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4-①) 개헌 부르짖던 정치판, 선거철만 되면 침묵
朴대통령 '개헌 블랙홀' 경고
여권서는 금기어나 마찬가지
야권은 내년 총선에 올인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정치인들이 최근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에 담는 것조차 꺼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개헌'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너나 가릴 것 없이 개헌의 필요성을 부르짖었던 여야 의원들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권력구조 개편 중심의 개헌 논의로 인해 권력 누수를 경계하는 대통령의 견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통령 '개헌 블랙홀' 발언, 개헌 필요성 방증
지난 10월 중국 상하이로부터 불어온 어느 때보다 강한 '개헌 바람'이 여의도를 강타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중국을 방문해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이 터질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표가 지핀 불꽃은 하루도 가지 않아 사그라졌다. 김 대표가 다음날 곧바로 청와대를 향해 개헌 발언에 대해 사과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직접 "개헌 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 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논란을 불식시켰다. 이후 여권 지도부의 공식발언에선 개헌의 필요성은커녕 '개헌'이라는 단어 자체가 실종됐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유승민 원내대표도 국회법 개정 문제로 집권 여당 원내사령탑 자리에서 쫓겨나는 마당에 개헌 문제를 꺼내들 수 있는 의원이 누가 있겠느냐"면서 "개헌론을 꺼내드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집권 여당의 대표가 소신을 버리고 움츠러드는 모습이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적으로 방증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다.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권력으로 인해 행정부와 입법부와의 갈등, 임기 종반부의 레임덕 등으로 국정운영의 동력이 상실된다는 것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이와 관련, 야당의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전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여당 150여명의 의원들이 숨죽이는 현재의 모습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진정성 결여에 정쟁 도구로 활용
여당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던 야당에서도 개헌론 주장은 '잠복기'에 들어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헌을 주장하던 야당 의원들도 온통 선거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지난해 말까지 강하게 개헌을 주장했던 야당의 한 중진의원도 "당과 의원들의 마음이 온통 콩밭(내년 총선)을 향해 있어 개헌 이야기를 하려야 할 수가 없다"면서 "총선이 끝나도 선거 결과에 따라서 개헌론에 생명력이 붙게 될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정치권이 정치·사회 발전을 위한 개헌의 필요성을 수십년 동안 반복해서 제기했지만 국민들은 외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교수는 "국민들은 정치권의 개헌론을 권력배분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치고받기 논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개헌을 논의하려면 국민들의 삶의 문제와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설득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에게서 그런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개헌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지 말고 사회의 기본적 약속을 정하는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지민 박지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