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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리얼리티 TV쇼의 종착역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03 16:57

수정 2018.09.03 16:57

[fn논단]리얼리티 TV쇼의 종착역


인터넷과 TV에 '먹방'이 넘친다. 국민은 강제로 먹방 시청자가 될 수밖에 없다. 먹방에 대한 의견도 넘친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을 '먹방공화국'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먹방' 간섭은 국가주의적 발상이라고 한다. 경제침체로 한국인에게 널리 깔린 불안감이 원인이라기도 하고, 3포시대 청춘들의 스트레스와 정신적 허기를 푸는 방식이라고도 한다. 먹방이 대세가 되다보니 요즘 주요 채널에 '먹방+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범람한다.


원래의 리얼 버라이어티는 그 나름의 스토리텔링을 품고 있다. '무한도전'은 제작진이 등장인물들에게 미션을 주고, 그들이 그 목표를 �i는 중에 발생하는 스토리로 재미와 의미와 감동을 준다.

요즘은 먹방에 관음적 장치를 도입해 호기심과 자극을 유발할 뿐 스토리텔링이 증발해버렸다.

최근 수많은 프로에 수많은 연예인과 수많은 스포츠인과 수많은 가족들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거실과 주방, 안방과 목욕탕에 장착되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준다. 우리는 가족들의 실생활의 민낯과 원초적 감정들을 어쩔 수 없이 엿보아야 한다. 제작진이 변사처럼 영상에 큰 글씨로 양념까지 퍽퍽 쳐주니,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도 못하고 그저 관음증에 빠져버린다. 킬링 타임엔 최고다. 먹방의 끝이 비만(肥滿)이라면 이런 프로그램의 끝은 사고(思考)의 고사(枯死)다.

방송 중 자극적 내용이 등장하면 당장 인터넷으로 전이되어 종일 실시간 검색어가 되고, 사람들은 떼로 몰려들어 댓글을 쏘아댄다. 이런 리얼 버라이어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엿보기는 더 많은 엿보기를 원하고, 자극은 더 센 자극을 원한다. 미래엔 슈퍼 리얼로 가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영국에서 있었던 일. 어느 날 영국 총리는 공주가 납치됐다는 보고를 받는다. 유괴범이 보낸 테이프를 틀면 온몸이 포박된 공주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다. "저를 구해주세요. 저를 위해 총리님이 오후 4시 국민 앞에 생방송을 해주세요. 돼지와 섹스하는 장면을 방송해주세요."

이 사실이 알려지며 전 국민이 인터넷에 몰려들어 찬반 의견을 쏘아댄다. 총리는 완강하게 버티지만 잘린 손가락 하나가 관저에 도착하자 국민 여론이 돌변한다.
궁지에 몰린 총리는 공주를 위해 벌거벗고 돼지에게 간다.

실화가 아니다.
인간이 인터넷과 미디어의 노예가 된 시대, 영국 채널4의 미래 예측드라마 '블랙미러'의 첫회 스토리다. 슈퍼 리얼쇼의 종착점이 자살을 중계하는 '죽방'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랴.

이응진 한국드라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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