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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청백리와 21세기 공직자상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2 18:05

수정 2020.09.02 19:30

[fn논단] 청백리와 21세기 공직자상
청렴결백한 고위관리를 귀감으로 삼기 위해 선정한 이를 청백리(淸白吏)라고 한다. 조선 세종 때 정승 유관이 장맛비가 새는 방 안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가난한 백성을 걱정했다는 일화로 대변되곤 한다.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청백리는 드물었다. 조선시대 청백리는 태조 이래 순조까지 400여년 간 모두 44개 씨족에서 218명만 배출될 정도로 귀했고, 그래서 가문의 큰 자랑거리였다.

수많은 고관대작들 중에서 엄선된 청백리들이 말 그대로 검소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조선 중기 이후 청백리들 중에는 재력가가 많았다.
퇴계 이황은 "가난하고 검소함을 편안하게 여기고 분분한 영화 따위는 뜬구름 보듯 하였다"는 조선실록의 극찬과는 별도로, 본인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처가의 도움도 받아 노비 250여명에 전답 35만여평 등에 이르는 부를 쌓았다. 조선 중기 중앙에 진출해 도학적 이념에 바탕한 요순시대 이상정치를 추구했던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 대부분도 고향에 경제적 기반이 갖추어져 있었기에 학문과 정치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 사학계의 정설이다.

이처럼 성리학적 이상향을 꿈꾸었던 조선시대에도 단순히 가난하고 검소한 것이 절대적 목표였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정상적인 과정과 노력으로 모은 재산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금전에 유혹받지 않고 올바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바탕으로 인정받았다. 조선 후기 실사구시와 경세치용을 강조하여 민생을 해결하고 나라를 발전시키고자 했던 실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천지가 개벽해 21세기 자본주의 시장경제시대가 되었다. 시민들의 살림살이는 예나 지금이나 팍팍한데 요즘은 코로나19로 숨까지 막힌다. 회사에 출근을 못하고 마트에서 장보기도 어려운데 자영업자들은 폐업에 내몰리고 있다. 이럴 때, 자기 손으로 돈 벌고 세금 내고 집 장만하려 이리저리 뛰어본 경험이야말로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공직자의 자격이 아닐까. 다주택 공직자의 사적 이해관계가 직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함은 당연하고, 무주택자의 고통은 정책순위의 최상단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집이 두 채이면 무조건 고위직 결격사유이고 가난할수록 훌륭한 공직자로서 자질을 갖춘 것처럼 보기보다, 주택 문제 같은 난제 해결에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따지고 확인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장관 후보자 과반수는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에서 직무와 무관한 신상털기로 망신만 당할까봐 애초부터 고사한단다. 재미있는 것은 유능한 장관을 임명하지 못해 국정에 애로가 크다는 여당의 불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다는 것이다. 5년마다 있는 대통령선거에서 어느 편이 집권할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왜 자기가 당할 일을 내다보지 못하는지 궁금하다. 미국처럼 백악관 인사처와 FBI 등 여러 기관들이 도덕성을 비공개로 무기한 검증하고 의회 청문회에서는 정책과 능력심사에 집중하는 미국식 시스템이 왜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다시는 코로나19 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 한다.
세상이 바뀌는데 구태에 집착하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 오늘날 공직자상에서 청백리의 의미는 분명하다.
기본적 도덕성과 능력을 함께 갖춘 인재가 난국을 헤쳐나가는 지혜와 경륜을 발휘하기 바란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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