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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상장사 뿌리뽑는다" 증시 건전성 지키는 파수꾼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이정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8 17:28

수정 2019.12.18 17:53

코스닥시장본부 상장관리부
소액주주 원성도 견뎌야
‘질 높은 상장 활성화’ 올해 초 신설
상장 폐지-유지 판단하는 중책 맡아
1년 내내 소액주주 읍소·항의 이어져
믿고 투자할 수 있도록…
부실 기업 솎아내 신속히 퇴출시키고
우량 기업 진입으로 시장 건전성 높여
대외적 영향력 큰 만큼 신중하게 심사
투자자 보호에 앞장선다는 사명감 커
한국거래소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코스닥시장본부 상장관리부 직원들 사진=김범석 기자
한국거래소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코스닥시장본부 상장관리부 직원들 사진=김범석 기자

취업준비생들에게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한국거래소에도 '극한직업'이 있다. 증시 건전성을 위해 부실기업에 퇴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코스닥시장본부 상장관리부 직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올해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앞 거리에는 읍소와 항의로 가득한 플래카드들이 내걸렸다가 또 사라졌다. '한 달 넘게 거래정지 가족들은 죽어가요'처럼 동정에 호소하거나 '그땐 뭐하셨나요? 왜 이제와서 거래정지?' 같은 원망이 가득한 문구도 있었다. '거래재개 만이 살려주시는 길입니다' 같은 호소도, '언제나 응원합니다! 거래소 사랑해요!!'와 같은 애교 넘치는 문구도 거래소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상장관리부는 이들의 원성도 견뎌야 하고, 또 기업·전문가집단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상장 폐지 또는 유지를 검토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미래 성장잠재력이 기대되는 혁신기업들에 투자자들로부터 직접 자금을 조달하게 함으로써 우리나라 중소 벤처기업들이 한 단계 도약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코스닥시장에는 많은 우량기업들이 상장돼 있지만, 상장 이후 성장 한계에 부딪히다 보면 그들 가운데는 미래 먹거리를 찾지 못하고 영업 및 재무구조 악화와 더불어 지배구조 변경을 거듭하면서 부실화되는 기업 또한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 민경욱 코스닥시장본부 상장관리부장의 말이다.

■자본시장 내실을 다지는 파수꾼

코스닥시장본부 상장관리부는 올초 신설됐다.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조직을 기존 1개 팀에서 2개 팀으로 늘리고, 기업공시, 내부회계관리제도 교육 등 기업 지원서비스 기능을 일원화하기 위해서다. 신설되기 전에는 상장부 기업심사팀에서 이 일을 담당했다. 현재 상장관리부는 기업심사1팀, 기업심사2팀, 기업지원서비스 태스크포스(TF), 공시제도팀으로 나뉘어 있다.

코스닥 부실기업 퇴출과 관련된 실질심사제도는 지난 2009년 처음 도입됐다. 민 부장은 도입 초기인 2010년부터 2년 반 동안 팀장으로서 퇴출 업무를 담당했다.

민 부장은 "제도도입 이전에는 감사의견 거절이라든가 완전자본잠식, 부도 등과 같이 형식적 요건에 의해서만 부실기업이 상장폐지가 됐었는데 자본잠식 직전에 증자나 감자 등을 통해 퇴출을 회피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당시 코스닥시장이 '복마전'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등 적극적으로 시장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상장관리부는 지난해 17개사 대비 9개사 더 늘어난 26개사에 대해 심사했다. 민 부장은 "팀원 7명이 검토해서 이 회사를 폐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검토한다는 것"이라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개선계획을 제출하게 되는데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에서 폐지할 것이냐, 상장유지할 것이냐, 또는 개선기간을 부여할 것이냐가 결정된다. 폐지가 결정되면 시장위원회(시장위)에서 논의하게 되고, 다시 준비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시장위에서 폐지가 결정되는 등 매우 신중하게 의사결정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심위는 시장위원 4명과 학계·법조계 등 각계 전문가 3명, 거래소 임원 1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시장위는 위원장을 비롯한 거래소 사외이사 중 금융투자회사 대표, 외부기관 추천 위원 7인 등 9명의 외부전문가로 이뤄진다.

당분간 상장관리부가 심사해야 할 대상회사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감사의견 거절(비적정)이었던 회사들 가운데 감사의견이 적정으로 변경된 회사들을 대상으로 다시 실질심사 절차를 거치게끔 하는데 이들 회사들이 상당수 대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장관리부 직원들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장관리부 직원들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믿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역할"

이들은 부실기업이 탄탄하게 개선된 경우를 볼 때 가장 보람있다고 털어놨다. 최진영 기업심사1팀장은 "문제 있는 기업이 정상화되고 건실히 성장해가는 모습을 봤을 때 가장 보람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외견상 멀쩡해 보이는데 심층적으로 보면 문제가 많은 경우도 있다"며 "저희는 기존 투자자 보호가 매우 중요하지만, 또 잠재적 투자자 보호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 부장은 "지금까지 제일 뿌듯했던 것은 2010년 한글과컴퓨터였다"며 "횡령 이후 경영권 교체가 됐는데 김상철 소프트포럼 회장이 인수를 했다. 당시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지금껏 코스닥 대표주자로 잘 커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안타깝다고 느끼는 점은 일부 자본시장 훼손 세력들이 많은 투자자들의 피해를 발생시킨 사건을 지켜보는 것이다. 민 부장은 지난 2011년 3개 회사가 엮인 무자본 M&A를 거쳐 1000억원대 횡령이 발생했던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경영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무자본 M&A를 통해 또 다른 상장사를 거듭 인수하면서 여러 회사가 망가졌고, 이 과정에서 직원들도 회사를 떠나야 했고, 투자자 피해가 많이 발생했으며, 횡령·배임 당사자는 대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다"며 "화이트 칼라 범죄로 인해 굉장히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심사를 했던 당사자로서 매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소액주주 대표라고 해서 투자자들이 무조건 신뢰해선 안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냈다. 최 팀장은 "소액주주 대표 대부분은 선의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며 "한 소액주주 대표가 대표이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알고 보니 5~6년 전에 다른 상장기업에서 횡령·배임을 한 인물로, 대표이사가 되면서 다시 전횡을 일삼았던 사례가 있었다. 소액주주들도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강화된 회계기준에 혼란도 있지만 결국 이는 자본시장의 건전한 성장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민 부장은 "신외부감사법 시행으로 인해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퇴출이 예상되는 기업이 많이 늘어났다"며 "이 과정에서 일부 종목이 매매거래 정지가 되면서 투자자들이 당혹스럽다고 하는 등 혼란도 생겼는데 그런 것들이 성장통이 아닌가 싶다"고 평가했다. 이어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이 낮다고 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서 개선된다면 증시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상장관리부 직원들은 증권시장 건전성과 투자자 보호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민 부장은 "심사결과가 대외적으로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심사한다는 것을 투자자들과 상장기업에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면서도 "다만, 코스닥 시장이 건강하게 성장해야 하는데 문제있는 기업들이 있으면 그 기업들로 인해 시장 전체가 받는 악영향이 크다.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 역할인 만큼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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