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부실 의혹에 ‘위험의 외주화의 외주화’ 지적도
-하청 지시 받지만 산재 가입은 안 돼...“광산업계 고질적인 ‘노멀’”
-하청 지시 받지만 산재 가입은 안 돼...“광산업계 고질적인 ‘노멀’”

굴삭기 등 건설기계 기사에 대한 꼼수 근로 계약이 광산업계에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채굴업체들이 근로 계약서 없이 기계 임대차 계약만 맺은 채 일하는 방식을 강제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업체 지시를 받는 기사들이 자영업자로 분류돼 산재 인정에서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매일 나와 일했는데, 임대차 계약만”
21일 광산업계에 따르면 기계 임대차 계약에 근로 계약 ‘끼워 넣기’를 강요해 광산 기계 기사들의 노동자로서 권리를 박탈하는 꼼수 계약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16일 강원도의 한 석회석 광산에서 토사 유출로 매몰돼 숨진 굴삭기 노동자 A씨(47)도 ‘근로 계약서 없는 근로 계약’을 맺은 사례 중 하나다.
A씨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하청업체 B사와 건설기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광산 부석 제거 작업에 임해왔다. 그해 12월 31일까지 매달 990만원을 지급받는 조건이었다. 굴삭기 할부 및 수리비용 약 200만원씩은 A씨의 몫이었다.
문제는 B사가 이 지급액에 A씨로부터 굴삭기를 임대하는 비용에다 그의 노무 제공 임금을 별도의 근로 계약 없이 기계 임대 계약으로 일괄 처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유가족 측 법률대리인 류재율 변호사는 “산재 인정을 위해서는 노동자성이 증명돼야 하는데, 임대차 계약만 있어 입증이 어렵다”며 “이는 사측이 근로기준법 및 4대보험 책임에서 자유롭게 되는 구조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일을 안 시켜주니 (A씨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A씨는 B사의 직접 지시를 받았다. B사 직원인 A씨의 동료는 “(피해자는) 저희 하청업체 직원들과 다름없이 매일 회사 지시를 받았다”며 “자격증도 많고 일에 능숙해 오히려 업무가 더 몰렸다”고 말했다.
하청업체는 유족에게 합의를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합의금액도 터무니 없을뿐더러, 다른 기사들의 산재 가입과 재발방지부터 약속하라는 게 유가족 입장이다.

■광산업 전반에 퍼져있는 고용 ‘관행’
A씨의 죽음 이면에는 광산업계에 횡행하는 ‘위험의 외주화’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안전도 장담 못할 뿐 아니라, 사고 책임 역시 온전히 노동자와 그 유족이 짊어져야 하는 환경인 셈이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광업에서의 산업재해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1534건→1897건→2225건→2543건으로 지속 증가했다. 질병재해를 제외한 사고재해만 따져도 166건, 158건, 195건, 186건으로 꾸준히 100건 후반대를 기록해왔다.
게다가 광업에서는 사고가 발생해도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아닌 광산안전법 적용을 받는 탓에 사업주는 낮은 형량으로 처벌된다. 산안법 위반 시 7년 이하 징역 혹은 1억 이하 벌금인 데 비해 광산법으로는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이 고작이다.
최근 국회 문턱을 넘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광업 재해에선 무용지물이다. 광업권자(원청)는 물론 하청업체 처벌도 불투명하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이 3년 유예돼 소급 적용이 불가한데다, 광산업에까지 이를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분명해서다.
현재 사법경찰권을 가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동부광산안전사무소가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이다. 이와 별도로 류 변호사는 근로복지공단에 A씨에 대한 산재 신청을 할 계획이다. 그는 “이마저 거부된다면 행정 소송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 김태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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