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태완이 범인 봤지만 증거로 불인정 2000년 8월 이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그래서 뿌렸다. 아는 사람이다. OO아저씨."
16년 전 온몸에 붕대를 감은 고 김태완군(당시 6살)은 병상에서 힘겹게 입을 뗐다. 자신에게 '뜨거운 물'을 뿌린 아저씨를 혼내달라고 한 태완군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다 사건 49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채 공소시효가 지나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다.
그리고 올 7월24일 일명 '태완이 법'(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모든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현재 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사건도 대상에 포함되도록 했다. 이를 이끌어낸 태완군에게 16년 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9년 5월20일 오전 11시께였다. 대구 동구 효목동에서 학원에 가던 태완군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정체불명의 남자가 황산을 뒤집어 씌웠기 때문이다. 근처에서 미용실을 하던 어머니 박모씨가 10여분 후 전봇대 아래에서 태완군을 발견했지만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이 사건으로 태완군은 얼굴을 비롯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두 눈을 잃고 식도와 기도도 상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의 부모는 아픔을 삼키며 범인을 잡기 위해 녹화영상을 남기게 된다.
부모가 병상에서 찍은 녹화영상에 따르면 태완군은 당시 검은 비닐봉지를 든 남성에게서 테러를 당했다. 태완군이 병원에 옮겨질 때는 이웃 주민 A씨를 포함, 여럿이 함께 했다. 사건 장소가 어디냐는 어머니 질문에 "내가 다쳤던 자리는 큰 전봇대 작은 전봇대 그 자리다. 오토바이는 큰 전봇대에 세워놨고…"라며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던 태완군은 1999년 7월8일 오전 8시께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찰은 수사에 나섰지만 사건 당시 목격자가 없어 난항을 겪었다. 희망적인 증거는 태완군이 사망하기 전까지 남긴 300분 가량의 증언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생사를 오가는 6세 아동이 부모의 유도진술에 의해 한 말이어서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2005년 경찰 수사본부도 해체됐다.
현행 살인죄 공소시효는 2007년 25년으로 개정됐지만 이 사건은 개정 전 발생해 당시 시효인 15년이 적용됐다.
태완군 부모 등은 2013년 11월 검찰에 재수사를 청원했다. 경찰과 검찰은 14년 만에 재수사를 벌였지만 진전은 없었고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공소시효를 3일 남긴 지난해 7월4일 태완군 아버지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웃 주민 A씨를 살인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태완군 부모는 A씨의 옷과 신발 등에 묻은 황산 흔적을 유력한 증거로 제시했지만 시간이 지체된 후 오염된 상태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재 연구원)에 보내져 범행을 증명하기 어려웠고 아이를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묻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됐다.
태완군 부모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적절했는지 따져달라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을 하면 법원 결정 때까지 공소시효가 중단돼 최대 90일까지 연장되지만 대구고법에서 기각됐고 대법원 재항고마저 올 6월 기각됐다.
'나쁜 아저씨'를 혼내주겠다는 태완군과의 약속은 지키기 어렵게 됐지만 태완이 법이 올 7월 31일자로 공포.시행되면서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모든 미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신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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