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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충전의 2014년..2015년 연기 더욱 즐길 준비돼”
지난 2012년, 2013년 쉴 새 없이 달려온 황정민이 올해 초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를 선보인지 약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차기작 ‘국제시장’을 내놓게 됐다. 스릴러, 범죄액션, 멜로, 휴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로 채우는 그가 이번에는 ‘아버지’가 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진행된 스타엔과의 인터뷰에서 황정민은 ‘국제시장’을 통해 부모와 자식이 몇 분이라도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성공이라며 특유의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20~70대 넘나드는 일대기 연기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황정민이 ‘국제시장’에서는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아버지 ‘덕수’ 역을 맡아 20대부터 70대까지 일대기 연기를 소화해냈다. 황정민 스스로는 70대 연기를 제일 중요하게 여겼고, 그만큼 제일 힘들었단다.
“‘국제시장’에서는 할아버지 덕수가 가장 중요했다. 결론이 현재인 70대 덕수 아니겠느냐. 어떤 인물이길래 이 사람의 삶을 우리가 투영해보느냐가 궁금했다. 전쟁터 같은 시장에서 수많은 상인들의 눈총을 이겨내면서 평생을 버티며 살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70대 노인을 표현하는 게 큰 핵이었다. 그걸 정확하게 잡아야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어려웠다.”
황정민이 중요하게 생각한 70대 ‘덕수’를 위해 3시간 동안의 특수 분장을 통해 겉모습마저 완벽하게 변신을 꾀했다. 하지만 황정민은 특수 분장보다는 ‘연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특수 분장을 하는 대신 제일 빨리 하는 곳으로 해달라고 조건을 내걸었다. 촬영이 중요한 건데 분장에 오랜 시간을 쓰며 진 빼기 싫었다. 관객들이 황정민을 잊어버리고 할아버지 덕수로 인식하려면 분장 자체보다는 할아버지만의 눈빛, 걸음걸이, 손 떨림 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할 때 노인 연기를 했었다. 당시 노인들을 캠으로 찍으면서 연구했는데, 그게 이번에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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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연기의 어려움이 해결되자 다른 세대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다던 황정민은 “다른 세대는 감정을 요하는 게 아닌 몸으로 느끼는 것들이니 오히려 쉽게 됐다. 특히 해외 로케이션 경우는 연기가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었다. 탄광은 10분 정도 있으면 고통이 밀려와 ‘어떻게 3년을 버티셨을까’ 싶을 정도였다. 태국에서의 강도 너무 더러웠다. 환경적으로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김윤진과의 풋풋한 로맨스 연기에 대해서는 “(김)윤진 씨랑 촬영 전 이야기를 많이 나누긴 했지만, 사실 이전에 친분이 따로 없었다. 설렘 반, 서먹함 반이 있었다. 당시에는 걱정하면서 찍었는데 오히려 그 설렘과 서먹함이 그대로 담겨 잘 나온 것 같다. 친해진 이후 찍었으면 연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감독님 역시 덕수의 사랑 이야기를 예쁘게 찍고 싶어 했다”고 회상했다.
