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단독] 3년 기다린 '권대희 사건' 고검으로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27 08:00

수정 2020.01.27 10:26

검찰, 13개월 수사에도 주요 혐의 불기소
유족 측, 수사결과 불복... 항고장 접수
법조계 다수 인사 "검찰 수사 이해 안 돼"
[파이낸셜뉴스] 고 권대희씨 의료사고 수사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직접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한 것이다. 수술실 CCTV 영상과 의무기록지 등 의료사고 피해자가 확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를 확보하고도 석연찮은 결과를 내어놓은 검찰이 태도를 바꿀지 주목된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3일 권씨 유족이 서울중앙지검을 찾아 항고장을 접수했다. 권씨 법률대리인은 일주일 뒤 항고이유서를 추가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고이유서엔 권씨 수술을 담당한 병원 관계자들의 무면허 의료행위 등 의료법 위반 혐의를 담당검사가 기소하지 않은데 불복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항고는 형사 고소사건에서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재심을 요구하는 절차다.

지난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과다출혈로 위험한 상태에 놓인 고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간호조무사가 화장을 고치고 있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지난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과다출혈로 위험한 상태에 놓인 고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간호조무사가 화장을 고치고 있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수사기관 3년 수사... 참담한 결론
앞서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강지성)는 서울 신사역 인근 성형외과 장모 원장과 이 병원 의사 2명 등 의료진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 및 의료법상 의무기록지 허위 기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담당 수사검사는 서울지검 의료전문 성재호 검사다.

관심을 모았던 간호조무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 및 의료진의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방조 혐의는 기소대상에서 제외됐다.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는 당사자에게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교사 또는 방조자에겐 1년 이내의 의사 면허자격 정지를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이 사건 당시 소속된 의료기관의 의료업 정지와 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또는 폐쇄명령도 내릴 수 있다.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가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벌규정으로 두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훨씬 실제적인 처벌이다. 이로 인해 의료사고 사건에선 의료법 기소여부가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의료법 불기소 처분에 유가족이 분개한 이유다. 이로 인해 내달 4일 예정된 형사재판에서 기소내용이 모두 유죄로 받아들여져도 의료진 및 해당 병원이 받는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기소의견 송치사건, 송치 후 검찰 기소까지 소요기간
(일)
년도 2016 2017 2018 2019 1-4월
평균 소요기간 17.4 17.7 20.3 19.1
(대검찰청)

■재수사 결정 후 13개월... 수사의지 있었나
법조계 일각에선 이 같은 검찰의 불기소 결정이 예고된 일이었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검찰의 수사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첫 번째 의문은 지나치게 긴 수사기간이다.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이후 기소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13개월을 넘어선다. 경찰 수사가 무려 1년10개월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본 기자가 대검찰청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이 기소까지 걸린 평균 시일은 길어야 20여일 정도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는 2016년 17.4일, 2017년 17.7일, 2018년 20.3일이었으며, 지난해 1분기엔 19.1일이 걸렸다. 2년 가까운 경찰 수사 끝에 2018년 10월 5일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권대희 의료사고 사건은 418일이 지난 2019년 11월 26일에야 기소됐다. 전문기관 감정 등이 필요한 의료사건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오랜 시일이 걸린 것이다.

경찰수사가 한창이던 2017년 4월 시작한 민사재판에선 지난해 5월 병원 측 배상책임을 80% 인정하는 1심 판결이 나왔다. 양측은 항소하지 않았다. 민사가 형사사건보다 먼저 결론이 나는 것 역시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다른 사건도 아니고 사람이 죽은 사건”이라며 “피해자가 명백하고 피해의 내용도 달리 구성하기 어려운 사안인 만큼 신속한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의법조치를 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수사가 불충분한 경우 수사지휘를 하면서 시간이 오래걸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면서도 "보강 수사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사안에서 사건 처리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 것은 검찰에서 사건 처리 속도나 적체되는 정도를 인사평가에 반영하는 관행에 비추어 보아도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두 번째 의문점은 핵심 피의자에 대한 조사다. 사건이 송치된 지 8개월 만인 지난해 6월 고소인인 이나금씨 소환조사에 나선 검찰은 이전까지 한 차례도 장모 원장을 부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 원장이 검찰에 소환된 건 7월 이후로 보이며, 수사가 시작되고도 한참 동안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았다. 장 원장을 포함해 마취과 의사 이모씨와 수술보조 의사 신모씨 등 의료진에 대한 조사는 8월 초까지 한 번씩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고 권대희씨 의료사고 사건 형사소송 일지
일시 사건
2016. 11. 25 고소장 접수 및 경찰 수사 개시
2018. 10. 05 기소의견 검찰 송치
2019. 6. 12 고소인 조사
2019. 7 성형외과 의료진 소환 조사 추정
2019. 11. 12 성형외과 원장 구속영장 청구
2019. 11. 14 영장 기각
2019. 11. 26 검찰 기소
2019. 12. 23 유족 항고
2020. 1. 7 고검 사건 배당
(검찰 및 유족 측 제공)


■수사 막판에 영장청구.. “무슨 의도냐”
구속영장 청구 시기도 이상하다. 1년 10개월에 이르는 경찰의 철저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전면 재수사 의사를 드러낸 성재호 검사는 이후 1년이 넘도록 장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소를 불과 2주가량 앞둔 지난해 11월 12일 장 원장에 대해서만 돌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은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있는 피의자를 구속 상태에서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핵심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이토록 늦은 시점에 청구한 점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수사가 개시된 이후 한참 동안이나 병원을 운영하며 도주하지 않았음은 물론, 입수해야 할 증거가 있다면 이를 인멸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 경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검찰의 영장청구 취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기각했다. 검사의 수사의지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다수의 법조계 인사들은 의아함을 표했다. 한 변호사는 “어떻게 구속영장을 기소하기 직전에 치나”라며 “구속영장이 존재하는 취지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수사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법조계 인사는 “의료분야 특수성은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이례적인 결정이 맞다”며 “법조계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스물다섯 취업준비생이던 고 권대희씨는 지난 2016년 남몰래 찾은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권씨는 49일 간 연명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사인은 저산소성 뇌손상이었다. 수술 중 발생한 과다출혈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수술실 CCTV엔 권씨를 수술한 원장이 다른 수술방에서 동시 수술을 집도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등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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