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업자가 불법 설치·운영.. 월평균 소득 500~1,000만 원 달하기도
전단지 등 쓰레기 무단 투기장으로 변질·동네 흉물로 전락
서울 은평구에 사는 A(32)씨는 작년 말 못 입는 옷을 정리해 집 근처 의류 수거함 2곳에 골고루 넣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을 가졌던 그는 며칠 후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의류 수거함에 기부한 옷들이 불우이웃을 돕는 게 아니라 개인 사업자가 되팔아 이익을 남긴 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단지 등 쓰레기 무단 투기장으로 변질·동네 흉물로 전락
그는 “관련 기사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불편한 진실을 알고 난 후에는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의류 수거함에 관리주체 표시가 없어 아쉽다”며 “어떻게 활용되는지 간단하게 설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의류 수거함. 헌 옷을 정리하고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기부한다. 하지만 현실은 개인사업자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전단지 등 각종 오물로 뒤덮여 쓰레기 무단 투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류 수거함은 언제부터 설치됐을까?
의류 수거함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헌 옷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현재 서울시에 설치된 의류 수거함은 총 17,104개. 각 구청별로 단체와 협약을 맺어 관리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돈이 된다는 인식에 허가 없이 불법 설치된 의류 수거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급격히 늘어난 숫자만큼 디자인은 통일되지 않았고, 전봇대 주변과 더불어 쓰레기장으로 변질되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다. 더군다나 민원도 끊이지 않아 담당 부서 공무원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 불우이웃 돕기? 개인 사업자 배만 불린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2년 11월 기준으로 의류 수거함의 헌 옷 수거량은 월평균 3,485톤, 연간 41,820톤에 달한다. 각 구청별로 지체장애인 협회, 기능 장애인 협회 등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단체들과 협약 맺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 사업자들이 법의 테두리를 교묘히 피해 허가 없이 불법으로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는 의류 수거함이 상당수에 이른다. 장애인 등 단체 이름을 빌려 지자체 단속을 피하고 기부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 사유화가 늘어나면서 2011년 9월에는 의류 수거함을 대규모로 설치하는 단체가 새로 생겨 이권다툼이 심해지기도 했다.
헌 옷의 거래 가격은 kg당 적게는 250~300원, 많게는 400~5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상태가 좋은 옷은 세탁이나 손질을 거쳐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또는 아프리카에 주로 수출되며, 가치가 떨어지는 낡은 옷은 일반 고물과 마찬가지로 고물상에 판매된다. 개별 차이가 있겠지만 수익은 월평균 500~1,000만 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기부했던 헌 옷들이 남 좋은 일만 시킨 꼴이다.
개인 사유화 때문에 범죄자로 타락하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월 인천 연수구에 살던 몽골 유학생 3명이 의류 수거함에 있던 옷을 훔쳐 특수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개인사업자가 설치한 의류 수거함은 옷을 넣는 순간 수거업자의 소유가 되기 때문에 옷을 꺼내는 행위는 절도 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 쓰레기 무단 투기장으로 변질·흉물로 전락
의류 수거함은 본래의 기능을 잃고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주변에는 각종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악취 때문에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디자인까지 통일되지 않아 도시미관까지 해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의류 수거함 때문에 2012년 1월~8월까지 총 4,023건의 민원이 발생했다. 민원의 주된 내용은 주변 쓰레기 방치 등으로 철거 및 청소 요청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류 수거함 문제점들이 불거지자 서울시는 2012년 11월 ‘의류 수거함 정비 추진계획’을 발표해 시행했다. 의류 수거함의 디자인을 통일하고, 설치 기준을 최소 수량으로 한정해 신규 발생을 억제했다.
대표적으로 송파구 2,177개→800개, 강동구 1,594개→1,000개, 광진구 1,370개→700개, 노원구 730개→400개, 금천구 980개→750개로 축소하고 정비했다. 그러나 아직도 지자체의 눈을 피해 수익을 올리는 개인사업자가 어느 정도인지 추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현재 의류 수거함 불법 설치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해도 설치자가 과태료 납부 후 반환 요청을 하면 돌려줘야 한다. 개인사업자는 이를 역이용해 휴일이나 야간에 재설치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의류 수거함 정비에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관리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25개 자치구 중 영등포구가 의류 수거함 정비를 완료한 것으로 발표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