도착할 것 같다. 이날 조찬 모임의 책임운영 간사를 맡고 있는 김 의원은 휴대폰을 들어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원님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일단 회의를 시작하세요. 금방 도착합니다."
■조찬모임부터 빡빡한 일정
'더좋은미래 의원모임'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진보·개혁 성향을 지닌 초선 의원 22명이 의기투합해 지난 2월 출범했다. 매주 월요일 조찬 모임을 갖고 향후 당의 진로와 정책 노선 등을 고민해 왔다. 이날은 28번째 조찬 모임이다. 특히 모임 소속 의원들은 각자 1000만원씩 출자해 독립 법인 형태의 정책연구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초선인 김 의원은 국회 생활 2년째에 접어들며 '실험적 도전'을 하고 있다. '더좋은미래 의원모임'을 통해 정책 중심의 정치를 실현, 대한민국호(號)의 미래 비전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임은 당의 고질적인 계파 질서를 극복하고 정책과 노선에 근거한 정책 그룹입니다. 정책 역량을 강화하면서 당과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을 연구하고 논의하기 위해 뜻을 함께 하는 의원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이날 조찬 모임의 화두는 전당대회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당은 조만간 당 대표를 포함해 당의 지도부를 뽑을 예정이다.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은 배달된 도시락을 먹으며 전당대회를 앞두고 펼쳐질 정국 현안과 당권 경쟁 판세 등과 관련해 각자의 의견과 정보를 교환했다.
1시간 가량 이어진 조찬 모임을 마친 김 의원은 같은 건물 9층에 있는 의원실로 향했다. 본격적인 의정활동의 시작이다. 오전 10시에 열리는 정무위 예산소위에 참석하기 전에 일정 2개를 소화해야 한다.
자료 더미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의원실을 나선 김 의원은 의원회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급히 몸을 싣는다. 도착지는 50m 정도 떨어진 국회 본청. 현재 시각 9시 10분, 비대위가 열릴 시간이다.
"국회 안에서나 여의도 근방으로 식사를 하러 갈때는 보통 걷지만 지금은 1분 1초가 아깝기 때문에 차로 이동을 합니다. 오늘 예산 심사를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시간을 절약해야죠."
■"국회서 선거구획정위 독립시켜야"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긴급 비대위에서 차기 당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 규정 등을 마련하는 전당대회준비위원회를 구성키로 의견을 모았다. 20여분 동안 진행된 비대위 회의를 마친 김 의원은 또 다시 의원실로 향했다. 예산소위를 코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보좌진과 관련 자료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보좌진과 꼼꼼히 자료를 챙긴 김 의원은 10여분만에 의원실을 나왔다. 이번 도착지는 같은 건물 2층에 위치한 제2세미나실.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실천위원회와 민주정책연구원이 공동 주최하는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혁신 방안 토론회'가 열리는 장소다.
김 의원은 정치혁신실천위의 간사도 맡고 있다. 일정상 토론회에 오래 있지 못하지만 행사 관계자, 그리고 참석자들과 인사라도 나눠야겠다는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토론회를 준비하던 한 관계자는 김 의원을 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오늘 김 의원이 일정상 불참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인사라도 와주니 힘이 나네요"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부터 '경제 민주화'와 더불어 '정치 개혁'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토론회에 애정이 깊은 이유도 여기 있다. 우리나라 선거제도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는 데서 정치 개혁도 시작된다는 것이 김 의원의 지론이다.
"이번 토론회는 선거제도를 개선하는 시발점이 될만한 의미있는 자리입니다. 우선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적으로 구성하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심의 과정을 생략하며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 국회에서 선거구획정위의 방안을 왜곡하는 일을 차단해야 합니다."
■정부 예산안, 다 읽으며 독한 공부
오전 10시, 오늘 의정활동의 핵심인 예산 심사를 시작했다. 이날 예산소위 안건은 국무조정실 및 국무총리비서실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예산이다. 예산소위원장을 맡고 처음 진행하는 예산 심사를 위해 김 의원은 독하게 공부했다. 수천페이지에 달하는 정부 예산안과 정무위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읽었다.
"국회의원이 되고 지난 2년은 법안에 집중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예산에 대해 꼼꼼히 들여다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또는 주말 시간을 활용해 예산안 관련 자료를 보는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정부 질문 때 예산안 자료를 들고 가서 다른 의원들이 발언을 할때 그냥 시간을 보내지 않고 예산안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점심식사를 위해 오전 예산소위를 산회한 김 의원은 의원실로 이동했다. 의원실에는 보좌진이 주문한 도시락이 회의테이블에 차려져 있었다.
김 의원은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공식적인 오찬자리가 있었지만 오후 예산 심위 준비를 위해 도시락 점심을 선택했다. 김 의원과 보좌진은 도시락을 순식간에 비우고 예산 관련 자료를 회의테이블에 올려 놨다.
"오전 예산 심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예산 심사를 더욱 꼼꼼히 하기 위해 식사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보좌진과 자료 검토를 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의정활동 '정공법'으로 승부
오후 2시 30분부터 재개한 오후 예산소위는 이날 저녁 9시를 넘겨서 끝났다. 김 의원의 보좌진 역시 이 시간까지 의원실을 지켰다. 이날 예산소위를 마친 김 의원의 발걸음은 또 다시 의원실로 향했다. 내일도 열리는 예산소위를 조금이라도 준비하고 국회를 떠날 심사다. 의원실에는 어김없이 저녁식사용 도시락이 차려졌다. 국회 의원회관 902호실은 밤 11시가 돼서야 불이 꺼졌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처음 입성한 김 의원은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간사 전문의원' 또는 '까칠한 정책통'으로 통한다. 상임위 간사는 물론, 당내 의원 모임마다 간사를 도맡을 만큼 의원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 정부 기관을 감시하는 데는 누구보다 매섭다. 정무위 국정감사 기간이면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김 의원의 질의 시간에 가장 진땀을 뺀다고 입을 모은다.
김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이 현실 정치에서 지역구 의원에 비해 영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통념을 일축한다. 이른바 '정공법'을 당할 수 없다는 것. 국회의원 본연의 책무는 의정활동이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비례대표라고 해서 의정활동이나 당내 활동에서 지역구 의원에 비해 제약을 받거나 발언권이 축소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지역구를 둔 의원들의 경우 지역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한 만큼 거기에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지만 비례 의원은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의정활동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에서 열심히 하면 그대로 인정 받는 곳이 국회라고 생각합니다."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