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식품

"시골뜨기 와인 주제에…" Vs "텁텁하기만 한 죽은와인"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16 10:35

수정 2019.05.16 10:35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의 빛깔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보르도 와인(오른쪽)은 까베르네 쇼비뇽이나 멜롯을 기반으로 다른 품종의 포도를 섞어 진하고 고급스러운 맛이 특징입니다. 반면 부르고뉴 와인은 껍질이 얇은 피노누아 품종으로 빚어 색깔이 연하고 맑은게 특징입니다.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의 빛깔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보르도 와인(오른쪽)은 까베르네 쇼비뇽이나 멜롯을 기반으로 다른 품종의 포도를 섞어 진하고 고급스러운 맛이 특징입니다. 반면 부르고뉴 와인은 껍질이 얇은 피노누아 품종으로 빚어 색깔이 연하고 맑은게 특징입니다.


"맛은 너무 밍밍하고 색깔은 왜 이렇게 흐려. 차라리 피를 마시는게 낫겠어." (보르도 와인 애호가)
"너무 진하고 텁텁한데다 타닌은 또 왜 이렇게 강한거야. 이건 죽은 와인이야." (부르고뉴 와인 애호가)
프랑스 와인산업을 대표하는 보르도 와인과 부르고뉴 와인은 이처럼 서로를 인정하지 않지만 분명히 둘 다 세계가 인정하는 명품 와인입니다. 하지만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독 호불호가 확실하게 나뉩니다. 맛과 색깔 등 와인의 기본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생산자와 생산방식까지 모든 면에서 정말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구석이라고는 좀체 찾아볼 수 없어 상반된 느낌이라는게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영원한 라이벌인 두 지역의 와인,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볼까요.

보르도 메독지방에서 생산된 '생 줄리앙' 와인이 잔에 담긴 모습.
보르도 메독지방에서 생산된 '생 줄리앙' 와인이 잔에 담긴 모습.

부르고뉴에서 생산된 '페블리 부르고뉴' 와인이 잔에 담긴 모습.
부르고뉴에서 생산된 '페블리 부르고뉴' 와인이 잔에 담긴 모습.

■첨단으로 무장한 보르도 Vs 소규모 가족농장의 부르고뉴
드넓은 포도밭 한가운데 자리한 호화로운 대저택 '샤또'의 정문으로 최고급 스포츠카 한 대가 유유히 들어섭니다. 녹색 잔디밭 사잇길을 지나 현관 문 앞에 멈춰선 빨간색 '페라리'에서 명품 캐주얼을 차려입은 도시의 남자가 시가를 물고 내립니다. 보르도의 와이너리를 떠올릴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풍경입니다.

보르도 유명 와이너리 '샤또 라스콤브(Chateau Lascombes)'의 우아한 건축물 모습. (사진=샤또 라스콤브 홈페이지)
보르도 유명 와이너리 '샤또 라스콤브(Chateau Lascombes)'의 우아한 건축물 모습. (사진=샤또 라스콤브 홈페이지)


보르도의 와이너리 소유주는 대부분이 파리에 거주하면서 주말이나 혹은 포도 수확기에만 보르도에 내려옵니다. 이들은 보르도의 근사한 샤또에서 자신들의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을 대접하는 파티를 열거나 아니면 가족끼리 조용히 쉬었다가 올라가곤 합니다.

보르도는 대서양과 접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일찌기 중세시대부터 유럽지역에 와인을 수출하며 커다란 부를 쌓아왔습니다. 또 1800년대 중반에는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한 프랑스의 신흥 부자들이 보르도의 유명 와이너리를 대거 매입하면서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르도의 거대한 샤또에는 최첨단 연구소를 연상케 하는 양조시설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최첨단 양조기법을 익힌 양조전문가들은 변덕스런 보르도의 기후도 이겨낼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보르도 와인을 가장 자본집약적인 와인이라고 표현합니다.

부르고뉴 와이너리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부르고뉴 와이너리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반면 부르고뉴는 프랑스 내륙의 한적한 시골마을을 연상케 합니다. 그 유명한 로마네 꽁띠가 생산되는 본 로마네(Vosne Romanee)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흙 묻은 투박한 손으로 모자를 지긋이 눌러쓰고 포도밭을 돌며 묵묵히 일하는 일꾼들 속에는 와이너리 오너도 있습니다.

