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방과후 돌봄교실은 '로또'…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저출생 시대 '돌봄'은 사회로부터]

오은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23 17:54

수정 2020.07.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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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들의 이직·퇴사 고민
임신이나 어린이집 보낼 때보다
'초등학교 입학 때' 가장 많이해
정부'초등돌봄' 확대 나섰지만
교원단체 "학교, 보육기관 아냐"
결국 돌봄 공백에 학원 뺑뺑이
"사회가 얼마나 잘 돌볼 수 있냐
이 조건 충족이 출산부담 덜 것"
방과후 돌봄교실은 '로또'…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저출생 시대 '돌봄'은 사회로부터]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한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려면 부모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옛말을 뒷받침하듯 올해 중 발표될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1~2025년 시행)의 핵심은 '돌봄'이다. 아이를 안심하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학교와 직장, 도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이뤄졌던 돌봄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현실적 방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준비했다.

#. 일산에서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 김미라씨(36·여)는 둘째 생각을 접은 지 오래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일과 보육을 병행하는 게 벅찼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퇴근시간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었지만 초등학교는 차원이 달랐다. 오후 5시까지 운영하는 방과후 돌봄교실에 아이를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경쟁이 치열해 매번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발표를 기다려야 했다. 추첨에 떨어진 학기는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다 못해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렸다. 아이도 힘들어할뿐더러 김씨 역시 불안함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김씨는 "2018년 정부가 돌봄 대상자를 확대한다고 한 이후 학교에 돌봄교실이 증설됐다며 '로또 맞은 것 같다'고 좋아하던 친구가 그제야 이해가 갔다"며 "맞벌이를 그만두자니 생계가 걱정돼 아이와 친정엄마, 남편까지 어르고 달래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둘째는 상상도 못하겠다"고 했다. 이어 "첫째가 조금 더 크면 학원으로 보내는 불안함이 나아질 것 같아 당분간 버텨보려고 한다"고 전했다.

■일하랴 애 키우랴…출산부담 직결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1.1명으로 세계 최하위를 기록한 가운데 출산율 재고를 위해 아이돌봄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일하는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학교 돌봄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으면 아이를 낳았을 때 처할 돌봄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져 저출생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23일 KB금융그룹이 낸 '2019 한국 워킹맘보고서'에 따르면 워킹맘이 퇴사나 이직을 고민했던 시기는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 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이상 자녀를 둔 워킹맘이 되면 임신했을 때나 어린이집을 갔을 때보다 자녀가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가 직장을 계속 다니기 어려운 시기로 생각한 것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워킹맘의 50.5%,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워킹맘의 39.8%가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일을 지속하기 어려웠다고 응답했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경력단절여성 실태조사' 결과를 봐도 초등학생 학년 자녀를 둔 직장여성은 전년도 2~3월 신학기 전후에만 1만5841명이 퇴사했다. 초등돌봄의 공백이 여성들의 경력단절의 주된 요인이라는 의미다.

김씨의 사례에서 보듯 학교는 맞벌이 부모들을 위해 방과후 돌봄교실을 운영, 확대해 나가고 있지만 현실은 하늘의 별따기다. '돌봄 로또' '초등돌봄 절벽'이라는 용어가 수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선 달라진 게 없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 이모씨(39)는 "코로나19로 등교도 어지러운 상황에서 돌봄교실마저 신청이 안 돼 직장 점심시간에 애 하교시간 맞춰 집에 데려다 놓는다. 학원시간까지 아이는 혼자 있는 셈"이라며 "마음이 불편하고 안쓰러워서 일도 제대로 안된다. 이렇게 아이 한 명 키우기 힘들줄 임신 전에는 몰랐다"고 털어놨다.

■"돌봄과 교육,학교에서 부담해야"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학교 내 돌봄교육을 늘리려는 정책들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5월 교육부는 돌봄교실을 학교 고유사무에 포함시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의 반발로 부모들의 고통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학교는 보육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이므로 교사들이 교육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과후돌봄 업무는 지역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보육 영역은 지자체가 운영을 맡아야 한다'며 교육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반면, 핀란드 등 대부분의 해외 방과후돌봄 사례에서는 학교가 주체가 돼 해당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학교가 아닌 곳에서 방과후 돌봄이 이뤄지거나 학교 내에서 지자체가 돌봄을 운영하는 등은 '상식 밖의 일'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모든 아이들이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공적 공간인 학교에서 받지 못하면 어디서 받을 수 있겠나"라며 "학교는 지식교육뿐 아니라 인격을 형성하고 인성교육의 역할도 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돌봄이 온전하게 부모의 몫이 되면 아무도 낳을 수가 없다"며 "사회가 얼마나 잘 돌볼 수 있는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교사가 돌봄이 아니라 교육만 하겠다고 하면 학원강사에 불과할 뿐"이라며 "행정업무가 많아지는 부분이 문제라면 그런 부담을 줄여달라고 요구하는 게 맞다"고 했다.
정 교수는 "학교 내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일가정양립도 안 되는 등 악순환이 이어져 출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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