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지금 대한민국] 일제잔재 논란 ‘비원’ 유네스코 등재 괜찮을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12 09:00

수정 2017.08.13 16:15

후원(後苑)을 고유명사로 쓸 수 있나? 
비원은 일제잔재일까?
후원으로 쓰고 있지만 “비원이 더 적합한 이름이다”라며 모순에 빠진 문화재청
창덕궁 후원 (파이낸셜뉴스DB)
창덕궁 후원 (파이낸셜뉴스DB)

조선 궁궐 정원인 후원(後苑)은 비원으로도 불린다. 창덕궁은 후원을 포함해 전체가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이다. 우리나라 궁궐 건축의 다양한 특성을 보여주기에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UN전문기구로 지구의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한다.

후원은 오랫동안 비원으로 불렸지만, 명칭이 일제강점기 잔재라는 목소리가 높다.

故 이현종 국사편찬위원장은 1976년 편사실장 당시 동아일보 칼럼에서 “비원은 일제 침략하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면서 “1912년 ‘비원과 창경궁원 관람규정’에서 비원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가 아직까지 명백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1963년 서울시에서 발간한 <서울특별시사 고적편>은 “후원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이름이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역사학자 홍순민 교수도 1999년 저서 <우리궁궐이야기>에서 비슷하게 주장했다. 비원이라는 이름 아래 순종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등이 연회를 즐기거나 일반인이 출입하는 등 당시 궁궐 정원 격에 맞지 않게 이용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원 명칭이 다시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문화재청은 홈페이지 등에서 후원으로만 쓰고 있다. 하지만 비원이 일제잔재라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더 적합하다는 주장도 강력하다.

■조직 이름으로 쓰였던 ‘비원’이 ‘후원’을 밀어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비원, 금원(禁苑) ,북원(北苑)이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주로 후원이 쓰였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5년)에 생겼다. 정확히 ‘창덕궁의 후원‘이 언급된 때는 16년 후인 1421년(세종3년) “밤에 산올빼미가 창덕궁 후원에서 울고~”라는 부분이다. 그 후 후원은 조선왕조실록에 수십 차례 나온다.

비원은 비교적 최근인 1903년(고종40년) 고종실록에 모습을 보인다. 국권피탈 전이기에 일제잔재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다. 처음에는 장소 이름이 아닌 후원을 관리하는 조직 이름이었다. 고종실록43권은 “비원은 창덕궁 안 후원을 관리하며 지키는 사무를 맡아본다”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 해에는 “김가진에게 비원장을, 궁내부 협판(宮內府協辦) 박용화에게 비원 부장을 겸임하도록 하였다”라면서 인사를 단행한 흔적을 남겼다.

이렇게 조직 이름이었다가 1908년 (순종1년)에 후원을 대신한 장소 이름으로 쓰인다. 순종실록에 “비원에 나아가 과녁을 쏘았다. 각 대신들이 배사(陪射)하였다”고 기재돼 있다. 또한 “비원에 나가서 운동회를 구경하다”라는 부분도 보인다.

■후원은 고유명사? 보통명사?

‘후원‘ 그 자체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경복궁이나 수창궁의 뒤쪽 정원도 후원이라고 쓰여 있다. 창덕궁 정원을 특정해 후원으로 부르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이와 관련해 故 이현종 국사편찬위원장은 같은 칼럼에서 “우리 궁궐의 정원 중 제대로 남은 것은 창덕궁의 후원뿐이다”라며 “조선왕조실록에서 보통명사로 쓰였다 할지라도 고유화한 느낌도 주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후원으로 부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 등재 신청서 후원 언급 부분
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 등재 신청서 후원 언급 부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는 비원(Piwon, the Secret Garden)으로 등재

문화재청에 요구해 받은 1996년 문화체육부가 유네스코에 제출한 '세계유산 창덕궁 등재 신청서'를 보면, 후원을 'the Secret Garden'으로 기재했다. ‘비밀 정원’쯤으로 해석된다. 비원의 한자 숨길 '비' 뜻을 영문 변환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일제잔재 이름으로 본다면 모욕의 역사를 우리 손으로 유네스코에 그대로 등재한 꼴이다.

이에 대해 담당 기관인 문화재청 세계유산팀 관계자는 “현재 문화재청은 후원으로 쓰고 있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더욱 적합한 이름은 비원이다”라고 밝혔다. 제시한 근거는 2002년 발간한 <창덕궁·종묘 원유 조사 보고서>다. 관련 분야 교수와 석박사 등 54명이 연구에 참여했다.

보고서는 “문헌상으로는 후원이라는 용어가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후원은 일반명사이며 다른 명칭에 비해 고유하다는 느낌이 적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반민가에도 적용되어 왕궁의 격에 맞지 않다”고 이유를 들었다. 이어 “비원은 대궐 안의 동산이란 뜻으로, 상징성도 있고 일반적인 조경숲과 차별성도 있는 좋은 이름이다”라고 했다.

일제잔재 논란에 관해서는 연구 자문위원이었던 故 정재훈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조경학과 석좌교수가 2002년 1차 자문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이 보고서에 나온다. 그는 “비원 명칭은 순종·고종실록에도 사용됐다”면서 “일제 강점기 일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명칭이기에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견해는 잘못됐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먼저 1963년 정동오 전남대 조경학과 교수가 <동양조경문화사>에서 “비원은 일본 정치권 영향 아래 붙여진 명칭이다“라고 주장했다.

‘비원‘이 처음 등장한 1903년에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이 왕실 정원 이름에까지 뻗었는지가 논점으로 보인다.

한편, 국사편찬위원회 측은 비원 논란에 대해서 “국사 연구 토대를 마련하는 기관에 가까워 직접 판단 내리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ohcm@fnnews.com 오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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