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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유교문화권과 저출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4 17:34

수정 2018.04.04 17:34

[fn논단] 유교문화권과 저출산

홍콩, 싱가포르, 대만, 일본, 한국의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맞다. 모두 유교 문화권 국가들이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또 한결같이 애가 안 태어나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전 세계 224개 국가 출산율에 순위를 매겼더니 그나마 제일 나은 일본이 208등이고 우리는 219등인데 나머지 홍콩과 대만, 싱가포르는 순서가 우리보다 더 뒤다. 왜 이런 걸까. 유교 문화권의 '아이 낳기'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은 이 문제를 좀 짚어보기로 한다.

유교국들의 낮은 출산율을 논할 때마다 자주 도마에 오르는 것이 이른바 유교적 가부장제의 영향이다.
마초적이고 위계적 가족문화가 있어 여자들이 도무지 결혼과 출산을 싫어하니까 저출산이 된다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단지 의식적이고 표면적 이유일 뿐이다. 보다 깊숙한 곳에 무의식적·심리적 기전은 따로 있어 보인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유교 문명의 금욕주의적이고 현세적인 가치관의 영향이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로 '삶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사후를 어찌 알 것이냐'고 한 공자의 말에서 보듯이 유교 문화엔 애초 내세와 같은 유장한 시간 개념이 안 들어 있다. 그 대신 현세에서의 신분상승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문명권보다 높다. 그러니까 유교적 인간들은 다음 생이 아닌 현생에서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근면하게 일하고 저축하는 특성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점 덕분에 아시아의 유교 국가들은 일제히 세계적으로 가장 빨리 근대화에 성공했고,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칭찬도 들었다. 그만큼 이 나라들은 '나는 못 입고 못 먹어도 자녀들만큼은 억척스럽게 교육시켜서 나보다 잘살게 만들어야지' 하는 맹렬한 교육열을 공통적으로 가진다. 이렇게 본인과 자녀의 신분상승 욕구가 강한 문화권은 출산율이 높기가 어렵다. 자녀를 남 못지않게 잘 가르치려면 많은 자녀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유교 국가들의 눈에 띄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혼전출산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기피가 매우 심해서 혼외출산율이 극히 저조하다는 점이다. 요즘은 이 문제가 유럽 국가들과 우리의 출산율 격차를 설명하는 제일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합법적 결혼 외의 성관계를 금하는 도덕적 엄숙주의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향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는 자녀를 고급 자본재로 여기는 태도의 연장일 뿐이며, 따라서 앞서 말한 현세적 신분상승 욕구와 동일한 기원을 가진다. 즉 '소자녀에 집중투자'해 '사회적 갑(甲)'으로 키우겠다는 열망이 강한 사회에서 그만큼 비싼 투자를 할 여력이 못 되는 '한부모(lone parents)'는 무의식적 기피대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유교 문명권 국가로서 자녀교육에 들어가는 심리적·경제적 비용이 매우 높은 나라라는 특성이 출산율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 국가가 유럽 국가들만큼 출산율을 높이려면 그들 나라보다는 몇 배 더 재정지원을 해야 하지만 아직 전혀 그렇지 못한 상태이다.
더 비상한 각오로 '통 큰' 투자를 결단해야 할 것이다. 다만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 사실은 사회 발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구규모와 출산율은 타 문명권 나라들보다 다소 낮아도 무방하리라는 점이다.
자녀교육에 대한 강한 투자의지 덕분에 인간 개개인이 우수한 편이라 인구의 규모 대신 질이 좋은 장점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재인 전 한국보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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