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4·②) 지역구 쪼개고 붙이고 싸우고… 돌고돌아 결국 원점?
4부. 로마가 부러우면 로마법을 만들라 <2> 쳇바퀴 도는 선거구획정·의원 정수 논란
여 "오픈프라이머리" 야 "비례대표 늘려야" 정쟁 번지자
정개특위 덩달아 파행됐다 본회의서 재구성되는 해프닝
지역구 통폐합 불가피해진 농어촌 의원들은 '밥그릇 투쟁'
결국 정수 300명에 명분·실리 반반씩 정치적 타협 나설듯
#. 최근 대구경북(TK) 정가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인구수 하한선에 미달하는 한 의원의 지역구를 조각내 다른 인구수 하한선 지역구에 붙이고 이 의원을 대구로 출마시키자는 시나리오다. 해당 의원실에서는 "지역구민을 무시하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하지만 이 같은 자의적인 게리맨더링 행태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선거구 획정 기준 설정이 늦어질수록 이 같은 행태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7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구 획정 논의는 정치권에 막혀 게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야가 각각 추진하는 오픈프라이머리(국민공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논의가 상대당의 반대로 정쟁으로 비화되자 선거구 획정위 기준을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덩달아 파행을 거듭하다 활동 기한이 종료돼, 결국 본회의에서 재구성되는 촌극까지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의석수 비율 조정 딜레마로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고정하려는 움직임도 올스톱된 상태다.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려니 야당이, 지역구 의석수를 조정하려니 농어촌 지역구 의원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정개특위가 '진퇴양난'에 빠지면서다.
19대 국회 정개특위도 '고양이 목에 스스로 방울달기'에 사실상 실패 수순을 밟아가는 동안 선거구 하한선에 미달하는 지역구 의원 간 물밑 게리멘더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정가에서는 내년 총선 선거등록을 시작하는 오는 12월이 돼서야 지역구 의석수를 몇 석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그만큼 줄이는 선에서 여야 간 정치적 타협을 이룰 것이라는 자조섞인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전문가와 중진 의원들은 이제는 중·장기적으로 미국과 같은 양원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놨다.
■의원수 조정 딜레마…예고된 '난제'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개특위는 지난 7일 재구성된 후 첫 소위원회를 열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정개특위는 이번주 내로 선거구 획정 기준안을 마련해 획정위로 넘긴다는 목표를 재설정했지만 '의원수 조정 딜레마'를 풀 돌파구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의원수 조정 딜레마는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인구의 편차를 현행 3대 1에서 2대 1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예상된 난제였다. 헌재 결정에 따라 선거구별 인구수를 조사한 결과 상한선을 초과한 지역구는 37곳, 하한선에 미달한 지역구는 25곳으로 선거구 획정 규모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구수 상한선을 넘은 지역구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만 24곳인 반면, 인구수 하한선에 못미친 지역구는 경북(6곳)·전북(4곳)·전남(3곳) 등 농어촌 지역으로 쏠린 데 있다. 선거구 통폐합이 불가피해진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의 집단 행동은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의미다.
실제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은 정개특위 활동 종료 시한이 다가오면서 집단 행동에 돌입했다.
새누리당 소속 농어촌 지역구 의원은 황영철 의원 주도로 '농어촌 지방 주권 지키기 의원 모임'을 발족해 의원총회와 연찬회 등에서 여론전을 펼쳤고, 제 식구에게 '동정론'을 얻으면서 실제 정개특위가 멈추는(?) 성과도 냈다. 이들이 지난 7일 정개특위 소위를 찾아가 농어촌 지역을 선거구 획정의 '예외'로 설정해달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농어촌 지역구 의원의 움직임도 가시화될 조짐이다. 인구수 하한선에 미달된 충남 공주를 지역구로 둔 박수현 의원은 이날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어촌.지방의 대표성 보완 방안을 내세워 "충남지역의 의석수를 10석 증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공천룰 작업을 진행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도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 지도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있었지만, 박 의원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야당도 지역별로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이 새누리당처럼 당장 집단행동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은 공통적으로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전히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 당론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사실 전남과 전북도 농어촌 지역 살리기에 동참해야 하는데 공천룰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공학에 휘둘리는 선거제 개편 논의
정개특위는 내심 여야 당 대표 간 담판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당장은 여의치 않다. 여야는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각각 주장하면서 '외형상' 의견차를 좁히지 않고 있다. 여야는 국민의 대표성을 더욱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선거제 개편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각당의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라 철저하게 움직이고 있고 휘둘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가와 정치전문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는 공천룰 때문에 당 내홍에 휩싸인 점도 복병이다.
결국 '다급한'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손을 내밀고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취지를 일부 살리는 선에서 정치적 타협이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든다. 명분과 실리를 주고받는 정치적 협상을 이번에도 따르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여야 동시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급하다"면서 "비례대표 의석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을 때 독일식이 아닌 일본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우리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내년 총선과 이듬해 대선으로 이어지는 선거철을 앞두고 대권주자들이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선거제 개편 의견을 보태면서 선거제 개편 논의 자체가 더욱 혼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최근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여야 협상 의제에 포함해야 한다고 기자간담회까지 열며 공식 제안했다. 안 전 대표는 "현 소선거구제를 바꾸지 않는다면 의원 300명을 전원 바꾸더라도 똑같은 국회의 모습이 될 것"이라면서 "한 지역구에서 3~5명을 뽑는 중선거구제가 바람직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지난 7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한국정치의 승자독식 문제를 지적하면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은 '연정'을 강조했다. 남 지사는 궁긍적으로는 총선 후 '개헌'까지 주장했다.
■돌고 돌아 '원점'…중장기적 대안 모색해야
정치권은 결국 정개특위가 의원수는 300명으로 고정한 상태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일부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일부 줄이는 식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여야 간 정치공학, 도시와 농촌 간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절충안은 결국 원점으로 회귀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제는 선거구 획정 기간에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할 것이라 아니라 미국의 양원제와 같은 중장기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 제도 하에서 선거제를 개편하는 것은 소모적일 뿐이며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결국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이를테면 1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16곳은 2명씩, 규모가 작은 1곳은 1명을 포함해 총 35명 규모의 상원을 만들면 된다"면서 "그간상하 양원제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지만, 지금처럼 도·농 간 인구격차가 심해지면 지역대표성이 지나치게 강력해져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시대적 화두인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고, 분권형을 통해 내각으로 가는게 맞다"면서 "지금은 개헌 논의할 시간은 없지만 결국 영남이 손해보더라도 중·대선거구제 도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박소현 신아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