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4-①) 로마가 부러우면 로마법을 만들라
<1> 정치권 화두 '개헌'
20년 묵은 개헌 논의 우리는 과연 새 헌법을 가질 수 있을까
改憲 [개헌 : 성문헌법에 규정된 개정절차에 따라서 헌법의 기본적 자동성, 즉 근본규범을 파괴하지 않고 헌법조항을 수정·삭제 또는 증보하여 의식적으로 헌법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
시대 못 따라오는 헌법
알권리·생명권 등 명시 안돼 경제민주화도 뜻 제대로 살려 재벌집중적 경제구조 바꿔야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
공천·입법·예산권까지 장악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 더이상 큰 역할하기 어려워
수년째 개헌은 정치권 화두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의원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손잡았던 'DJP' 연합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20년 가까이 됐지만, 실제 개헌을 향해선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권력 누수를 우려해 개헌 이슈 앞에 주저했다. 소위 '잠룡'으로 불리는 대선후보군의 거물 정치인들 역시 앞다퉈 개헌을 약속하지만 막상 유력주자로 올라서면 손에 잡힐 듯한 대권 앞에 마음이 바뀐다. 내년이면 1987년 개헌 이후 햇수로 30년째를 맞는다. 군사독재 종식과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목적으로 탄생한 1987년 헌법은 두번의 민주적 정권교체와 경제위기 극복 등을 거치며 그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사업화와 민주화를 완성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밑그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 헌법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현재 정치권의 개헌 화두는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의원내각제 등 권력구조 개편에 매몰돼 있다. 제헌헌법 이래 총 아홉 차례의 헌법개정이 있었다. 그중 다섯차례가 전면개정이었지만 모두 국가적 격변기에 급작스럽게 탄생한 부산물이다. 따라서 새 헌법은 더 이상 국민적 논쟁이나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를 위한 규범으로 거듭나야 한다.
특히 21세기 정보화에 따른 정보접근권과 정보보호권 등 정보기본권에 대한 기본권도 필요하다. 행정의 투명성과 주권자 의식 제고를 위한 정보공개제도의 근거인 '알 권리' 역시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헌법학자인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새로운 헌법의 모색과 방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헌법상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는 21세기 정보사회 진전에 따른 자유와 권리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례를 통해 헌법적 가치를 갖는 기본권으로 인정받고 있으므로 이를 헌법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생명공학 등 과학기술의 발전, 우리 사회의 생명경시 풍조 등 생명과 관련된 이슈가 강조되는 현실을 고려해 '생명권'의 포함 여부도 논의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는 최근 개헌 논의에 대해 권력구조에만 매몰돼 있다고 지적하며 "헌법은 사회의 규약적 가치이다. 정통성을 계승하는 측면도 있지만 시대에 맞게 적응해야 하는 성격도 지니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이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혀있는 상황에서 국가를 재창조해보자 하는 관점에서 개헌도 과감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경제민주화 역시 시대변화에 따라 개헌을 통해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 제119조 2항에 명시된 '경제민주화 조항'은 1987년 직선제 헌법을 제정할 때 당시 김종인 경제수석(현 건국대 석좌교수)의 주장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모든 정당과 후보들이 경제민주화 공약을 최우선으로 내세웠지만 경제민주화 정책은 자취를 감췄다. 극심한 양극화로 계층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의 헌법정신을 구현할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 연말 국회에서 열린 대안담론포럼에서 "한국 경제는 지나치게 수출의존적인 데다 세계경제 전망이 밝지 않아 내수를 무시하는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 경제민주화 없이 성장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면서 "과거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경제 혹은 창조경제로 전환하는 데 경제민주화는 필수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산업화와 압축성장에서 발생한 재벌집중적 경제구조로는 내수 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이 어렵다는 위기 의식도 깔려 있다. 이에 대해 김종인 건국대 석좌교수는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전 원내대표와의 대담에서 "정치가 민주화되면 경제세력이 모든 것을 장악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쪽의 권력이 세지면 그 사회가 폭발한다"면서 "결국 정치와 경제에 대한 정확한 분리를 하려면 그 한계를 짓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 헌법의 권력구조 개편은 어디로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권력분산을 통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추구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을 위해 국가권력을 분할해 상호견제하게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시키려는 취지다. 우리 헌법은 표면상 입법·사법·행정이라는 전통적 3분법에 의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도모하고 있지만 실상은 대통령이 3권을 모두 통제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심해질대로 심해진 상태다. 지금과 같은 '승자독식' 구조의 정치환경으로는 갈등을 해소하긴커녕 심해질 것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고질적인 '불통' 역시 공천권을 가지고 여당을 장악한 점,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예산권 등을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따라서 새 헌법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은 분산하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권력구조 모델을 두고 갑론을박이다.
선학태 전남대 명예교수는 "전국민적 정통성에 기반한 실권 대통령과 의회의 신임여부에 의존하는 실권총리가 공존한 분권형 대통령은 남북교류·국방·안보·통일외교 등 특수 업무·권한을 초당적인 대통령에게 전담시킨다는 점에서 분단국가인 한국의 권력구조로 매력적이다"면서 "양당제와 결합한 미국 대통령제 역시 프랑스 분권형 대통령제보다 더 분권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선 명예교수는 "연방제인 미국에서 운영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는 우리나라 정치환경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고, 승자독식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헌법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헌법학자로 이름이 높은 정종섭 현 행정자치부 장관의 대통령제 비판도 눈길을 끈다. 지난 2013년 우윤근 전 원내대표가 각계 전문가와의 대담을 엮어 출간한 '개헌을 말한다'라는 책에서 정종섭 장관은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의원내각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정 장관은 "대통령제는 이념적으로 공산주의와 싸울 때 굉장한 역할을 했고, 산업화 시대에는 일정 부분 인권침해를 감수하면서 고도성장을 하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민주화 단계에 들어선 지금 대통령의 역할은 더 이상 국민한테 필요도 하지 않고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정 장관은 이어 "정부에 법률안 제출권을 주는 것은 권위주의적 대통령의 문제를 더욱 강화시킨다"며 "독일식 의원내각제와 같은 형태를 우리나라에 맞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답이다. 한국에서 대통령제가 더 이상 역할도 없고 기능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4년 대통령 중임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4년 중임제는 대의정치, 책임정치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8년 대통령제를 보장하는 쪽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4년동안 대통령은 한 사람은 연임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대통령제라고 불리는 나라는 미국, 멕시코, 칠레, 한국 등 4개국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email protected] 박지훈 조지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