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3·②) 이슈 터질때마다 우르르 쏟아지는 법안들, 솎아내라

파이낸셜뉴스

3부. 입법시스템, 이젠 품질이 우선 <2> 과잉입법 양산하는 국회
19대국회 의원발의 1만3936건 10년 새 의원발의 10배나 늘어
특정집단 민원 위한 청탁법안, 이름만 끼워넣는 공동발의 등 건수 올리기식 발의 자제해야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3·②) 이슈 터질때마다 우르르 쏟아지는 법안들, 솎아내라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3·②) 이슈 터질때마다 우르르 쏟아지는 법안들, 솎아내라

#. 지난 5월 20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발병 이후 이와 관련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총 16건, 이 중 4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메르스 대응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하루에도 3~4건씩 발의된 날도 있었다.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가 지난 10년새 10배 가량 급증할 만큼 홍수를 이루고 있다. 충실한 입법기관의 역할을 했다는 긍정 평가도 있지만 법률의 잦은 변경으로 법적 안정성이 흔들리고 낮은 가결률, 겉핥기식 법안통과 등의 부작용도 낳고 있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사태와 올해 메르스에서 집중적으로 너도 나도 이슈만을 뒤쫓는 '뒷북 법안' 현상이 두드러진 가운데 정부나 단체 등으로부터 법안발의를 부탁받는 '청탁 법안', 이름 하나 더 얹는 '공동발의제도' 등 소위 '의원발의 남발 3종 세트'가 입법부 위상을 뒤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뒷북·몰아치기·이름끼워넣기' 발의 백태

1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금까지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은 총 1만4838건으로, 아직 임기가 남았는데도 이미 지난 18대 국회(2008~2012년) 법안 1만3913건을 훌쩍 넘어섰다. 전체 법률안 중 의원발의 건수는 1만3936건이다.

특정 사회적 이슈에 편승해 몰아치기식으로 법안을 쏟아내는 경우가 대표적인 과다발의 현상 중 하나다. 실제로 메르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어린이집 학대 등 사회적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물 만난 고기처럼 법안발의가 쏟아졌다.

이처럼 시류에 편승해 단기간에 쏟아져 나오는 법안들은 사실상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뒷북법안인 경우가 허다하고 충실한 검토 시간 없이 쏟아낸다는 점에서 부실한 법안일 확률도 높다.

부산대 김용철 교수는 "최근 법안 발의는 종합적 검토 없이 시류나 이슈에 따라 단기간에 비슷한 법안이 급조돼 쏟아져나오는 경향이 많다"며 "의원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이나 실적쌓기용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충분한 논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슈가 있다 하더라도 이해관계자나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 등을 통한 충분한 논의 속에 법안이 발의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남궁석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법이 너무 자주 바뀔 경우 법적 생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고 법안 심의가 부실해질 수 있다"며 "법안 하나 하나 신중하게 논의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많으면 충분한 논의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동발의제도 역시 기본취지가 무색하게 졸속 및 과잉 입법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 지난 2000년 법안실명제 도입과 2003년 공동발의 정족수를 20명에서 10명으로 줄인 이후 의원발의 건수가 급증한 바 있다.

국민대 홍성걸 교수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는지에 대한 주요 평가 지표가 법안발의 건수"라며 "내년 선거를 의식해 실적을 내야하고 상대 후보의 비판거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마구잡이식으로 법안을 발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이름 올려두기식'으로 발의해 자신이 무엇을 발의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의 경우 우리처럼 몇건 발의했다는 것을 내세우는 '보여주기 위한 법안발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공동발의제의 부작용을 바로 잡기 위해 법안 발의 건수 외에도 국회의원을 평가하는 잣대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청탁 법안도 과잉 법안을 양산하는 데 한몫 한다는 평가다. 일부 지역민이나 업계의 이해관계 민원을 받아들이거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정부입법 대신 의원발의로 해달라고 정부 측이 부탁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 부산대 김 교수는 "특정 지역의 집단 민원이 너무 과도한 경우 '청목회' 사건처럼 청부입법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입법조사처나 입법을 도와주는 부처가 2000년대 초반에 생겨 입법하기 전에 검토를 받으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의원 대다수가 검토를 거치치 않는다"며 "검토과정을 거치면 본인 스스로가 얼마나 황당한지 자기검열을 하게 돼 무차별적인 발의를 자제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현실적 법안 솎아내는 제도 시급

설익은 법안이 마구잡이로 남발되는 또 다른 배경으로 국내 정치 시스템의 문제가 지목되고 있다. 의원 자신이 낸 법안이 입법화될 때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추론해볼 수 없어 현실과 동떨어진 법안을 찍어내는 관행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의원들은 다른 나라보다 입법활동하기에 불가능하거나 힘든 부분이 있다"며 "외국의 경우 예산 조성권을 입법부가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예산심의권만 갖고 있다. 또 우리나라 국책연구소들은 대부분 행정부 산하에 있는 등 외국처럼 입법부에 재정을 확인해줄 수 있는 국책연구소가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각종 고질적인 부작용 논란 속에서도 의원발의 증가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철근 동국대 교수는 "포퓰리즘적인, 대책없는 입법의 양산 가능성을 제외하고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며 "과잉 양산된 법안이 바로 통과 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법안심사 소위원회와 상임위, 본회의 등을 통과해야 하는 절차에 따라 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석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결국 입법 주도권이 정부에 있다가 국회로 넘어오면서 생기는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보인다"며 "국회의원 활동이 점차 체계화되면서 즉흥적이거나 시류 편승적인 법안이 쏟아지듯 발의되는 일 등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email protected]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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