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병원' 개설을 위해 임대차계약을 맺었는데 알고보니 해당 건물이 의원급 의료기관만 개설 가능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계약 자체를 무효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유모씨가 공모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한의사인 유씨는 한방병원을 개설하기 위해 공씨 건물의 2~4층에 관해 임대차계약 내용을 협의하고 2015년 8월 계약금 2000만원을 송금했다.
이후 유씨는 공씨에게 병원 개설을 허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화조와 소방시설 부분은 병원 용도에 적합하도록 임대인 공씨가 책임치고 설치하거나 해결해달라고 요구했고 공씨는 이를 수용했다.
유씨와 공씨는 2015년 8월31일 보증금 1억5000만원, 차임 월 750만원에 '병원개설 허가에 대한 건물 관련 부분을 임대인이 책임진다(정화조 및 소방시설)'등의 특약사항을 포함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공씨의 건물은 의원급 의료기관만 개설할 수 있는 상태였고, 병원급 의료기관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건축법상 용도변경 허가절차를 거쳐야 하는 상태였다.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알게된 유씨는 공씨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렸고, 공씨는 일부만 병원으로 용도변경을 하고 나머지 면적은 개인사업자로 식당을 별도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씨는 이를 거부하고 임대차보증금 1억5000만원과 이미 지금한 차임 300만원을 반환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공씨가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심은 "의료인이 아닌 공씨가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까지 의료법상 '의원급 의료기관'과 '병원급 의료기관'의 구분 의미와 허가절차 차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까지 유씨가 의료법상 '의원급 의료기관'으로서의 병원이 아닌 '병원급 의료기관'으로서의 병원 개설을 명시적으로 공씨에게 언급하지 않았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해당 건물은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부터 진주시 건축조례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병원개설 허가를 받을 수 없었으므로 계약의 목적 달성이 사실상·법률상 불가능한 상태였다"며 "임대차계약은 원시적 이행불능으로 무효"라면서 1심을 뒤집고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병원'의 의미에 대해 '일정한 시설을 갖추고 병을 진찰, 치료하는 곳'을 뜻한다는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따라서 일반인들이 의료법령 등에서 정한 '병원'과 '의원'의 의미, 개설 요건, 방식과 절차, 시설기준의 구분과 차이를 바르게 이해하거나 인식해 의료법상 '의원'과 구분되는 의료기관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병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방병원을 개설 또는 운영한 경험이 있는 유씨는 병원급 의료기관을 개설할 때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개설할 때보다 여러 가지 법적, 행정적 규제나 제한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도 유씨는 계약을 체결할 때까지 해당 건물을 의료법상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개설 허가받아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나 어떤 요건을 충족해야 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고, 임대인 공씨에게 이에 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거나 상의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의료인이 아닌 공씨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당시 유씨가 임대차 목적물을 병원으로 사용하려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의료법상 의원급 의료기관과 병원급 의료기관 중 구체적으로 어떤 의료기관을 뜻하는 것인지에 관하여는 제대로 알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유씨와 공씨 사이에 병원급 의료기관 개설 허가 등에 대해서는 의사의 합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원시적 불능인 경우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단했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계약의 원시적 불능이나 계약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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