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단독] 검찰, '권대희 사건' 송치 8개월 만에 수사 착수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01 11:12

수정 2019.06.01 12:09

경찰수사만 2년, 기소의견 송치에도 진전 없어
'자료 충분한데 왜 안 하나'... 어머니 이씨 '답답'
지난달 발의된 수술실 CCTV 설치법도 주목
8개월 간 멈춰있던 고(故) 권대희씨 의료사고 수사가 이달 재개된다. 민사재판에서 배상판결을 얻어낸데 이어 검찰수사까지 이뤄지며 사건해결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발의에 동참한 국회의원 수명이 하룻밤에 입장을 바꾸는 등 논란이 된 수술실 CCTV 설치법 통과 역시 관심을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8개월 만에 움직이는 검찰, 수사 속도 내나
경찰 기소의견 송치사건, 송치 후 검찰 기소까지 소요기간
(일)
년도 2016 2017 2018 2019 1-4월
평균 소요기간 17.4 17.7 20.3 19.1
(대검찰청)


1일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가 권씨 의료사고 수사에 본격 착수한다. 4일 권씨의 어머니 이나금씨의 소환조사를 시작으로, 업무상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ㅈ성형외과 원장 장모씨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지 8개월 여 만의 일이다.


앞서 경찰 광역수사대는 지난해 10월 5일 장모 원장 등 4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수사에 나선 지 무려 2년 여 만으로, 이 기간 동안 경찰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에 감정을 보내 집도의인 원장 등 의료진의 혐의를 상당부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역시 의료진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인정하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유족들은 직접 확보한 수술실 CCTV와 의무기록지 등을 통해 경찰이 철저한 수사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부터 의료진의 중대한 과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감정결과까지 받았으므로 검찰이 빠른 기소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2년의 경찰수사에도 검찰이 8개월 여 동안 기소는커녕 수사조차 않고 있어 견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어머니 이씨는 다섯 차례에 걸쳐 검찰에 탄원서를 접수했으나 검찰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장모 원장 등 의료진에 대한 소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ㅈ성형외과는 권씨가 보고 병원을 찾은 것과 유사한 내용의 광고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이에 분개한 유족들이 병원을 찾아 항의하고, 관계 기관에 허위·과장광고로 신고를 접수했지만 병원 측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음에도 8개월 여 동안 기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변호사는 “사건에 따라 기소까지 오래 걸리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면서도 “권대희 사건의 경우 경찰이 2년 동안 수사를 해 기소했고, 민사 1심 결과에서 보듯이 증거가 많고 비교적 명확한 사건임에도 검찰이 8개월 간 기소를 않고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한 경우 검찰이 기소하기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20일 정도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는 2016년 17.4일, 2017년 17.7일, 2018년 20.3일이었으며, 올 1분기엔 19.1일이 걸렸다.

다만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기한과 관련한 별도의 내부규정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형사소송법은 ‘고소 또는 고발에 의해 범죄를 수사할 때’에는 ‘3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여 공소제기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고소 또는 고발의 경우 경찰에 의한 수사가 진행된 송치사건보다 수사에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송치사건이 고소 또는 고발 사건 처리기한보다 5개월 이상 길어진 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민사 1심, 병원에 80% 배상책임 인정
ㅈ성형외과 CCTV 영상. 지난 2016년 서초구 ㅈ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뒤 사망한 고(故)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간호조무사가 화장을 고치고 있다. / 제공=고(故) 권대희씨 유족
ㅈ성형외과 CCTV 영상. 지난 2016년 서초구 ㅈ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뒤 사망한 고(故)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간호조무사가 화장을 고치고 있다. / 제공=고(故) 권대희씨 유족


한편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심재남)는 권씨 유족이 ㅈ성형외과 장 원장 등 3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4억3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4억3000만원은 원고 측이 주장한 피해자의 상실수익 및 위자료의 80% 수준으로, 법원이 의료진의 과실을 높은 수준으로 인정한 것이다.

형사사건이 기소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결과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대량출혈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해 권씨의 출혈량 등 경과 관찰은 물론, 지혈 및 수혈 조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턱뼈를 잘라내는 수술은 대량출혈을 동반할 수 있으므로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했어야 하나 이행하지 않은 과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권씨의 어머니 이씨는 “CCTV를 보면 상황이 위급하게 돌아가는 동안 의사는 없고 간호조무사는 휴대폰을 보고 화장을 고치기까지 해서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고 보는 게 맞는데 100% 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권씨는 지난 2016년 장 원장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사각턱 절개수술을 받던 중 과다출혈로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상태에 빠진 권씨는 49일 만에 끝내 숨을 거뒀다.

유족들은 수술실 CCTV 영상과 의무기록지 등을 확보해 권씨의 사망에 병원의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유족과 경찰은 ▲집도의사가 수술할 때 과다출혈이 발생했고 ▲집도의가 수술 도중 자리를 비우고 다른 의료진이 대리수술을 했으며 ▲간호조무사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고 ▲맥박이 130에 이르는 환자를 두고 의사들이 퇴근 ▲지혈이 되지 않은 채 장시간 방치 ▲수술실에서 간호조무사가 휴대폰을 만지고 눈 화장을 한 사실 ▲수혈을 하지 않은 채 대학병원으로 이송한 사실 등을 CCTV를 통해 발견해냈다.

■국회서 재발의된 ‘권대희법’ 힘 실리나
수술실 CCTV를 500번 넘게 보며 병원 측 과실을 상당부분 찾아낸 고(故) 권씨의 어머니 이나금씨가 '수술실 CCTV 법제화'를 요구하며 지난 겨울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제공=고(故) 권대희씨 유족
수술실 CCTV를 500번 넘게 보며 병원 측 과실을 상당부분 찾아낸 고(故) 권씨의 어머니 이나금씨가 '수술실 CCTV 법제화'를 요구하며 지난 겨울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제공=고(故) 권대희씨 유족


지난달 국회에서 산통 끝에 발의된 수술실 CCTV 설치법, 일명 ‘권대희법’에 힘이 실릴지도 주목된다. 지난달 21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료의원 14명과 함께 의료인과 환자가 요청할 경우 수술실에서 CCTV로 수술장면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난 4월 분당차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은폐 의혹’ 및 강남 성형외과 등에서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는 공장식 수술 폐해 등에 따라 제도 개선의 필요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CCTV 설치 법제화는 의료사고 유족 등이 모인 전국환자단체엽합회가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100일간 벌여 전 국민적 사안으로 떠올랐다. 이에 경기도가 지난달 1일부터 도립의료원 산하 6개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며 선도적으로 개선에 나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경기도청이 정책 시행에 앞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경기도민 10명 중 9명이 ‘경기도의료원 수술실 CCTV 운영방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 대부분 병원 수술실에선 CCTV 설치 및 촬영이 강제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수술 중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피해를 입어도 환자가 그 사실을 입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의료계는 해당 법안에 크게 반대하고 있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할 경우 의료인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결과적으로 피해가 환자에게 돌아간다는 주장이다. 정치권에선 지역 의사회를 포함한 의료계 조직이 지역구 의원 등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법안 통과가 쉽지 않으리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의료계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범죄의료인 면허규제’ ‘음주진료 방지’ 등의 법안이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된 바 있다.

수술실 CCTV 설치법 역시 지난 14일 안규백 의원 등 9명이 발의했으나 접수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동료의원 5명이 발의를 철회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철회한 의원은 김진표·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동섭·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다.

이에 안 의원 등은 새로 공동발의자를 모아 지난달 21일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사와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률검토, 본회의 상정 등을 모두 통과할 경우 입법에 이르게 된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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