부르고뉴 와이너리의 가장 큰 특징은 소규모 농장과 가족경영으로 운영된다는 점입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왕실과 수도원의 포도밭이 몰수당한 후 일반인들에게 경매로 부쳐졌습니다. 커다란 규모의 포도밭은 농부들에게 배분되면서 소유권이 잘게 쪼개진데다 '나폴레옹의 상속법'에 따라 장자 상속이 폐지되면서 소유는 더 세분화 됐습니다. 이 때문에 부르고뉴 포도밭은 거의 모두가 소규모 가족농장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부르고뉴 와이너리나 도멘의 이름에 '아버지와 아들'을 뜻하는 '페레 에 피스(Pere & Fils)'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부르고뉴 와인은 이처럼 소규모 가족경영으로 생산되다 보니 '다양성'이라는 큰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와이너리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양조기술이 자손들에게 계속 전해지면서 한가지 품종으로 와인을 빚는데도 와인의 맛이 와이너리마다 정말 다릅니다. 이같은 다양성은 희소성으로 연결돼 부르고뉴 와인의 가격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이죠.

■고급스럽고 진한 와인이냐 Vs 깃털처럼 가볍고 상큼한 와인이냐
보르도 와인과 부르고뉴 와인의 다른 점은 또 있습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 보르도 와인은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이나 멜롯(Merlot)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품종을 섞어서 만드는 반면 부르고뉴 와인은 피노누아(Pinot Noir) 단일 품종으로 만듭니다.

보르도 와인은 지롱드 강을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메독, 생떼에스테프, 생줄리앙, 마고 등은 까베르네 쇼비뇽을 기반으로 멜롯과 까베르네 프랑 등을 섞어서 와인을 빚습니다. 오른쪽 지방인 포므롤과 생떼밀리옹은 멜롯을 중심으로 까베르네 쇼비뇽, 까베르네 프랑 등을 섞습니다. 두 지역 모두 그 해 작황에 따라 비율을 약간씩 변화를 줘가며 와인의 맛을 최대한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까베르네 쇼비뇽 포도.(사진=위키피디아)
까베르네 쇼비뇽 포도.(사진=위키피디아)


보르도 와인의 주요 품종이 되는 까베르네 쇼비뇽은 레드와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품종입니다. 포도 알이 작은 반면 껍질이 두껍고 씨도 많습니다. 따라서 아주 강한 타닌을 함유하고 있고 당도도 높아 숙성도 잘됩니다. 특히 와인이 묵을수록 타닌이 부드러워지면서 고급스런 맛을 내는게 특징입니다.

멜롯 포도.(사진=위키피디아)
멜롯 포도.(사진=위키피디아)


또 멜롯은 까베르네 쇼비뇽보다 단 맛은 더 강하고 타닌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다소 여성스런 맛으로 향이 뛰어나며 질감은 아주 부드럽고 감미롭습니다. 이 두가지 품종이 섞이면 아주 진하고 복잡한 맛이 잘 어우러진 고급스러운 와인이 탄생됩니다.

피노누아 포도. (사진=위키피디아)
피노누아 포도. (사진=위키피디아)


반면 부르고뉴 와인은 피노누아 한가지 품종으로 만듭니다. 피노누아는 껍질이 얇고 색소가 적어 와인을 빚으면 아주 연한 색깔을 띱니다. 피노누아 와인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와인에 물을 탄게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받습니다. 하지만 입에 넣어보면 기분좋은 산도와 우아하고 복합적인 향, 부드러운 질감으로 인해 피노누아 와인의 매니아층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노누아는 재배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품종이 아닙니다. 서늘하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 자라는 특성상 햇볕을 강하게 받으면 금방 타들어가고 비가 많이 오면 아예 익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피노누아가 제대로 익었다하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을 냅니다. 10년에 2~3번 정도만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르고뉴 와인은 빈티지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피노누아는 포도 자체 구조도 아주 섬세해서 와인을 빚을때 미세한 차이만 나더라도 와인의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부르고뉴 와인값이 유명 생산자냐 아니냐에 따라 가격이 수백배 차이가 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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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영원한 라이벌, 보르도와 부르고뉴' (하)편이 이어집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부동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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