◇ 연기 키워드 ‘평범’
황정민은 이번 작품에서 ‘덕수’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연기해야 한 가운데 ‘덕수’는 각 세대마다 큰 사건을 겪었다. 이에 감정의 굴곡 없이 치달아 지겨움을 안겨줄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70 평생 동안 중요한 사건만 모아놓은 거니깐 각 세대마다 감정적으로는 최고점이다. 영화는 그래프 타듯 해야 재미가 있는데 덕수의 경우는 줄을 그으면 일직선이라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어떻게 하면 평범하게 보일까를 핵심으로 삼았다. 물론 영화 속 모든 시퀀스를 겪은 인물은 없겠지만, 겹치는 건 있다. 나의 아버지이자, 너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공통분모의 아버지였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 대단히 평범한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황정민 본인 역시 영화 속 중요 시퀀스들이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겪은 일들이었기에 남달랐다고. 관련 사건들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관객들 역시 ‘국제시장’을 통해 느끼는 바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80년대 이산가족 프로그램을 통해 같이 울고 웃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월남전도 내가 참전한 건 아니지만, 다녀온 동네 아저씨들을 많이 봤다. ‘국제시장’이 슬픈 장면들이 많다 보니 억지 신파라고 하는 평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다. 어떻게 보면 가까운 이야기인데도 젊은 친구들은 머나먼 이야기로 느낀다. 우리 영화를 통해 아버지, 어머니에게 ‘국제시장’ 속 역사에 대해 물어보며 한 마디 나눌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감동을 주는 여러 장면들 중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아버지 사진을 보고 하소연하는 신을 명장면으로 꼽은 황정민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아버지 사진에 대고 힘들다고 털어놓는 신에서 울었다. 두 장면 중 어디가 더 슬프다고 의견이 나뉘던데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아울러 “이산가족 상봉신의 경우는 감정몰입을 위해 캐스팅에 전혀 관여를 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사진에 하소연하는 신을 위해 ‘국제시장’이 존재하는 게 아니겠나. 실제 나 역시 집에는 힘들다는 이야기는 잘 안 한다. 두 신 모두 테이크 3번 만에 끝났다”고 촬영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 배우 황정민vs인간 황정민 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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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의 연출을 맡은 윤제균 감독은 가장으로 분할 수 있는 배우들은 많을지 몰라도 20대 사랑과 70대 국민 아버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황정민 밖에 없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이에 윤제균 감독은 자신의 장기 프로젝트인 ‘국제시장’의 시나리오조차 황정민을 염두에 두고 썼다.
“수많은 영화를 하지만, 단 한 번도 연기할 때 황정민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고 그 인물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그런 부분에서는 나름 자신감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아니니깐 많은 걸 준비를 해야 한다. 취재는 물론 의상, 양말 하나까지 모든 걸 내가 선택한다.”
장르를 불문하고 명연기로 관객들에게 임팩트를 남겨왔던 황정민이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은 무엇일까. “사랑 이야기는 60대까지도 계속 하고 싶다. 내가 끈을 놓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많은 감독님들이 사랑 이야기의 끈을 놓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연기할 때가 제일 재밌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 때문에라도 지구를 지키는 그런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 왜 매번 미국이 지구를 지켜야 하나 모르겠다. 하하.”
윤제균 감독은 배우 황정민을 떠나 사석에서 본 인간 황정민의 진정성 역시 캐스팅 이유로 꼽기도 했다.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선을 분명히 긋는 편이라던 황정민은 “소탈한 면에서 진정성 있게 봐주신 것 같다. 촬영하지 않을 때는 배우 아니고 그냥 황정민이다. 평소에도 배우 황정민으로 살면 내 삶이 없어지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게 살아야한다면 배우를 안 하고 싶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댄싱퀸’, ‘신세계’, 2013년 ‘끝과 시작’, ‘전설의 주먹’, 올해 ‘남자가 사랑할 때’까지 계속해서 달리다 이제 ‘국제시장’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황정민. 2014년이 끝나가는 지금 그에게 2014년은 어떤 해였고, 다가오는 2015년은 어떤 해일지 궁금했다.
인자한 표정의 황정민은 “재작년, 작년 쉼 없이 달려오다 비로소 ‘베테랑’ 촬영 끝나고 5개월간 충분히 쉬었다. 나를 돌아보고 일을 즐길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다져졌다. 좁아진 시야를 넓힐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덕에 2015년은 보다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 역시 새해가 기대된다. 뮤지컬도 할 생각이다”고 귀띔해 2015년에는 또 어떤 명연기로 관객들에게 가슴 울림을 선사할지 기대되게 했다.
한편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덕수’, ‘괜찮다’ 웃어 보이고 ‘다행이다’ 눈물 훔치며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국제시장’은 오는 17일 개봉 예정.
(사진=윤예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image@starnnews.com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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